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사상은 낭만을 그리는 서정주의가 아니다

고전산책

2012-04-23     불광출판사

『도덕경』에서 발견한 ‘해체론’


필자의 젊은 시절에 비하여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다. 세상이 달라지니 세상을 지배하는 사고방식도 따라서 많이 변했다. 철학적으로 한정해서 말하자면, 오랜 세월을 지배하던 철학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지금은 ‘반反철학의 시대’가 도래했다. 반철학의 시대는 단적으로 독일의 니체Nietzsche가 ‘신은 죽었다’라고 언명함으로써 그 위대한 문을 열었다고 봐도 괜찮겠다.
현대의 도도히 흐르는 반철학의 물결은 니체의 사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여겨도 좋으리라. 반철학의 기치를 상징하는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언명은 무엇을 의미할까?

니체의 선언이 던진 파장
이 말은 주로 기독교적 신의 죽음을 말하지만, 꼭 거기에만 제한되는 것은 아니리라. 그것은 기독교의 신과 지구상의 모든 신학적, 신화적 사고방식을 다 포함한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니체가 선언한 신의 죽음은 사상적으로 엄청난 호응을 불러 일으켜 서양에서도 기독교적인 힘이 현실적으로 급속히 쇠퇴하는 사회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기독교적인 힘의 쇠퇴는 반드시 서양 선진국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것은 세계사적인 공통적 현상으로서 해석되어도 무방하리라.
필자가 젊었을 적에 저 니체의 선언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겉멋이 들어서 대강 대충 이해하는 정도의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니체의 저 선언은 단순히 겉멋의 수준으로 아는 체 하고 지나가야 할 그런 구절이 아니다. 그것은 그동안 세상을 지배하고 관리해오던 철학적 사고방식을 통째로 부정하고 새로운 사고방식의 개혁(반철학)을 선언한 획기적인 차원의 일이다. 신의 죽음은 인간의 승리, 인간 이성의 승리와 인간중심주의적 생각을 온통 부정하는 차원이다. 신의 창조이든 인간의 제조기술이든 모든 유위적有爲的능력의 창조를 찬양하던 인류의 지성적 문화의 역전을 말한다. 이와 동시에 자연을 인간의 스승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을 야만적이고 촌스러운 무식의 본보기로 여기게 한다. 오로지 인간 이성의 능력에 알맞고 자연을 인간 두뇌의 발아래에 깔면서 짓누르는 탈자연적 오만한 인간관을 가장 세련되고 문명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지성적 사고를 통째로 매도하게끔 한 것이 신의 죽음이다. 파스칼Pascal이 말한 ‘생각하는 갈대’로서의 인간의 기술은 갈대처럼 허약한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모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섬세한 인간의 모양은 역설적으로 전 우주를 다 지배하는 지성의 오만함을 담고 있다. 신의 죽음은 절대적 존재와 그 가치의 죽음을 말한다. 인류는 오랜 세월동안 절대자와 그 존재의 목숨을 건 전투적 수호가 인간이 바쳐야 할 가치의 가장 성스러운 일로서 여겼다. 그래서 절대적 존재인 신의 명령을 지상의 과제인양 여기는 철학과 도덕이 널리 유행했다. 그것은 인간의 나약함과 나약함을 변호하는 무지의 사유에서 비롯했다. 니체가 언명한 신의 죽음은 인간과 신이 이 우주의 중심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간이 역설적으로 그렇게 나약한 존재도 아니고, 인간은 자신을 어떻게 쓰고 관리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겠다.
니체는 인간을 소유에서 존재로 넘어가야 할 대상으로 묘사했다. 이것이 그가 말한 초인(Overman)의 길이다. 그러므로 신의 죽음은 곧 소유의 부정이고 모든 소유론적 형이상학의 파괴를 말한다. 그런 점에서 과거의 철학사에서 존재론이라고 불려진 것은 인간 이성에 의하여 만들어진 창조나 제조에 의한 소유의 형이상학이다. 하이데거의 말과 같이 존재자(Entities)의 형이상학과 같다. 단적으로 말하여 니체로부터 시작된 반철학의 사상적 운동은 이성과 인간중심주의의 종말, 창조자나 제조자와 같은 소유주 개념의 부정, 소유주로서의 절대적 존재자의 파괴, 그리고 절대적 존재자의 파괴가 초래하는 정복적 남성중심주의 문화의 부정 등으로 상징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겉으로 보면 니체는 극도의 반여성주의 철학을 간직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는 노자가 언급한 여성주의적 예찬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니체가 부정한 나약하고 굴종적인 여성주의는 남성의 정복과 소유를 정당화시켜주는 매조킥Masochic한 성향을 말한다. 노자가 갈파한 여성의 비어 있는 마음의 존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니체의 여성관은 니체의 다양한 사유의 전체 모습을 연관시켜 구조적으로 생각한 것의 결과이다. 단지 지엽적으로 어느 특정 주장만을 따로 떼어서 논해서는 안 되는 것과 연관된다.

