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의 심정으로 한국불교를 일으킨 선사

특집 ● 선불교 100년, 침묵의 천둥소리 ● 나의 스승 경허 스님

2012-03-20     불광출판사

석가모니의 심정으로 한국불교를 일으킨 선사




덕숭산에 인연을 맺어 출가한 사람들에게 경허 스님은 자상하고 따뜻한 할아버지 같은 존재로 무척이나 친숙한 분이다. 수덕사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한국불교의 전통과 덕숭총림의 가풍을 논할 때에는 경허 스님과 만공 스님으로부터 시작한다. 세월이 빨라 벌써 경허 스님께서 열반하신 지 100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수덕사 대중들에게는 그리 긴 시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연년 행사와 일상생활 중에 경허 스님이 늘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덕숭산에만 있는 ‘노스님’
덕숭산에서는 어른스님께 ‘큰스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노스님’이라고 한다. 아직 수덕사가 지켜오고 있는 소박하면서도 깊은 의미를 가진 호칭이다. 경허 스님과 만공 스님께도 마찬가지로 ‘노스님’ 호칭을 사용한다. 불교 암흑의 시대를 밝힌 대선지식들께서 개척한 도량에서 그 법맥을 이어가는 제자와 법손들이 부르는 호칭으로는 ‘노스님’만한 것이 없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4~5대에 이르는 먼 관계일 수도 있지만 경허 노스님이란 호칭이 이런 물리적 거리를 사라지게 한다. 그래서 감히 ‘나의 스승 경허 스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른 산중의 스님들이나 재가불자들이 자주 ‘큰스님’호칭을 사용하고, 근래에는 크나 작으나 너나 할 것 없이 ‘큰스님’이라는 호칭이 범람하는 형편이라 노스님이란 호칭이 더욱 의미가 새롭다. 이렇게 소박하게 노스님이란 호칭을 사용하지만, 덕숭산의 수행자들에게 경허 스님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은 가슴에 가득 차고도 넘친다. 바로 한국불교의 중흥조이며 근현대 간화선의 대종장으로 오늘의 한국불교가 있게 한 분이 경허 스님임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
이다.



세간에는 경허 스님의 기행과 무애행에 대한 일화들이 흥미 위주로 전해져서 선사禪師의 진면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면이 적지 않다. 이제라도 경허 스님에 대한 치열한 구도자와 선불교 계승자로서의 시각과 한국불교 증흥조로서 스님의 위상에 걸맞은 연구와 접근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사무치는 존경심으로 정진하는 후학들
오늘의 대한민국이 김구, 안창호, 신채호 선생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사상과 실천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하듯이, 오늘의 한국불교도 경허, 만공 두 선사의 깨달음과 전법전등이 바탕이 되었음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경허 스님께서 사시던 시대는 조선 500년 불교 억압과 탄압의 긴 어둠 끝에 선맥은 이미 끊어 졌었다. 경전을 가르치던 강사였던 분이 전염병이 창궐하는 마을에서 새로운 발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당신 홀로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경허 스님의 오도송은 이런 시대적 상황과 깨달은 분의 외로움에 대한 깊은 탄식이 담겨 있다. “사방을 돌아봐도 사람이 없네. 의발을 누구에게 전할꼬? 의발을 누구에게 전하리오.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 없네!”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과 전법에 대한 고민의 순간을 접하는 느낌이다. “탐욕과 분노에 불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법을 깨닫는 일이 쉽지 않다. 이 법은 세간을 거스르고 미묘하고 난해하여 이해하기 어렵고 욕망의 격정에 빠진 자 암흑으로 휩싸인 자를 깨닫게 하기는 어렵다.”
범천의 권청에 의해 법을 설하기로 결심하기까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는 홀로 깨달은 자의 깊은 외로움과 크나큰 막막함을 느
끼셨을것이다. “사방을 돌아봐도 사람이 없네.”라며 탄식하던 경허 스님의 심정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심정과 다르지 않았음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경허 스님은 서산 천장암에서 6년간 깨달음 뒤의 공부를 끝내고 부석사浮石寺와 개심사開心寺등 충남 일대를 왕래하면서 전법교화 활동을 하며 크게 선풍禪風을 떨치고 범어사, 해인사, 통도사 등에 선원을 개설하고 한국불교의 선풍을 크게 진작하셨다. 선사께서 쓰신 글들을 보면 말미에 항상 ‘호서귀납 경허 성우湖西歸衲鏡虛惺牛’라는 글을 쓰신 것을 발견할수 있다. ‘호서로 돌아가는 승려’라는 뜻이다. 당신께서 주석하시던 천장암, 부석사, 개심사를 염두에 둔 것이다. 지금도 당신을 가슴에 담고 노스님으로 생각하는 법손들이 살아가고, 당신 법의 계승자 만공 스님께서 뿌리를 내리고 법을 펴신 덕숭총림 수덕사가 당신이 머무시는 도량이다. 이 도량에 사무치도록 당신을 존경하고 당신의 길을 따르는 제자들이 오늘도 정진의 나날을 지내고 있다.

지운 스님.
덕숭총림 수덕사 주지 및 ‘경허 선사 열반 100주년 기념사업회’추진위원장. 우송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69년 혜암 스님을 계사로 수덕사에서 사미계를, 1975년 석암 스님을 계사로 법주사에서 구족계를 수지했으며, 제11, 12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