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불교] 밥을 먹듯이 불교를 꼭꼭 씹어 먹었다

내가 만난 불교

2012-02-24     불광출판사

누구에게나 인생의 전환점이 있기 마련이다. 23살의 어느 봄날, 붓다가 나에게로 깃들었다. 인연 따라 천백억 화신으로 몸을 나투시듯 나에게 붓다는 고작 한 그릇 ‘밥’으로 화하였으나, 나는 이 소박한 첫 인연을 놓치지 않았다. 운이 좋게도.

15년 전 북한 동포들이 끔찍한 배고픔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접한 때가 그즈음이었고, 그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끼니 거르며 전하던 이가 법륜 스님이었고, 스님을 통해 알게 된 것이 불교였다. 내가 만난 불교는 참 쉬웠고, 소박했고, 정의로웠으며 인간적이었다. 지척의 이웃이 배를 곪고 있으니 최소한 굶어죽지않도록 쌀과 약을 보내주자는 것이었으니, 얼마나 마땅한 도리였었나. ‘생명을살리는 일 앞에 어떤 것도 우선할 수 없다’라는 명제는 불교의 근본과 맞닿은 것이었고, 나는 밥을 먹듯이 불교를 꼭꼭 씹어 먹었다.

그 첫 인연이 내 삶을 오래도록 이끌었다. 교사의 길을 가지 않고 북한 어린이들을 돕는 일로 20대를 보냈다. 고통 받는 아이들이 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를 했고, 사회봉사와 수감생활을 마쳤다. 혹독한 비난을 받았으나 그 가운데 나는 성장했고, ‘반대자와 친구하기’를 맨몸으로 학습할 수 있어서 좋았다.

출소 후, 붓다가 6년간 고행했던 인도 둥게스와리의 불가촉천민 마을에서 2년간 수행하며 봉사활동을 했다. 이 좋은 경험을 청년들과 함께 나누고자 다시 2년간 배낭 하나 메고 아시아의 빈곤 국가를 다니며 마음수련과 마을봉사를 겸하는 선재수련을 떠났다. 붓다의 전법선언처럼, 우리의 청춘선언도 가난했지만 뜨거웠었다.

그리고 다시 내가 돌아온 곳은 우리 민족의 아픈 현실인 분단. 적어도 후배세대에게는 통일된 코리아를 선물하고 싶었고, 북녘의 배고픔이 멈추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자살세대로 전락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마음껏 일하고 사랑하고 꿈꿀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자 오늘도 분투한다. 이 모든 것이 붓다로부터 연유되었으니, 나의 자산은 오직 붓다이고, 나의 ‘스펙’은 불교 외에는 없다고도 하겠으나 나는 충분히 족하다.

붓다로부터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12세의 싯다르타는 농경제에 참석해서 ‘왜 하나가 살기 위해 하나가 죽어야 하는가?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은 없을까?’를 고뇌했다. 이 화두로부터 ‘경쟁 없는 삶’을 오늘도 꿈꾼다. 19세에 궁성 밖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민중들의 삶을 목격했고, 29세에 모든 기득권과 낡은 가치관을 버리고 출가를 결행했다. 늘 ‘안온한 집’에 안주하려는 나를 ‘출가정신’으로 일깨운다. 깨달음을 얻고 난 36세, 방황하는 청년 야사와 그 친구 50명을 교화함으로써 늘 청년들의 고뇌와 방황에 함께하셨으니 붓다는 청춘들의 자상한 멘토였음이 분명하다.

41세 때 로히니 강변에서 물 분쟁으로 전쟁 직전까지 치닫던 콜리족과 석가족을 화해시킨 일은 인류분쟁에 ‘평화의 해법’을 제시하신다. 43세 때 아내 야소다라와 모친 마하프라자파티 왕비를 출가시킴으로써 여성해방을 실현하였고, 천민신분인 이발사 우팔리의 출가를 수용함으로써 계급차별의 오랜 금기를 타파하셨다. 56세 때 앙굴리말라를 살인자에서 수행자로 교화하셨고, 79세 때 밧지국을 침공하려는 아자타삿투 왕에게 ‘나라가 망하지 않는 7가지 법’을 설하시어 국가운영의 바른 길을 제시하였다.

룸비니의 길에서 태어나 평생을 길에서 사시다가 쿠시나가라의 작은 마을에서 열반에 드신 인간 붓다! 아, 얼마나 위대한 생애이며, 실천적 가르침인가?

붓다의 ‘삶’이 곧 ‘가르침’이었고, 나는 거부할 수 없는 그 삶에 매료되어 여기까지 왔으니, 붓다를 만난 나의 삶은 축복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10년째 절에 사는 나는 오늘 새벽에도 108배로 몸과 마음을 낮추고, 발우공양을 하며 내 삶의 근원과 지향을 꼭꼭 씹어 되새긴다.

이 세상 누구도 홀로 존재할수 없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대와 함께 존재하고, 시대와 동행하는 나는 행복하고 감사하다. 진정 행복은 혼자서 오지 않는 이치를 오늘도 부처님 전에 두 손 모으며 가슴에 새긴다.


오태양 | 2001년 ‘불살생과 생명존중’이라는 오계를 수계한 불자로서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결단으로 군입대를 거부한 불교계 양심적 병역거부자 1호다. 2002년부터 수행공동체 정토회에서 공동체생활을 하고 있으며, 현재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에서 교육국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