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인재가 없으면 불교 미래도 없다

특집 ● 성보박물관, 보물을 드러내다 - 송광사 성보박물관 김일동 학예연구사 인터뷰

2012-04-23     불광출판사

불교문화재의 체계적인 관리 보전을 위해, 1987년 통도사 성보박물관이 건립된 이후 35개 성보박물관이 건립됐다. 하지만 항온항습 방제시설이나 도난방지시스템 유지비용 등 지속적으로 소요되는 막대한 운영 경비로 인해 매우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학예연구사가 없는 성보박물관이 다수이고, 그나마 있더라도 빈번하게 교체되는 실정이다. 아무리 유물이 많더라도 그 유물을 빛나게 하는 일은 사람이 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열정 하나만으로 송광사 성보박물관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김일동(38) 학예사를 만나본다.



국문학도, 불교문화재에 빠지다
1995년 1월, 송광사에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국사전에 모셔진 16국사國師진영 13점이 도난당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1, 2세 진영은 전시 중이었고, 14세 진영은 보존 상태가 안 좋아 수장고에 모셔졌기에 도난을 피할 수 있었다. 도난당한 국사 진영은 모두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였다. 이 일을 계기로 문화재 관리 안정성에 대한 인식이 촉발되어 각 사찰에 성보박물관이 일시에 건립되기 시작했다.
송광사는 국가지정문화재가 가장 많은 사찰이다. 목조삼존불감, 혜심고신제서, 국사전, 송광사화엄경변상도 등 국보 4건을 비롯해, 보물 21건과 지방문화재 10건을 보유하고 있다. 이 외에 일반 불교문화재를 포함하면 그 수는 1만여 점이 넘는다. 2007년에 송광사 성보박물관에 온 김일동 학예사는 먼저 그 수많은 유물을 정리해나갔다. “처음엔 조금 안일한 생각을 가졌던 게 사실입니다. 학예사로 일하며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하려고 했어요. 일단 유물부터 정리해보자 했는데, 한두 달이 지나도 안 끝나는 거예요. 석 달이 지나면서부터는 겁이 덜컥 나는 겁니다. 이거 내가 잘못 온 게 아닌가 싶었죠. 그 이후로 불교문화재에 빠져 살다보니 논문은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학예사의 길과는 다소 동떨어진 과목을 전공했다. 처음엔 공대에 들어갔으나 전혀 적성에 맞지 않았다. 다시 공부해 두 번째로 경영대를 선택했으나, 그곳에서도 숨이 막히는 답답함을 느꼈다. 또다시 공부해 들어간 학과가 국문과다. 그는 비로소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사람 냄새 나는 분위기와 낭만에 젖어 무엇을 해도 신나고 즐거웠다. 금석문 권위자인 교수님의 영향으로 전국을 답사하러 다니며 문화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중앙대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고전문학 속에 나타난 민속을 연구했다. 그즈음 결혼도 했다. 본인은 대학원 다니며 연구소 조교로, 아내는 출판사에서 일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서울이 갑갑하게만 느껴졌다. 어떻게든 서울을 떠날 궁리를 하고 있는데, 사학과 출신인 아내의 선배로부터 송광사 성보박물관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다. 아내를 어렵게 설득해, 본인은 송광사에 아내와 아이는 처가인 광주에 터를 잡았다. 그 후 4년이 지난 작년 6월에야, 송광사에서 40킬로미터 떨어진 화순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송광사에서 살 때는 그야말로 고난의 역사였어요. 방대한 유물을 직접 대하고 조사하며 그 소중함을 몸소 체험하게 되니, 밤이면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거예요. 매일 밤 손전등을 들고 경내를 순찰했습니다. 또한 낙뢰 방지시스템이 없어, 낙뢰가 칠 때면 보안시스템 경보음이 울려 밤새 안절부절 노심초사했지요. 지금은 야간 경비 인력이 배치되고 시설도 보강되어 조금은 안심하고 있습니다.”




