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뜬 행복미소 보름달

선불장을 찾아서

2012-04-23     불광출판사

울산 해남사 불교신행학교

해남사(주지 만초 스님)는 울산 한복판에 있는 절이다. 그래서 1930년대 중반 통도사의 어른 구하 스님은 통도사 울산포교당이라는 이름으로 해남사를 창건했다. 그러나 발전하는 주변과 달리 ‘도심 속 산중사찰’이 되어 갔다. 그러던 중 지난 2008년 통도사 백운암에서 지내던 만초 스님이 주지로 오면서 해남사는 옷을 바꿔 입기 시작했다.



소통하고 공감하는 법석
3월 6일 오후 2시 해남사 수행관 3층에 마련된 비로당에 50여 불자들이 모여 앉았다. 7기 불교신행학교 신입생들이다. 대부분이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간단한 입재식에 이어 만초 스님의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됐다. 스님은 법상法床에 앉지 않았다. 작은 책상에 마이크를 얹고 무릎을 꿇고 앉아 초보 불자들과 눈을 맞췄다.
“여러분은 행복도량에 오셨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행복해지시기만 하면 됩니다. 신행학교는 내가 변하기 위해 다니는 것입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도 변합니다.” 미소만큼이나 부드러운 스님의 말씀에 참가자들도 자연스럽게 긴장을 푼다. 스님은 해남사의 ‘상징’이 된 ‘미소선’에 대해 먼저 설명을 했다. 얼굴에 가장 아름답게 나타나는 미소를 느끼면서 자신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라고 스님은 강조한다. 곧바로 스님은 10~15명씩 둥글게 앉아보라고 했다. 4개의 조가 만들어졌다. 사람들이 발바닥을 맞대고 손을 잡고 동그랗게
앉자, 스님은 노래를 같이 부르자고 한다. “♬~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노래가 끝나자 스님은 몇 가지 즉석 설문을 진행했다. 노래를 잘할 것 같은 사람, 끼가 많을 것 같은 사람, 돈이 많을 것 같은 사람, 밥을 잘 살 것 같은 사람, 첫째 딸이면서 맏며느리일 것 같은 사람 등등. 몇 가지 설문을 하는 사이 사람들은 어느새 도반이 되어버렸다. 마지막 질문은 조장을 잘 할 것 같은 사람. 여기서 뽑힌 사람들은 바로 각조의 조장이 되었다. 이렇게 오리엔테이션이 끝나자 6기 선배들의 간식 공양이 시작됐다. 떡과 음료를 나누며 시작된 이야기꽃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신행학교에 다니면서 나 자신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어요. 하심下心을 배우고 난 뒤 주위 사람들에게 나를 낮추는 법을 알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6기 회장 이동미(48, 적명심) 보살은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하며 도반으로서 함께 정진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16주간 진행되는 신행학교에서는 자각하고, 깨어있고, 집중하고, 알아차리고, 전념하는 다섯 가지 수행주제를 공부한다. 큰 주제는 있지만 각 시간별 프로그램은 따로 없다. 비가 오는 날엔 비 이야기를, 바람 부는 날엔 바람 이야기를 한다. 참가자들이 쉽게 마음을 열고 같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들이다.



이제는 콘텐츠다!
해남사에는 불교신행학교 외에도 다양한 콘텐츠를 준비해놓고 있다. 매월 양력 1, 2, 3일 저녁 8시에 봉행되는 다라니 기도는 만초 스님 부임 이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해남사뿐만 아니라 이웃 사찰 신도들도 동참한다. 특히 다리니 기도를 회향하는 의미로 매월 4일에 떠나는 마음여행은 도반에게 마음을 활짝 여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와 함께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는 1,080배 기도를 하면서 신심을 다진다. 또 초하루신중법회(매월 음력 1, 2, 3일 오전 10시), 관음재일(음력 24일 오전 10시), 지장재일(음력 18일 오전 10시), 보름정토기도(음력 15일 오전 10시), 경전 독송회(매월 둘째, 넷째 수요일 오후 7시 30분) 등의 정기법회와 가릉빈가합창단, 청년회, 문수회, 반야회, 보리회, 보현회 등의 신행단체들은 각자 모임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고 있다.
꽃꽂이반, 다도반, 요가반, 불화.민화반, 무명자수반, 참선반 등의 문화강좌도 계속된다. 해남사는 이와 같은 기존 프로그램 외에도 새로운 콘텐츠도 마련했다. 불교신행학교 졸업생을 위한 심화과정이 3월 12일부터 시작됐고, 3월 15일부터는 명상수련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또 매주 월, 수, 금요일에는 도인체조 교실도 시작됐다. 이렇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 만초 스님에게 여쭈었다.
“그랬어요. 해남사라는 곳이 통도사에서 의욕적으로 만든 포교당이었는데 최근에는 침체기에 있었습니다. 처음 와서는 청소부터 했습니다. 그러면서 신도님들을 만났어요. 다른 도심사찰 소임자들도 많이 느끼고 있는거라 생각되는데, ‘수저’만 들고 다니는 신도들이 많습니다. 밥상이 차려지기만을 기다리는 거죠. 함께 참여해서 밥상을 만들려 하지 않고 다 만들어진 것만 먹으려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신도님들에게 ‘하나의 성냥불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성냥불이 모여 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신도님들에게 어려운 청을 드렸던 거죠. 이를 위해 신도님들의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어왔어요. 이제 어느 정도 안착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님은 “불사도 중요하지만 신도들이 만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해남사 홍보팀장을 맡고 있는 이경희(53.원만성) 보살은 “주지스님께서 울산의 잠자던 불자들을 깨웠다.”고 잘라 말한다. 옆에 있던 불교신행학교 신입생 김차균(61.무공) 거사도 거든다. “절에 가끔 나가긴 했었는데, 본격적으로 불교에 대해 공부하려고 왔습니다. 오늘 첫 시간을 보냈는데, 스님의 미소만 보아도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서로에게 자신의 미소를 마구 날려주며 공부하는 해남사는 그래서 '행복미소가 가득한 절'이다.

