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불모지에 피어난 대승보살들의 연꽃

선불장을 찾아서

2012-03-20     불광출판사

불교 불모지에 피어난 대승보살들의 연꽃
여수 석천사 람림 법회



올해 5월 열리는 세계박람회를 앞두고 있는 전라남도 여수는 분주했다. 각종 시설을 만들고 길을 넓히는 등의 작업은 계속되고 있었고,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도 세계인들을 맞는다는 설렘 때문인지 잔뜩 고무된 표정들이다.
깨끗하게 정비된 길을 달려 여수 마래산 중턱에 앉아 있는 석천사石泉寺를 찾았다.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한 최초의 사당 충민사忠愍祠옆에 있는 석천사는 유감스럽게도 ‘생각 이하’였다. 석천사의 왕성한 활동에 비추어 최소 ‘교구본사급’사찰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갔기 때문이다. 이런 기대는 처참히 무너져, 있는 전각이라고는 대웅전과 종무소, 요사채인 의승당, 종각, 작은 규모의 템플스테이 시설 백화당 등 대여섯 채에 불과했다.

보시행이 없으면 대승불교도 없다
그런데 이것도 편견이었다. 꼭 으리으리한 전각이 있어야 하고 또 수많은 신도로 경내가 북적일 필요는 없다. 제대로 된 법회와 신행, 수행이 이뤄지고 이를 바탕으로 열심히 실천행을 펼치면 되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랬고, 석천사도 이런 기조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주지 소임을 맡아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역포교에 매진해 온 진옥 스님은 ‘형편대로’ 산다고 했다. 말은 쉽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석천사는 현재 14개의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모두 합해 1년 예산만 200억이 넘고 400명이 넘는 종사자들이 일하고 있다. 요양시설 ‘하얀연꽃’을 비롯해 여수시 노인복지관, 문수종합사회복지관, 연꽃어린이집, 옹달샘 어린이집 등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계층을 아우르고 있다.
“일이라는 것이 쉬운 것은 없잖아요.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면서 하는 것이 진짜 일입니다. 형편이 넉넉했다고 하면 아마 복지에 눈을 돌리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오로지 신도들을 믿고 신도들과 함께 지금까지 지역 복지포교에 매진해 왔을 뿐입니다.”
진옥 스님은 담담했다. 그러나 단호했다. 이런 활동 역시 ‘보여주기’가 아닌 ‘수행’이 되어야 한다고 스님은강조했다. “보시행布施行을 하지 않고 대승불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돕는 일을 할 수 있을 때 개인의 욕심도 버릴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작은 행복들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불교 불모지 호남의 작지만 강한 절, 석천사가 명성을 떨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석천사는 다양한 법회를 통한 신도교육과 신행에도 열심이다.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람림 법회, 수요일에는『금강경』을 비롯한 경전법회, 목요일에는 불교기초교리 법회가 매주 진행되고 또 초하루법회는 물론
선지식을 초청해 열리는‘특별법회’도 시시때때로 열린다.



여럿이 함께 가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
저녁 7시가 되자 일을 마친 불자들이 하나둘 대웅전에 모여 들었다. 람림 법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람림-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16세기 인물로 달라이라마가 속한 겔룩파의 시조인 총카파 스님이 쓴 수행서이다. 예비수행에서부터 마지막 지관止觀명상에 이르기까지 깨달음의 길을 자세히 기술해 놓은 대승불교의 길라잡이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 바로 『람림』이다.
30여 불자가 자리를 잡은 가운데 진옥 스님의 강의가 시작됐다. 이날의 주제는 ‘12연기’다. 12연기는 미혹한 세계의 인과관계를 설명한 것인데,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처六處,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등을 말한다. 스님과 불자들은『람림』의 한 구절을 함께 읽었다.
“생사윤회의 도리를 모르므로, 이에 몽매해서 유아有我로 집착하고, 나의 안락을 구하였기에 이를 위하여 신구의 삼업三業의 선善과 불선不善을 실제로 행하였고 또 윤회한다. 그러므로 세 가지 번뇌(무명,애, 취)에서 두 가지 업(행,유)을 일으켰고, 이로부터 일곱 가지 고苦가 생기고, 이 칠고七苦에서 번뇌가 생기고, 또 번뇌에서 위에서와 같이 윤회함으로써 윤회의 바퀴가 멈춤 없이 구르고 있다.”
스님은 12연기와 12연기의 가르침에 대해 하나 하나 설명했다. “‘나’라는 것도 인연 따라 모여진 것일 뿐이에요. 사람들은 살다보면 ‘나’가 있고 ‘내 것’이 있고 ‘내 주변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애착과 욕망을 일으키게 되고 결국은 고통을 안깁니다. 행복은 집착과 욕망에서 오는 것이 아니에요. 대승불교는 모든 생명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그 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진옥 스님은 12연기의 핵심 가르침은 ‘윤회’를 더 잘 알게 하는 것에 있다고 했다. 무명의 결과가 생로병사다. 윤회는 어디에 있더라도 고통을 수반한다. 윤회세계 자체가 고통인 것이다. 이것을 벗어나기 위해 발심을 해야 하고 수행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스님의 자세한 강의에 불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권희자(60, 수월심) 보살은 “환희심이 절로 난다. 『람림』은 반드시 따르고 행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현용근(69, 수덕) 거사는 “『람림』은 수행의 처음부터 깨달음에 이르는 길까지 잘 정리되어 있다. 불교의 진수가 느껴진다.”고 전했다.
석천사에 머물며『람림』을 공부하고 있는 비구니 현공 스님은 진옥 스님의 언행일치言行一致를 바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늘 강의에서 느꼈겠지만 진옥 스님은 교학敎學에 상당히 밝아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언제나 보살행을 실천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스님의 이런 모습 때문에 여수의 불자들이 알아서 석천사에 오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다음날 오전 10시에는 또 다른 50여 명의 대중이 모여 스님의『람림』법문을 청해 들었다. 지치지 않는 스님의 열정과 이를 배우려는 불자들의 모습에서 끝없이 펼쳐진 남해 바다와 같은 여수불교 의 미래를 점쳐본다.



