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을 통해 배우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깨달음

강원일기

2012-04-23     불광출판사

원두반 스님들의 행복한 농사 울력

밤사이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도량은 봄기운으로 충만하다. 들에는 온갖 봄나물이 움트고, 산기슭에선 봄꽃들이 꽃잔치를 준비한다. 어디선가 뻐꾸기 울음소리라도 들려오면 천지간의 봄기운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한 해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계절, 봄에는 2학년인 원두(園頭, 채소밭 관리를 맡은 스님)반의 일이 가장 많다. 밭농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 해 농사계획은 도감都監스님의 책임이지만, 그 일을 밭에서 직접 해내는 건 오롯이 원두반의 몫이다. 원두반은 감자를 심고 고추 모종을 하고 오이, 호박, 상추, 근대, 아욱, 쑥갓, 고소, 열무 등 갖가지 채소를 길러 한 해 동안 먹거리를 제공한다.



감자밭에 울려 퍼지는 풍년진언
“감자알 주렁주렁 사바하”
수업 끝 목탁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반장스님이 울력 내용을 칠판에 상세히 적어 내려간다. 오늘 울력은 범종루 앞밭에 ‘감자심기’다. 다들 울력복으로 갈아 입고 장화에 토시, 장갑을 끼고 호미를 들고 밀짚모자를 쓰면 준비 끝. 제일 먼저 할 일은 밭고랑 만들기다. 예전 같으면 소가 땅을 갈아엎었겠지만, 이제는 기계가 대신해준다. 절의 거사님들이 경운기로 밭을 갈아놓으면 쇠스랑을 든 스님들이 고랑을 내두둑한 이랑을 만들고, 호미 쥔 스님들은 뒤따르며 밭이랑의 흙들을 곱게 다듬는다.
다음은 잡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이랑에 검정 비닐을 씌운다. 밭고랑을 따라 학인스님들이 죽 늘어서고 두 스님이 원통에 둘둘 말린 검정 비닐의 끝을 잡고 밭 이쪽에서 저쪽까지 호흡을 맞춰 달려간다. 고랑에 서 있던 학인스님들은 비닐 잡은 스님이 지나가면 비닐을 답삭 눌러 앉히면서 비닐 양쪽 끝자락에 흙을 덮어 고정시킨다. 착! 착! 착!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한 이랑, 한 이랑 비닐을 덮어나간다. 수십 명의 학인이 달라붙어도 종일 걸리는 감자심기 울력.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라 허리도 다리도 아프지만, 함께하니 해낼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먹을 양식을 자신이 마련한다는 즐거움이 있다. 검정 비닐을 씌운 밭이랑이 완성되면 감자 심을 준비는 일단락된다. 이제 병충해와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따로 잘라 놓은 감자 씨눈을 작은 바구니에 담아 앞장 선 스님이 호미로 비닐에 구멍을 뚫고 나가면, 뒤따라가면서 씨눈을 구멍에 넣고 흙을 두툼하게 덮어 주면 된다. 그리고 마음모아 “감자야, 잘 자라라. 감자알 주렁주렁 사바하” 진언을 외우며 기도를 드린다. 다들 익숙지 않은 농사일에 몸은 더디고 고되지만 함께하는 공동 작업이기에 원두반 스님들은 마냥 행복하다.



