무며의 집을 떠나 새롭게 태어나는 제2의 인생

알쏭달쏭 불교생활탐구

2012-05-22     불광출판사




출가

울창한 송림이 우거진, 길을 따라 바람이 춤을 추는 다리라는 무풍교舞風橋를 지나 일주문에 이르렀을 때 고개를 들어 바라본 영축산 산봉우리는, ‘산봉우리 위에 모든 휴식이 있다.’라고 했던 괴테의 말을 생각나게 하였고, 정상에서부터 아래로 가슴을 열고 내려앉은 산의 품속이 태고의 정서를 내게 전해주는 것 같았다. 산은 이미 낙엽이 다 지고 앙상한 가지들이 허허롭게 하늘을 향해 뻗고 있었다. 겨울산은 때때로 삭막한 여운 끝에 알 수 없는 적막의 위엄을 갖추고 가까이 오는 자를 압도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게다가 웅장한 전각들이 오밀조밀 모여서 대찰大刹의 위용을 드러내는 사찰 안팎의 분위기에 나는 또 한 번 압도당하고 있었다.
사찰 경내에 들어섰을 때 고색창연한 법당 건물주위로 향긋한 향내가 풍겨왔다. 세속적 분위기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도량에서 나는 내가 관람자가 아니라 입산자라는 생각을 하였다.
엷은 햇살이 기왓골에 부서지는 따사로운 전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면서 두어 시간을 영각 마루에 앉아 보냈다. 늦가을이요 초겨울인 12월 중순의 날씨가 양지의 풍요로움을 생각나게 하는 가운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마치 이단자처럼 생소한 경내의 분위기에 미안함을 느끼면서 여러 가지 고민에 둘러 싸여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행자실로 안내 받아 가게 되었다.

세속의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는 출가
지금도 아련한 추억이 되어 떠오르는 나의 입산기入山記는 내 인생의 일대 전환이었다. 그때 나는 내가 나를 버린다고 생각하였다. 사실 세속적 상식을 포기하지 않고는 입산출가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경우 왕자로 태어난 그가 출가를 한 것은 세속의 상식에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도 있다. 그것은 장차 왕위를 계승하여 어진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잘 다스렸어도 훌륭한 생애를 산 역사에 남을 왕일 수도 있었을 그가 하필이면 세속을 등지는 출가를 왜 했을까 하는 상식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를 하였다는 것은 어쩌면 범부로서는 모순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모순을 거쳐야 출가가 이루어지며 이것이 나중에는 모순의 합리성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이를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를 위하여 비본질적 문제를 버리는 일이라고 현대적 개념으로 말하기도 한다.
원래 불교에서 말하는 출가란 세속의 집을 버리고 떠나 수행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세속의 가정생활을 하지 않고 오로지 도를 닦는 수도의 생활을 하는 것을 출가생활이라 한다. 범어 Pravrajita를 음사하여 파폐니야라 하는 말을 번역한 것이다. 이 출가의 풍습은 고대 인도에서 시작 되었다. 베다시대부터 출가 풍습이 있었으며 브라만교에서도 산림의 한적한 곳에 들어가 도를 닦아 해탈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이로부터 출가의 풍습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한다. 출가자를 총칭하여 사문沙門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Sramana란 범어를 음사한 말로 근식勤息이라 번역한다. 부지런히 온
갖 선을 행하고 일체 악을 그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집을 나오는 풍습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불교에서 스님이 되기 위하여 출가하는 풍습이 생기게 되었다.
사람마다 출가의 동기가 다르겠지만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하다 그 정신적 돌파구를 찾고자 출가가 단행되는 경우가 많다. 불교의 출가자들은 대부분 속세를 이별하고 산사를 찾아와 예비출가라 할 수 있는 행자의 과정을 거친다. 무명의 거친 풀(無明草)을 베어버린다는 뜻에서 승복과 구분한 행자복을 입을 때 이미 머리를 깎아버린다. 그러다가 은사가 정해지면 소정의 행자교육을 받아 계를 받고 사미, 사미니가 된다. 구족계를 받기까지의 기간이 차야 완전한 스님이 되는 것이지만 사미, 사미니계를 받고 승복을 입고 가사를 수하므로 이때부터 스님의 신분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의 네 가지 출가 소원
이렇게 스님이 되는 것을 득도得度라고 한다. 득도는 제도濟度를 받았다는 뜻이지만 생사윤회의 세계에서 피안의 세계로 건너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경전에서는 중생을 생사의 바다 곧 고해苦海에 빠져 있는 존재로 본다. 생生, 노老, 병病, 사死의 속절없는 운명이 근본 괴로움이므로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출가의 목적이다. 물론 이는 불교가 가지고 있는 교법의 근본 대의에 입각해서 하는 말이다. 모든 중생이가지고 있는 생사의 고통을 없앤다는 것이 출가의 목적이요 동시에 수행의 목적이다. 때문에 불교는 출가의 공덕을 찬탄하고 있다. 어떤 집안에서 ‘한 자식이 출가하면 아홉 친족이 천상에 태어난다(一子出家九族生天).’는 말이 있다. 중국 선종 가운데 조동종曹洞宗을 창시한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는 출가할 적에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서 아무리 세속에서 효도를 많이 하더라도 윤회의 고통을 없앨 수 없으므로 출가하여 도를 이루어 그 공덕으로 어머니의 은혜를 갚겠다는 말을 하였다.『보요경普曜經』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가할 때 네 가지 소원이 있었다 한다. 이 사원四願에는 모두 중생을 위하여 출가한 것으로 되어 있다. 대승적 차원의 이타원력이 밝혀져 있는 내용이다. 첫째 중생들의 곤액困厄을 건져주기 위해서 출가를 하고, 둘째는 중생들의 미혹의 장애惑障를 끊어 주기 위해서이고, 셋째는 중생들의 그릇된 견해인 사견邪見을 끊어주기 위해서이며, 넷째는 중생들의 고통스런 생사의 윤회苦輪을 제도하기 위해서 출가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밝힌 출가의 원은 모두 중생들을 위해 대비를 실천하려는 윤리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출가는 고도의 윤리적 실천을 위한 자기희생이요, 봉사정신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가는 세속적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 많다.
출가! 그것은 또 한사람의 인격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을 듣고 새롭게 태어나고 법으로부터 교화되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새로운 탄생을 위해서 육친의 집을 떠나고, 무명無明의 집을 떠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