최소의 인원, 최대의 효과
일반적으로 성보박물관 학예사의 업무는 안정적인 유물 관리와 조사, 전시유물의 교체, 특별전 기획과 진행, 학술활동, 불사 고증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 모든 업무가 원활하게 돌아가야 박물관이 온전한 기능을 하지만, 대부분 성보박물관은 전문인력이 부족하다. 송광사만 하더라도 김일동 학예사 혼자다.
“스스로 학예 업무 매뉴얼을 짜서, 최소의 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산은 빠듯하고 혼자 일처리를 하다 보니 역부족인 면이 많습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2007년 겨울 방학부터 방학 내내 함께할 연수생들을 모집했습니다.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어, 지난 겨울방학 때는 문화재학과나 고고미술사학과 등 전공학과 학생들 11명이 송광사에 모여 숙식을 함께 했습니다.” 연수 프로그램은 박물관 측에서도 밀린 일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어 좋지만, 학생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평생을 가도 다 볼 수 없는 문화재를 직접 대하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다. 유물 조사 요령, 문화재 지정 과정 등을 습득하며 안목을 키우는 동시에 유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다. 이렇게 배출된 연수생들은 송광사와도 깊은 인연을 맺게 된다. 모임을 결성해 자원봉사를 오기도 하고, 각종 학술세미나에 참석해 자료를 보내주기도 한다. 훗날 이들이 성보박물관을 이끌고 갈 동량으로 성장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송광사는 답사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특히 보조국사 지눌 스님 열반 800주기 기념으로 열렸던 ‘국사國師’ 유물특별전에는 하루에 서너개 답사팀이 찾아왔다. 그들에게 한 달 내내 유물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주느라, 밤이면 목이 잠겨 목소리가 나오지 않기도 했다. 상시에도 답사객들의 요청이 있으면, 내부 결제를 맡아 유물을 수장고에서 내와 직접 관람할 수 있게 해준다.
“답사객들을 통해 저 또한 많이 배우게 됩니다. 저 같은 경우 늘 수많은 문화재에 쌓여 지내다 보니, 간혹 문화재의 소중함과 우수성을 망각할 때가 있어요. 답사객들이 유물을 굉장히 정성껏 대하는 걸 보며 정신이 바짝 들기도 합니다. 혼자 있더라도 스스로 격식을 차리며 유물을 관리하게 됩니다.”

“태만과 무능으로 실수하면 용서할 수 없다”
송광사는 조계종 제21교구 본사다. 말사의 유물 조사와 관리도 김일동 학예사의 몫이다. 말사 유물 상황을 파악해, 성보대장을 구축해준다. 이 과정에서
유물의 숨은 가치를 발견해, 화순 쌍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처럼 보물 지정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어느새 유물의 국가문화재 지정과 관련해 마이더스의
손으로 통해, 다른 교구의 말사로부터도 도움 요청을 받는다.
“새로운 유물을 발견했을 때 가장 흥분됩니다. 2009년 관음전에 봉안돼 있는 목조관음보살좌상을 개금하기 위해 살펴보는데, 복장유물이 나와 깜짝 놀랐습니다. 대방광불화엄경합론을 비롯해, 발원문과 의복 등 유물 50여 점이 쏟아져 나와 보물로 지정받았어요. 어느 때는 폐기 처분하기 위해 내다놓은 유물을 우연히 발견해 그 가치를 알려준 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몰라보고 잊혀져가는 유물에 새 생명을 부여해줄 때 보람이 느껴지고 뿌듯해요.”
그는 불교문화재를 일반 대중에게 알리는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작년 여름엔 문화재 정보를 쉽게 알리기 위해 주요 문화재에 QR코드를 부착했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면 문화재 사진과 함께 상세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자료집이나 안내문 등을 만들 때는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통해 재미있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또한 문화체험이 어려운 지역 아이들에게 ‘찾아가는 박물관’서비스를 통해, 전통문양 탁본 체험을 실시해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지역민들과 소통하며 유족들로부터 일제시대 송광사 스님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사진을 취합해, 2회에 걸쳐 ‘송광사 역사사진전’을 개최한 것도 큰 성과다.


송광사는 현재 불교문화역사관 건축이 한창이다. 전시실과 수장고, 학예연구실, 세미나실, 보존처리실 등을 갖춘 최신시설의 전문 성보박물관이다. 지열이나 태양광 등을 활용하는 ‘제로 에너지 하우스 Zero Energy House’의 친환경 개념을 도입했다. 내년 12월 완공에 맞춰 그의 꿈도 무르익어간다.
“박물관이 신축되면 인력과 장비가 새로 보강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박물관대학, 학술세미나, 체험 프로그램, 연수프로그램 등 하고 싶고, 또 해야 할들이 많아요. 무엇보다 학예사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놓고 싶어요. 박물관 일은 실수하면 타격이 엄청납니다. 제 스스로 ‘최선을 다해 일하다가 실수하는 건 용서가 가능하지만, 태만과 무능으로 실수하면 용서할 수 없다’는 다짐을 하며 정진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문화의 정서를 고스란히 함유하고 있는 불교문화재를 지키고 알리며 현대와 소통시키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김일동 학예사. 송광사의 수많은 문화재들 사이에서 그의 모습도 보물처럼 아름답다. 오후 3시, 박물관 신축 공사와 관련해 실무자 회의에 들어간 그가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회
의는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이어졌다. 불교 인재가 없으면 불교 미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