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따라 마음 따라] 깨달음을 묻는 속가 아버지께

인연 따라 마음 따라

2012-02-23     혜민 스님

속가 아버지, 며칠 전에 깨달음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잖아요. 그리고 또 어떻게 하면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느냐고요. 제가 한번 최대한 쉽게 설명해볼게요. 잘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한번 해 보겠습니다.

● 깨달음이라는 것은요, 진정한 내가 무엇인지를 실제로 봐서 아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한자로 진아眞我라고 하기도 하고 내 안의 진짜 주인공主人公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또는 마음 본래의 성품이다 해서 본성本性,태어나기 전부터의 본래 모습이다 해서 본래면목本來面目,그 주인공이 곧 부처라고 해서 불성佛性등으로 표현해요.

●그러나 그 주인공이 내 안에 따로 무슨 신비한 존재로 있는 것이 아니고요. 지금 그 주인공이 바로 이 글을 보고 있습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깨달음이 뭐지?”하고 물어보고 있어요. 즉 묻는 그 자에게 되돌려서 묻는 그 자를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깨달아야 하는 대상은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궁금해하는 그 자입니다. 이 글을 보는 그 자가 바로 우리가 봐서 깨달아야 할 대상입니다. 지금 알 듯 말 듯하다고 생각하는 그 자가 바로 우리가 찾아 확인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런데요. 그 주인공, 보는 자를 돌이켜서 보려고 하면 잘 보이지가 않아요. 왜냐면 마치 눈을 뜨고 세상을 보면서, 보는 눈을 보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서 그래요. 눈을 뜨고 세상을 보면서, 그 눈으로 그 눈 자체의 모습을 볼 수가 없잖아요? 눈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으면 우리의 주의가 모두 밖에 보이는 대상으로 흘러나가기 때문에 보고 있는 그 눈 자체를 느끼려 하거나 보려고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주인공을 봐서 깨달으려고 하면 밖으로 나가는 우리의 주의를 안으로 되돌려서 그 보는 주인공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나를 확인해야 합니다. 이 과정을 옛날 스님들은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 해서 밖으로 나가는 빛을 돌려 거꾸로 내 안을 비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요,내마음안에있는그주인공은특징이하나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없었던 것이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주인공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원래 있었던 것이지 새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새로 생겨난 것은 시간이 지나면 무상해서 곧 사라지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찾는 주인공은 원래부터 있었던 근본 성품입니다.

● 예를 들어서 좌선을 하거나 기도할 때 부처님이나 보살님의 모습이 나투셨다면 그것은 우리가 찾는 주인공이 아니에요. 왜냐면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고 없었던 것이 새로 생겨 나타난 것이므로 그 불보살님의 모습도 곧 사라집니다. 수행하다 보면 마음이 고요해져 천상의 지복감至福感처럼 아주 행복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우리가 찾는 주인공이 아니에요. 왜냐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분은 천상의 소리나 빛을 볼 수가 있어요. 그것도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인공이 아니에요. 화두가 깨지고 나면 밑동이 쑥 빠진 것처럼 시원할 수 있어요.  그 느낌도 똑같은 이유로 사실은 본성이 아니에요. 그밖에 소위 말하는 일체의 신비한 체험은 주인공이 아니에요. 없었던 것이 새로 생겨난 것이므로 아무리 대단한 체험이나 능력이 생겼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일체가 우리가 찾아 확인하고자 하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 그러면 그러한 느낌이나 불보살님의 모습, 신비한 체험이 주인공이 아니면 뭐가 주인공일까요? 바로 그 느낌을 아는 놈이 주인공입니다. 왜냐면 그 아는 놈은 그 느낌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원래 있었어요. 또한 아는 놈을 다른 식으로 표현해보면 그 모습이나 체험을 만들어낸 그 바탕, 즉 마음의 의식공간이 주인공입니다. 왜냐면 불보살의 모습이나 천상의 소리가 생겼다 없어져도 그것들이 일어났다 사라진 무대인 그 마음의 의식공간은 원래부터 있었거든요. 그런데 사실 그 아는 놈과 마음의 공간은 둘이 아니에요. 왜냐면 아는 놈을 찾아 확인해보면 놈은 없고 앎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 의식공간 안의 일들을 우리가 알기 때문에 사실은 같은 말입니다.앎과 마음 의식공간이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 둘은 완전히 같습니다.

● 꿈에서는 나도 있고 내가 아닌 인물들도 등장합니다. 그런데 꿈에서는 나만 나이고 다른 인물들은 남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꿈속에서 남을 보고화도 나고 미워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그래요. 하지만 꿈에서 깨어보면 남도 사실은 내 마음의 의식공간에서만들어낸 일이기 때문에 즉 내 꿈이었기 때문에 남도 나였던 것이에요. 인물뿐만 아니고 꿈에서 본 꽃이나 자동차, 집, 나무 등도 사실 일체가 나였습니다. 즉 내 마음의 의식과 공간 일체가 나인 것입니다. 각각 물체와 사람들의 상相을 따라가면 그 마음의 근본 바탕인 의식과 공간 전체가 나로 보이지 않지만 일체를 꿈이라고 알면 그 꿈을 비로소 가능케 하는 그 밑 도화지가 보여요. 텅 빈 채로 살아있는 그 도화지, 앎 자체가 아버지의 주인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