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따라 마음 따라] 찾는 것은 느낌이 아닙니다

인연 따라 마음 따라

2012-05-22     혜민 스님

깨달음으로 가는 수행자가 간혹 헷갈리는 것 중 하나가 깨달음을 어떤 신비한 체험 혹은 느낌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이런 오해는 이번 학기 ‘선불교 개론’을 가르치는 미국 학생들에게도 나타나는데 참선을 하게 되면 마음이 안정되고 생각이 줄어들어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가 깨달음이라고 착각을 한다.

즉 참선 중에 일어나는 어떤 좋은 느낌이 깨달음이지 않을까 하고 집착을 하는데 이런 경우처럼 잘나가다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는 없다. 물론 참선을 하다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지복감至福感을 느낀다거나, 밑동이 쑥 빠져 시원하다거나 하늘을 날 것 같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무상無常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찾는 본성, 주인공이 아니다.

헛고생만 했던 나의 경험

그러면 그 주인공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바로 그 느낌이 아니고 그 느낌을 아는 놈이 우리가 찾는 놈이다. 즉 느낌 쪽으로 빠지는 것이 아니고 그 느낌이 올라왔다는 것을 아는 놈이 우리가 찾는 주인공이다.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롭다면 그 고요하고 평화롭다는 것을 아는 그 놈이 무엇인가? 밑동이 쑥 빠져 텅빈 채로 시원하다면 그 시원함을 아는 놈이 무엇인가? 느낌 쪽으로 빠져 그것들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고 진일보해서 느낌을 아는 주인공이 어떻게 생겼는지, 또 어디에 있는지 다시 물어서 확인해야 한다.

이 점은 상당히 중요한데 왜냐면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이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을 몰라서 엄청 고생했기 때문이다. 덕 높으신 스님과의 인연이 있어서 그분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애를 쓰다보니까 생각이 뚝하고 끊어지는 마음자리에 다다랐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 나에게 바른 견해가 없다보니 그 주인공을 확인해서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아무것도 없는 고요한 느낌이 깨달음인 줄 알고 한참을 헤맸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 아무것도 없는 마음 자리에 생각이 하나 일어났다. 너무나 희한한 것이 그전까지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무언가가 하나 생긴 것이다. 이 순간 묻게 되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도대체 뭐가 생각이 올라왔다는 것을 알지? 이 아는 놈이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지?

왜냐면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찾아라

그런데 그 아는 놈을 찾다보면 참 신기한 점을 발견한다. 느낌이나 생각이 일어남을 아는 주인공은 생각이 아니다. 즉 생각은 다른 생각이 올라왔음을 알수가 없다. 앎은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그리고 생각이 사라지고 나서도 존재한다. 이해가 될 수 있도록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만약 ‘재미있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 생각은 ‘밥 먹을 시간이다’라는 다른 생각이 마음속에 올라왔을 때 ‘재미있다’는 생각이 ‘밥 먹을 시간이다’라는 생각의 올라옴을 인지하지 못한다. 생각자체는 다른 생각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뭐가 아는가? 그리고 느낌이나 생각이 올라오는 것을 아는 놈은 어떻게 생겼고 어디에 위치하는가? 즉 더 명쾌히 설명하자면 깨달음은 깨달음이 뭐냐고 묻는 그 놈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이다.

생각이나 느낌과 같은 대상으로 향해 아는 마음을 거꾸로 돌려 앎 자체로 향하게 해서 그 앎의 성품을 보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보는 놈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느낌이나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앎 자체의 성품을 확인하려고 하다보면 그 주인공이 아무런 모양이나 색깔, 소리와 같은 형상이 없는 무형상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 무형상으로 있다고 해서 그 주인공 자체가 없거나 죽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놈이 텅 빈 채로 살아있다.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형상이다보니 사람들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도리를 모르고 그냥 없다고 내가 그랬듯 착각을 한다. 텅 빈 채로 있는 그 앎이 제대로 감지가 된다면 구도의 길에 잘 들어선 것이다.

텅 빈 채로 살아있는 그 앎이 안팎 구분 없이 두루 있다는 것을 제대로 봤다면 지금 또 그 길을 잘 가고 있는 것이다. 제발 내가 잠시 방황을 했듯이 느낌이 깨달음인줄 착각해서 허송세월을 보내는 분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졸필이지만 오늘 몇 자 적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