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와 세상사에서 보여 주셨던 깊은 혜안

특집 ● 선불교 100년, 선사들의 할과 방 ● 나의 스승 성철 스님

2012-03-20     불광출판사

인생사와 세상사에서 보여 주셨던 깊은 혜안




멋모르고 친구 따라 백련암에 올라 성철 스님을 친견했다. 해맑은 얼굴에 이글거리는 형형한 눈빛은 마주 쳐다볼 수 없는 선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평생 지켜갈 좌우명 주실 것”을 말씀드렸더니, “절 돈 만원을 내 놓으라.”고 하셨다. 3,000배가 아닌 1만 배의 절을 24시간 이내에 부처님께 올리고 오라는 처분을 내리신 것이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서 백련암으로 출가하여 40여 년에 이르고 있다.

22년간 시봉하며 배운 가르침
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에 이르니 나에게 는 백련암 출가 만 40년이 되는 해가 되었다. 1972년 1월에 백련암으로 출가하여 큰스님이 열반에 드실 때까지 가까이서 22년을 시봉하였으니 크나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공양주 소임 살 때인 행자시절 얘기다. 하루는 어느 중년의 스님이 백련암에 점심시간이 지나 올라 오셔서 공양을 차려드리게 되었다. 10여 분쯤 지났을 무렵 그 스님이 마루 끝에 나오셔서 “이 절 공양주가 누구냐?”고 소리치며 공양주를 찾는다고 해서 다급히 달려가 “제가 공양줍니다.”하고 절을 올렸다. 스님은 손에 쥐고 있던 종이뭉치를 내 발등 쪽으로 내동이치시면서 노발대발했다. “내 이빨 물어내라, 이놈아!” 뭉친 종이가 터지며 씹던 밥알들이 이리저리 튀어 올랐다. 왠지 서러운 생각이 밀려들며 ‘내가 절 떠나면 그만 아이가!’하는 마음뿐이었다. 저녁 예불을 마치니 큰스님께서 찾으신다는 전갈이 왔다. “낮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그래, 이빨 물어줬나?” “절 생활을 잘 익히지 못하고 주변에 불편만 끼치고 있으니 하산해야 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내 이빨은 어떻게 물어줄래? 나도 니 밥 얻어먹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나?”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큰스님께서도 내가 지어 드린 공양을 드시며 더러 돌을 씹고 계셨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뒤늦게 알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는 심정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앞으로 공양주 소임 더욱 충실히 하겠습니다.”




3,000배의 또 다른 힘
마음을 잡고 행자 공양주 생활을 열심히 마쳤다. 그런데 스님 열반에 드신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더 큰 일을 깨닫게 되었다. 그럼 큰스님께서는 평
생 잘한 공양주 공양은 몇 개월 드시지 못하시고, 새로 온 공양주가 숙달될 때까지 어느 날은 돌을 씹으셨다가, 어느 날은 죽 밥을 드셨다가, 또 어느 날은 덜 퍼진 생쌀을 씹으신 날도 비일비재하셨겠구나, 하는 뒤늦은 깨우침이었다. 바깥에서는 종정스님으로 계셨으니 모두들 호강하신 줄 아시는데 현실에서는 선머슴아들이 해 올리는 공양을 드시기가 힘드셨을 터이다. 그런데도 겉으로는 별일 없으신 듯 보내신 세월들을 무어라 참회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세상이 다 아는 바와 같이 큰스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오는 신도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부처님께 3,000배 하고 보자.”고 하셨다. 또 “내 상좌는 해인사 주지나 삼직 소임 등을 살지 않고 말사 주지로도 보내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대중에 공표하시고 방장方丈직을 수행하셨다.
누구에게나 3,000배라는 고리를 설치함으로써 권력이나 금력, 사이비신도들이 큰스님 주변에 쉽게 가까이 할 수 없는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직계상좌들을 해인사 요직에서 멀리 있게 함으로써 요새 흔히 말하는 친인척 관리를 철저히 하신 셈이 되었다고도 본다. 인생사와 세상사에 깊은 혜안을 가지시고 당신 주변을 철저히 관리해 오셨다는 것을 이제 와서야 알아채고 새삼 탄복하고 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같지만 아무나 지켜갈 수 있는 원칙이 아니지 않을까? 작년에 지상에서 치열히 논쟁했던 ‘대승비불설’이나 ‘남전비불설’등의 결론을 큰스님께서는 40, 50년 전에 이미 말씀하셨던 모습을 BTN 성철 스님 법문에서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돈점논쟁도 큰스님께서는 결론 내리신 지 오래인데, 보조 국사의 수심결적 점수론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부처님과 육조 스님의 근본 생각을 바로 깨치는 길에 많은 이들이 동참하기를 큰스님 탄신 100주년을 맞아 염원해 본다.

원택 스님.
1972년 성철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74년 범어사에서 구족계를 수지했다. 해인사 총무국장과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중앙종회의원, 파라미타청소년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와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