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생각하는 대로 살아진다

살아 있는 명법문

2012-02-23     불광출판사


승원 스님 | 관조 스님을 은사로 범어사에서 출가했으며, 해인사 승가대학 및 동국대학교 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봉암사, 동화사 선원 등에서 수선하였고 육화정사와 선림원을 개설하여 도심포교에 앞장섰다. 봉은사 총무와 기획실장, 조계종 대변인, 총무원 기획실장 등을 역임하였다. 1999년부터 가평 백련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으며, ‘가평불교사암연합회’를 결성하여 회장으로서 지역 불교 발전을 위해 진력하고 있다.


삶은 생각하는 대로 살아진다

불자가 기도를 하는 것은 자기의 삶을 완성하는 수행이자 가족과 이웃, 세상의 행복을 발원하는 복된 일입니다. 불자들이 꾸준히 절을 찾아 법회에 참석하고 기도와 수행을 해야 하지만, 많은 불자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일정한 신행생활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분들을 ‘면’자 신도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웃종교 사람들은 바빠도, 피곤해도, 일이 있어도 일정한 신앙생활을 합니다. 진정한 불자라면 ‘면’자 신도가 아닌 ‘도’자 신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공부하려는 마음을 냈다가 한두 번 게으름을 피우면 다음에는 미안해서 못 나가게 되고, 또 그러다 보면 하기 싫어지고, 이런 식으로 수행이 흐지부지되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인연을 잘 관리하는 것이 수행의 핵심
물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시간이 부족해서 초하루, 지장재일, 관음재일 등을 일일이 다 챙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자들에게 간곡하게 권하는데, 한 달 중 특정한 날을 정하고 그날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도법회에 나가겠다는 서원을 세우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관음재일만큼은 빠지지 않겠다’, ‘지장재일만큼은 꼭 참석하겠다’하는 원력을 세우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원력을 세우고 꾸준히 수행을 해나가야 마음에 흔들림이 없을 것입니다. 저에게 누가 ‘수행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면 저는 즉석에서 ‘관리’가 수행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이것을 삼상三常이라고 하는데 이 세 가지를 잘 관리하는 것이 수행의 기본입니다. 여기에 저는 두 가지를 더합니다. 시간을 잘 관리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다른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지만 수행도 시간을 관리하지 못하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책상에 앉는 소설가가 불후의 명작을 쓰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책상에 앉는 작곡가가 위대한 작품을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연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인연을 잘 관리해야 그 삶이 편안하고 수행에도 성취가 있습니다. 결국 시간과 인연을 잘 관리하는 것이 수행의 핵심인 것입니다. 특별하게 3,000배를 하고 용맹정진을 몇 번씩 하는 것, 이런 것만이 수행을 잘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철야정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철야정진을 하고 나면 3~4일 정도 리듬이 깨져서 후유증이 오래가기 때문입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회복이 더딥니다. 그래서 저는 말뚝신심으로 철야정진을 하는 것은 젊은 불자들에게 권장하고, 나이가 있는 불자들에게는 철저하게 시간을 관리해 수행을 이어가는 데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수행하다 11시쯤 잠자리에 들고 새벽 4시쯤 일어나 다시 수행하는 식으로 정진하라고 일러줍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한 수행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생각한 대로 살아간다
절집에서는 ‘참회하라’, ‘발원하라’, ‘기도하라’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 말의 핵심은 마음을 내려놓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놓으라고 해서 모든 걸 깡그리 다 놓아버리면 안 됩니다. 무념무상이란 잘못된 생각을 놓아 망상이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좋은 생각마저 모조리 비워 버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참선할 때도 모든 잡념을 버리지만 오직 하나, 화두만큼은 끝까지 붙들고 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의 올바른 생각을 놓지 않고 참구하는 것이 삼매三昧이지, 아무 생각 없이 멍청하게 앉아있는 것을 삼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저는 우스갯소리로 우리가 태어날 때 정신없이 태어나는 것은 죽을 때 정신없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늘 깨어있으라’는 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깨어있다는 것은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죽기전에 바른 생각을 가지고 죽으면 다음 세상에 태어날 때 올곧은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현재의 일념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공의 법칙』의 저자 맥스웰 몰츠Maxwell Maltz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의 뇌는 미사일의 유도 장치와 같아서 자신이 목표를 정해주면 그 목표를 향해 자동으로 유도해 나간다.” 