자급자족하는 수행도량, 운문농과대학
가득 열린 하늘과 안아줄 듯 팔을 뻗친 산자락이 있는 밭에 나오면 왠지 마음이 툭 트이는 것 같아 다들 발걸음이 씩씩해지고 목소리도 우렁우렁해진다. 한 마디로 밭은 원두반의 세상이고 밭에선 원두반이 대장이다.
예전 스님들은 논밭일은 물론이고 염불이면 염불, 음식이면 음식 무엇이든 거뜬히 해냈다. 경전 공부를 하면서 농사짓고, 살림도 다 하고 살았다. 그야말로 팔방미인이었다. 산판(山坂, 벌목)을 하고 난 빈산에 잣나무를 줄 맞춰 심고, 보름에 한 번 있는 목욕날이면 물을 덥히는 데 필요한 나무를 산에서 직접 해왔다. 짚으로 새끼를 꼬고, 나무를 잘라 차곡차곡 땔감도 마련했다. 불을 때서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보리와 콩을 심어 타작까지 했다. 어디 그뿐이랴. 봄이 되면 모내기에 밭농사까지 모든 것을 자급자족했다.
하지만 지금 스님들은 대부분 도시생활을 하고 부모님 밑에서 편히 살거나 혹은 혼자 자유롭게 지내다 출가를 하니 농사일에 서툴다. 농사만이 아니라 다른 일도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다. 쌀이 어떻게 나오는지 또는 냉이가 어찌 생겼는지, 산에 무슨 나물이 나는지 잘 모른다. 어느 달에 어떤 채소를 심어 언제 거두어야 하는지를 절집에 와 원두반을 살면서 배운다. 그래서 학인스님들은 농담 삼아 운문사를 운문농과대학이라 부르곤 한다.



천지의 보살핌과 사람의 정성으로 맺는 결실
어느 해 가뭄이 심하게 든 적이 있었다. 당장 대중이 씻고 먹을 물이 부족할 정도로 극심한 가뭄이었는데, 원두반은 고추농사가 제일 걱정이었다. 고민 끝에 목마른 고춧대를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기로 결의했다. 운문사에는 가뭄이 심하게 들면 원두반 스님들 중 용띠 스님들을 뽑아 기우제를 지내온 풍습이 있었다. 기우제의 제관은 용띠 스님 5인, 이 일은 오직 용띠 스님들만의 특권이었다. 장을 보고 제상을 차리고 병법(秉法, 의식을 진행하는 스님), 법주法主, 바라지(의식 때 법주를 거드는 스님)까지도 그들의 몫이었다.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목욕재계를 하고 저녁까지 기다리는데, 오후부터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더니 해가 넘어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쾅쾅’사방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기우제 분위기가 제대로 연출됐다. 저녁예불 후 운문사 옆 계곡 이목소 앞에 제상이 차려졌다. 종이컵에 촛불을 밝히고 전 대중스님이 참석한 가운데 ‘국태민안 우순풍조國泰民 安雨順風調’를 발원하는 기우제가 시작됐다.
모든 대중스님들은 한결같이 용왕대신을 부르며 마음속으로 폭우진언 108편을 외웠다. “옴 주룩주룩 사바하....” 기우제 축원이 끝나자 솥뚜껑을 두드리던 용띠 스님들과 원두반 일동은 일제히 이목소에 풍~덩 뛰어들었다. 그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장대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와~! 비 온다.” 기쁨의 함성이 온 도량에 울려 퍼졌다. 물론 때맞춰 비가 온 것이 꼭 기우제 덕분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천지의 보살핌과 사람의 정성으로 농작물이 자란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해 고추농사는 대풍작이었고 1,800근이라는 전무후무한 수확량을 기록했다. 올해도 원두반은 며칠 동안 울력의 기초 작업인 밭이랑 만들기와 씨뿌리기, 감자심기를 했다. 한나절의 따사로움과 푸르름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흙내음은 원두반 모두를 천진불로 만들어준다. 원두반 학인스님들은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먹는 것으로만 알던 채소를 밭에서 직접 키워 먹게 되리란 기대에 마냥 설렌다. 그렇게 차츰차츰 농사일을 하면서 자연의 신비함과 축복, 자연이 주는 기쁨을 알아간다. 또한 일과 수행이 둘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지금의 원두반도 위의 선배스님들이 그랬듯 처음 열린 오이와 호박 앞에서 ‘와아!’하는 탄성을 지르며 신기해할 테고, 첫 수확한 상추나 쑥갓 등속의 채소가 밥상에 올라오면 입맛을 다시며 감격하고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자신들이 기른 채소가 어떤 과정을 거쳐 밥상까지 오게 되었는지 너무도 잘 알고 햇
빛과 바람과 비, 미물들의 희생과 자신들이 흘린 땀방울을 뚜렷이 기억하기에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