울산 해남사 주지 만초 스님 미니인터뷰
“감동을 주는 불교여야 합니다”

통도사 백운암에 계실 때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주신다면?
통도사라는 큰 사찰에 있을 때와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산중사찰과 도심사찰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산에 있을 때는 사실 소임자 스님들이 그리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절은 잘 굴러갑니다. ‘산’이라는 전통과 역사를 가진 배경이 있고 또 그 안에서 일정 정도 기도와 신행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심은 달라요. 소임자들의 역할과 비중이 매우 중요합니다. 도심의 신도들은 잘 챙겨줘야 합니다. 산에 있는 절의 경우 이미지가 70, 스님 30의 비중이라면 도심은 이미지는 30도 안됩니다. 나머지는 주지나 소임자들이 70 이상을 해야 합니다. 처음 주지를 맡았을 때 이러한 구조를 몰랐기 때문에 조금은 힘들었어요.



스님께서는 ‘미소선’을 말씀하십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미소를 통해 수행을 하자는 거예요. 여기에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짓는 미소를 자각하자는 운동입니다. 미소를 자각하는 순간 자신에게 집중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미소자각을 생활화해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루에 108번 또는 108분 동안 미소를 자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만큼이라도 업장의 지배에서 벗어나면 삶이 좀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불교신행학교 운영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한국불교의 문제 중의 하나가 ‘주입식’교육입니다. 교리 하나하나를 다 설명하려해요. 물론 이것이 불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음식의 재료만 알려줄 뿐 정작 중요한 음식의 맛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음식이 맛있다는 것을 알면 재료는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금방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가 어떤 종교이고 이를 통해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해 주로 마음을 나누려 합니다.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이하 대중결사) 의장도 맡고 계십니다.
부처님의 사상과 가르침에 따른 연구와 토론을 통해 수행자로서의 안목과 자질을 가꾸고, 개인과 승단뿐만 아니라 불교계, 현대사회의 정체성을 인식하면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창립된 단체가 대중결사입니다. 그간 도심포교와 어린이포교, 불교복지 등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눠왔고 다양한 실천활동을 벌여 왔어요. 자성과 쇄신 등 불교현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작년부터 의장을 맡았는데, 앞으로 포교와 수행 중심의 대중결사, 불교와 종단 발전을 위한 구체적 대안 제시를 목표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대중결사가 진행하는 ‘재가 안거’가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불교는 수행의 종교입니다. 수행은 자신을 변화시키고 교정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꾸준히 정진해서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이죠. 대중결사는 작년 하안거부터 회원 사찰을 중심으로 재가 안거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재가불자들의 수행내용과 수행점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매뉴얼을 제작, 보급해 불자들의 수행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두 번 진행한 결과 평균 14개 사찰에서 1,400명이 넘는 불자들이 참여했습니다. 해남사에서도 250여 명이 같이 했어요.



앞으로 포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 내부의 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수백 년 전의 법회 형식에서 벗어나 신도들에게 감동을 주는 법회를 해야 합니다. 박제화된 한문 투의 법회로는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불자와 소통할 수 있도록 법회 형식을 쉬운 말과 글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불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스님들에 대한 교육도 다양해져야 합니다. 스님들도 다양한 것을 배우고 경험해야 해요. 그래야 신도들과 눈을 맞출 수 있어요. 많이 변하고는 있지만 기존과 같은 폐쇄적 환경과 교육시스템으로는 신도들의 요구에 부응하지도 못합니다.
또 하나, 절집의 삼배三拜문화도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절을 세 번씩이나 하는 것은 서로에게 부담을 주게 됩니다. 눈높이가 같아져야 합니다. 그런데 한 쪽은 눈이 저 위에 가 있고 또 다른 한 쪽은 눈이 땅 아래에 있습니다. 스님들을 공경하는 의미로 하는 것은 좋지만 이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괴리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 점은 개선돼야 할 것으로 봅니다. 이런 것들이 변하면 포교의 구체적인 방법들도 혁신적으로 바뀔 것이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