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누리] 1994년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논의

불광누리

2012-03-20     류지호

1994년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논의를 본격화하자

올해는 한국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 스님 열반 100주기 해이다. 또한 현대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선사 성철 스님 탄생 100주년의 해이기도 하다. 향곡 스님, 서옹 스님 등도 탄생 100년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 호 특집은 ‘선불교 100년, 침묵의 천둥소리’이다.

「불광」기자들은 적명 스님, 혜국 스님 등을 친견하고, 봉암사, 신흥사, 수덕사, 백담사 등 전국의 수행처를 다니느라 분주히 보냈다. 현대 한국불교의 중심인 선불교의 흔적과 현재 모습을 찾고 담기 위해서였다. 경허 스님 후손 지운 스님과 성철 스님을 20년 넘게 시봉했던 원택 스님의 글을 받아 실었고, 학자 박재현 교수의 근현대불교 100년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에 관한 글을 더했다.

한국불교는 종파불교가 아닌 회통불교가 전통이다. 그럼에도 현대 한국불교는 선불교 중심이다. 현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조계종의 종지宗旨는 “본종은 석가세존의 자각각타自覺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한 근본교리를 봉체하며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전법도생傳法度生함을 그 종지로 한다.”고 종헌에 명시되어 있다. 선을 중심으로 하되, 염불, 간경, 주력 등의 수행법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스님들을 중심으로 한 조계종단의 주요 흐름은 선禪, 그 중에서도 간화선看話禪이 한국불교의 정통으로 인정받고 있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초기불교에 대한 관심이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위빠사나 수행법도 널리 알려져 실참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현대 서구에서 주목받고 있는 티베트 불교에 대한 소개도 많아졌다. 간경,염불,절,주력 등의 수행을 하는 재가자도 꾸준하다. 간화선에만 치중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현직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이 종단의 공식행사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한국불교 중흥을 위한 대토론회’를 총결산하는 자리에서다. 스님은 회통불교 전통을 지닌 한국불교의 역사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조계종의 명칭이 종파불교의 이미지를 갖게 하기 때문에, 종명宗名의 적합성에 대해 검토할 때라고 먼저 밝혔다.

두 번째는 조계종 종지의 그릇을 크게 만들어 이 시대 한국불교가 구현하고자 하는 뜻을 풍부하게 담아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 번째는 한국불교가 사회적 자비실천을 통해 현대적인 불교로 거듭나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1962년에 만들어지고 1994년에 크게 개편된 종단의 운영시스템이 전면 혁신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진단이다.

최근 불교계의 ‘종교평화선언’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대외적인 발표는 유보된 채, 내부 구성원에게 불교란 무엇이며 타종교에 대한 입장은 어떻게 가져야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주었다. 현응 스님이 1년간 토론회를 마무리 하면서 종단명칭과 종지 문제를 들고 나온 까닭도, 많은 과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국불교의 사상과 교리에 대한 정체성을 제대로 정립하지 않고는 결론 도출이 쉽지 않은 상황 인식 때문인 듯하다.

선불교 중심의 한국 근현대불교 100년이 오늘의 한국불교를 이루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 온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전통이 계속 발전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선불교만이 유일하고도 최고라는 아집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종단 명칭과 종지에 대해, 그리고 1994년 체제를 넘어선 새로운 체제 구축을 위한 폭넓고 깊이 있는 논의가 절실하다는 제기에 깊이 공감한다.

올해는 조계종 출범 50주년의 해가 아니던가.

글. 류지호(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