어떤 생각을 머릿속에 품고 있으면 그 생각대로 삶이 전개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생각하는 대로 산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올곧은 생각을 지켜내고 잘못된 욕심, 집착, 번민을 비워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고 참선을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참선은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비우는 작업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하나의 생각을 유지해나가는 게 간화선의 기본입니다. 바른 생각과 원력을 잘 지키려면 나머지 것들은 덜어내고 비워야 합니다. 특히 모든 병과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집착을버릴수있어야합니다. 법정 스님은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 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채움의 전제조건이 비우기라는 말씀이지요. 마음 안에 가득 차 있는 분별, 망상, 시비 등을 비워야 새로운 깨우침이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누군가 있어서 자기의 마음 안에 온갖 미혹과 삿됨을 채워놓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결국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묶어놓고 있는 것이지요. 아무도 여러분을 불편하게 한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마음속에 하나를 집어넣고 불편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늘 이런 얘기를 합니다. “고정된 관념을 버려라.” 만약 내 안에 조금이라도 고정관념이 있다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판단하는 데 그것을 잣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다운 불자는 부처님이라는 고정된 틀마저도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한 분만을 부처님으로 본다면 다른 분들을 부처님으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과 불교라는 정형화된 틀에서 자유로워야 모두를 부처님으로 볼 수 있고,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참다운 불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착을 버리면 즉시 해탈한 존재
중국의 초조 달마대사로부터 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에 이르기까지 선종의 역대 조사스님들의 법문은 모두 ‘안심법문安心法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뜻을 담은 남악회양 스님과 석두희천 스님의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전해옵니다. 하루는 남악회양 스님이 석두희천 스님에게 시자를 보냈습니다. 시자가 석두희천 스님께 말하길 “스님, 저희 스님이 여쭤보라고 해서 왔습니다.”라며 “어떤 것이 해탈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석두희천 스님이 “누가 그대를 속박했는가?”라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이에 다시 시자가“어떤 것이 정토입니까?”라고 물었는데 이번에는 “누가 그대를 더럽혔는가?”라고 반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시자가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라고 묻자 “누가 너에게 생사를 주었느냐?”라고 스님은 답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시원합니까? 아무도 너를 속박하거나 불편하게 한 적이 없는데 스스로 그러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공감이 가시는 일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정이나 사회에서 아주 사소한 것 하나 때문에 얼굴을 붉히고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불편하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선가에서는 숲도, 물도, 바람도 깨닫는다고 합니다.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 다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지요. 불편한 눈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다 불편해 보이지만 평화로운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다 평화로운 법입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 특히 실패한 사람들은 ‘언젠가 증후군Someday Sickness’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에, 언젠가는할거야’라는 이것때문에 모두 실패하고 안 되는 것입니다. 그저 맹목적인 낙관으로 삶을 허비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좌우명은 ‘어느 날’이랍니다. 하지만 그 ‘어느 날’은 영
원히 오지 않습니다. 그날을 위해 자신을 갈고 닦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지금 만족하지 못하고 평화롭지 못하면 영원히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니 지금 놓아버리세요. 지금 자유로워지세요. 현재는 과거의 필연적 산물이고 모든 미래의 필연적인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현재’가 가장 중요합니다. 깨달음의 성취도, 평화스러움도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내일이나 다음이 아니고 내 마음속에, 내가 서 있는 삶의 현장 바로 여기에 그대로 들어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머물되 고정된 관념과 집착을 버리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해탈된 자유로운 존재이며 부처님의 품속에 들어있는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