『도덕경』을 주목하는 이유
우리는 동양의 불교사상과 노장사상이 다 공통적으로 현대 서양의 반철학(Antiphilosophy)의 사조를 이미 선구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서양철학의 동양사상에로의 회귀운동은 이런 풍조를 두고 한 말이겠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노장사상을 단지 과거식으로 자연 속에서 격양가를 부르면서 순진하게 낭만적 그림만을 그리고 있는 서정주의의 한 가닥으로 단순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노장사상은 이미 기원전 600~700년 전에 즉 인류의 여명기에 공자의 철학적 유가사상에 대립되는 반철학적 사유를 가장 선구적으로 세상에 알린 위대한 인간의 사유작품이라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철학적 고전으로서 노자의『도덕경』을 언급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이미 앞에서 우리가 간접적으로 암시한 바이지만, 노자는 유가의 극렬한 남성중심주의에 비하여 여성을 도道의 근원처럼 보고 있다. 노자는 여성을 지칭함에서 늘 암컷 ‘빈牝’자를 사용하지, 결코 인간의 여성을 독자적으로 떼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여성도 자연의 암컷과 같은 구조의 계열로 읽어야 한다는 뜻이겠다. 도의 여성성은 여성이 무無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공의 무는 암컷이 대표하는 잉태의 상징인 자궁과 상통한다.
그리고 도는 남성적 소유의 개념과 거리가 멀다. 남성은 종자중심주의로서 족보의 성씨를 위주로 생각한다. 아버지 중심주의는 바로 이 성을 따르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어머니의 모계사상은 자궁이라는 무無의 공동체를 중시한다. 자손을 같은 씨의 소유를 정점으로 생각하는 것과 자궁의 빈 장소를 공동체로 여기는 것은 다르다. 전자가 종자의 소유의식이라면, 후자는 장소의 공동체적 나눔을 중요하게 여긴다. 남성이 소유론적이라면, 여성은 존재론적인 의미를 깊이 띤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유가는 도덕적인 사고를 짙게 하기에 소유론적인 사고가 아니고 도덕윤리적 사고라고 강변할 것이다.
그러나 소유론적 사고는 경제적인 것만은 아니다. 도덕적인 사고도 타인의 의식을 친사회적으로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의식을 중하게 여기므로 모든 도덕윤리는 다 소유론적 철학의 핵심에 속한다. 우리가 앞에서 이미 암시한 바이지만, 철학적 사고방식의 남성우위사상은 동시에 우주론적으로 인간중심주의를 안고 있다. 그러므로 유학은 인간중심적 생각을 진하게 머금고 있는 인학人學이다. 그러나 도가의 반철학적 철학은 인학이 아니라, 일종의 물학物學에 속한다.
도가의 반철학적 철학은 신학과 유학처럼 자연의 모든 것을 인간으로 의인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자연 속으로 해산시키고 해체시키는 작용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노자의『도덕경』은 반신학적, 반인학적 해체론이라 하겠다.

김형효.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벨기에 루벵대학교 철학최고연구원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공군사관학교 조교수를 역임했다. 그 후 서강대학교 철학과 부교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부원장, 부설 한국학대학원 대학원장, 루벵대학교 철학최고연구원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서강대학교 석좌교수로 활동 중이다. 제10회 열암학술상, 제7회 율곡학술상, 제19회 서우철학상을 수상했으며, 『김형효의 철학 편력 3부작-철학 나그네, 사유 나그네, 마음 나그네』등 많은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