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서佛書는 속까지 불자가 되는 지름길

사색의 뜰

2012-05-22     불광출판사

독서의 해에 생각해 보는 불서 읽기

올해는 정부에서 정한‘독서의 해’이다. 책을 많이 읽자는 취지일 것이다. 그러나 역逆으로 생각해보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근년 들어 한국인의 독서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갤럽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 두 명 중 한 명은 한 달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지난 해(2011) 한국출판연구소에서 조사한 결과 한국인의 연간 독서량은 일본인(18권)의 절반가량인 9.3권으로 OECD 국가 가운데 거의 최하위권 수준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1/10 수준의 독서량
그렇다면 불교인들의 연간 불서 독서량은 얼마나 될까? 우리 불자들은 그 가운데서도 더욱 책을 읽지 않아서, 많아야 불자 1인당 한 권을 넘지 못한다. 기
독교인들 대비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불교인들이 불서를 읽지 않는 가장 큰 요인은 선불교의 영향 때문이다. 선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하여 전통적으로 경전이나 책을 무시해 왔다. 심지어 어떤 선승은 ‘책을 읽으면 알음알이가 생겨서 깨닫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유식하면 깨닫지 못하고 무식하면 깨달을 수 있다는데 굳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너무 어리석은 생각, 단견短見이다. 이
론(교학, 경전, 책)과 실수(實修, 참선)를 병행해야만(敎禪一致) 보다 빨리 완성도가 높은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불자들은 법문은 들으러 다니는 반면, 불교와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불교교리에 대하여 알려고 하지 않는 편이다. 법문이 최고이고, 또 법문속에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틀린 것은 아니다. 옳은 말이지만 40.50대 불자들은 하루만 지나면 거의 잊게 된다. 어떤 불자는 ‘돌아서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말하는 불자도 있다. 좋은 말씀이었다는 인상만 남는다고 볼 수 있다. 법문은 일회성이다. 일회성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지식으로 발전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절에 다닌 지 10년, 20년이 되어도 불교, 부처님에 대하여 한마디도 못한다. 일반 불자 가운데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 즉 불교에 대하여 단 5분이라도 간략히 설명할 수 있는 불자는 몇 사람 되지 않는다. 불교에 대한 일반 불자들의 지식 수준은 제로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기독교인들은 2년만 다녀도 줄줄 외고 4~5년 다니면 백전노장이 된다.

어떤 불서부터 읽을까
서론적인 애기는 다 접고, 불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리고 어떤 책부터 읽을 것인가? 그것이 관건이다. 책은 우선 자기가 관심 가는 분야부터, 좋아하는 책부터 읽어야 한다. 필자가 권한다면 불서 가운데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은 부처님 생애에 관한 책『(불타의세계』같은 책은 세계적인 명저이다)이다. 부처님 생애를 읽되, 객관적인 입장보다는 부처님의 입장에서 읽어야만 생애와 삶, 가르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또 생애를 서술한 책 속에는 부처님의 인간상과 인격 그리고 중요한 교리도 들어 있다. 동시에 고대 인도의 문화 일부분도 알 수 있다. 같은 성격의 책으로서 불교개론서도 있지만, 개론서는 서술이 좀 딱딱해서 초심 불자들은 읽기가 어렵다. 책은 자기 수준에서 읽기가 어려우면 독서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한번 독서에 질리면 다시는 책을 손에 쥐지 못하게 된다.
또 경전을 읽으려면 친히 하신 말씀인『아함경』이나 팔리어 경전을 읽어야
한다.『 아함경』이나 팔리어 경전은 방대하지만 요즘에는 에센스만 뽑아 놓은 한 권짜리들도 많다. 이런 경전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여러 경전 가운데서도 가장 원음(原音, 원래 말씀)에 가까워서 마치 직접 부처님의 육성을 듣는 듯한 기분이다.
또 비교적 교리에 대한 것도 정확도가 높다.『숫타니파타』,『법구경』,『 대반열반경』등은 그 가운데서도 더 원음에 가깝다. 불교교리,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서도 팔정도八正道같은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귀감이되는훌륭한가르침이다. 그가운데 ‘바른말(正語)’, ‘바른행동(正業)’이 두 가지만 잘 실천한다면 존경받는 인격자가 될 수 있다. 이번 총선에 출마한 나꼼수의 김용민 씨가 과거의 막말 하나 때문에 낙선하고 민주당이 제2당으로 전락했다고 하는데, 일찍이 팔정도를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바른 견해(正見)와 바른 생각(正思, 正思惟)을 추가한다면 그는 통찰력을 갖춘 명사가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이 여래가 깨달은 중도이다. 중도는 통찰력을 주며, 지혜를 주며, 평화를 주며, 깨달음으로 이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논리적으로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100% 맞는 말씀이다.
또 열반에 즈음하여 “아난다야, 나는 이제 늙어 삶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내 나이 지금 80이 되었구나. 마치 낡은 수레가 겨우 가죽 끈의 힘으로 가듯, 나의 몸도 가죽 끈의 힘으로 가는 것 같구나. 아난다야, 눈에 보이는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고 모든 느낌들을 소멸시켜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이런 말씀은 매우 인간적인 말씀이다. 우리는 교훈적인 부처님 말씀을 통하여 단순히 믿는데서 그치지 말고 하나라도 실천해야 한다.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만 실천해도 그는 훌륭한 인격자가 될 수 있다. 즉 부처님 말씀을 통하여 인격을 갖추려고 한다면, 불서 읽기는 재미와 교양과 인격, 그리고 마음의 평온을 갖다 주는 독서가 될 수 있다. 독서는 무지無知를 추방한다. 인격을 완성하고 어리석음을 추방한다. 깨달음을 장애하는 것이 무지라면 우리는 당연히 무지를 추방하기 위하여 불서, 부처님 말씀을 읽어야 한다. 불자로서 불서가 없는 가정은 부처님의 법음이 없는 텅 빈 공간이다. 번잡한 문명과 뉴스의 훤소喧騷속에 묻히기 쉬운 개인의 삶 속에서 ‘불서 읽기’, ‘부처님 말씀 읽기’로 고요하고 유익한 시간 갖는 것을 생활화해야 한다. 무니만 불자가 되지 말고 속까지 불자가 되어야 한다.


윤창화.
불교학술서 전문 출판사인 민족사 대표. 해인사 강원을 졸업(13회)했다. 논문으로는 ‘해방 이후譯經의 성격과 그 의의’(대각사상 5호), ‘한암의 자전적 구도기 일생패궐’, ‘성철 스님의 오매일여관 비판’(불교평론 36집)등이 있고, 저서로는『왕초보불교박사되다』,『 왕초보선박사되다』,『근현대 한국불교 명저 58선』등이 있다. 관심 분야는 당송시대 선종의 생활문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