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 스님 미니인터뷰
“모든 것은 인과법에 따라 일어납니다”

최근 티벳이 시끄럽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중국의 탄압이 계속 되면서 이에 항거하는 스님들이 분신하고 티벳 시민들도 계속 항의하고 있다고 보도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의 강압적인 대 티벳 정책 때문이에요. 티벳불교가 온전한 모습을 회복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티벳의 독립이 시간문제라고 봅니다. 인도 망명정부에 가보면 그곳의 스님들과 시민들은 철저하게 전통을 지키며 수행하고 있어요. 전통과 수행의 힘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인과법에 따라 이뤄지게 돼 있습니다.

달라이라마와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출가 이후 고민했던 것은 한국불교가 대승大乘이라고 하는데, 실제 생활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승’이 법당 안으로 들어가 나오지도 못하는 꼴이었습니다. 승가 현실에서 봉사하는 삶도 실행되지 못하고 있었어요. 이런 것들을 보면서 갈증을 느꼈고 그러던 차에 달라이라마를 찾게 되었습니다. 1998년 달라이라마를 처음 친견한 후 그들의 사상과 실천을 보고 배우려 했고 또 그것들을 한국불교에 적용하려노력하고 있습니다.



달라이라마를 친견하면서 느낀 점을 전해 주신다면?
달라이라마는 아주 노련한 스승입니다. 만나는 사람에 따라 눈을 맞춰 법문을 해주죠. 길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분입니다. 또 그 분의 말씀이나 행동에는 무게가 있습니다. 오랜 생 동안 육바라밀 수행을 해온 결과라고 봅니다. 친견하는 사람들이 환희심을 일으킬 정도의 힘이 있어요. 이와 함께 달라이라마는 철저하게 경전에 근거해 법문을 합니다. 교학敎學에도 상당히 밝아요.

티벳불교의 힘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도 철저한 ‘스승불교’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달라이라마도 그랬지만 그곳의 수행자들은 철저하게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합니다. 또 정견正見을 위해 경전과 논전을 지독하게 배웁니다. 확실하게 교학을 공부하는 것이죠. 그리고 절 10만배, 스님과 대중들에게 공양 올리기, 수십만 번의 진언 수행, 불상佛像을 직접 만드는 공양 등 4가지 수행을 합니다. 기본에 충실한 것이 바로 티벳불교의 힘이라고 할 수 있어요.

티벳에서는‘보리심菩提心’을 강조합니다.
보리심은 위로는 보리菩提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하려는 마음입니다. 지혜가 부족하더라도 보리심을 일으켰다면 그 사람은 대승보살이지만 비록 공성空性을 이해하는 지혜가 있고 삼보에 귀의했더라도 만약 보
리심이 없다면, 그 사람은 대승불자라 할 수 없습니다.
산티데바 보살도『입보리행론』에서 ‘보리심을 일으켰다면 그 사람은 머지않아 승자勝者가 된다’고 할 정도로 보리심은 중요합니다. 우리 한국불교에서도 무엇보다 보리심을 일으켜서 대승불자가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티벳불교에서는 수행에서 차제次第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점수漸修가 되는 것인가요?
차제라는 것은 단계를 말합니다. 그러나 점수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아요. 다만, 수행에서‘갑자기’라는 것은 없어요. 티벳불교는 아주 조직적이면서도 차제적인 수행입니다. 조급증에 걸려 있지 않아요. 긴 세월 동안 수행을 하지만 그렇다고 속도를 늦추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사수聞思修수행도 중요하지요?
티벳불교에서 명상은 ‘어떤 것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어떻게 명상하는가’에 대해 정확하게 ‘들어야’ 합니다. 이것을 문聞, 즉 ‘듣는다’고 합니다. 또 명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면, 그렇게 안 것에 대해 ‘숙고’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것을 사思, 즉 ‘숙고한다’고 합니다. 이 숙고를 통해 자신이 듣거나 읽은 것이 바른 내용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바르다고 판단하고 납득한 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명상을 합니다. 이것이 수修, 즉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문사수’가 성립됩니다.

글. 유철주 사진. 하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