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법구] 불법은 세간에 있다

내 마음의 법구

2012-01-04     김종락

신문 기자 시절 종교를 담당할 때 쉽지 않은 일 중의 하나가 선방 취재였다. 선방에서 잠시나마 함께 정진하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하게 전하고 싶었지만 선방 스님들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선방은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못한 채 큰스님과 차담이나 나누고 몇몇 스님들이 연출해 주는 사진이나 찍는 것으로 취재를 대신하며 마음이 짠했던 건 기자의 무력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들이 고고하게 진리를 구하는 사이, 먹고 사느라 일상의 온갖 비루를 견뎌내야 하는 우리들의 삶이 생각나서였다. 정말, 진리를 배우고 수행하며 대자유를 얻는 부처님의 법은 세상을 버려야 가능한 출가자들의 전유물인가? 사랑하고 아이 기르며 살아남기에 급급한 우리들은 그저 산사의 선방을 그리워해야만 하는 것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매 안거마다 수천 명의 프로 수행자들이 뼈를 깎는 수행을 해도 쉽지 않은 깨침이,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당신이나 내게 가당키나 한가 말이다. 남의 나라 일처럼 무심하게 불교기사를 쓰며 삶에 찌들던 내게 2008년 봄 중국 선종 사찰을 순례하며 마주한 6조 혜능 선사의 무상송(無相頌)은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었다.

불법재세간불리세간각(佛法在世間不離世間覺)
이세멱보리흡여구토각(離世覓菩提恰如求兎角)

불법은 세간에 있으니 세간을 버리지 않아야 깨우칠 수 있네
세간을 떠나 깨우침을 찾는 건 토끼에게서 뿔을 찾는 것과 같네.


부처님의 진리가 산사의 선방이 아닌, 우리가 부대끼며 살아가는 저잣거리에 있다는 게송이었다. 이 게송을 만난 뒤 수천 리 순례를 계속하며 새롭게 보는 불교는 그 전과 달랐다. 혜능 선사가 증득한 진리의 골수를 담아 낸 『육조단경』을 설한 것부터 그랬다. 『단경』이 설해진 광둥(廣東)성 샤오관[韶關]시의 대감사는 고즈넉한 산사와 거리가 멀었다. 재래식 노점과 현대식 쇼 윈도우가 어수선하게 늘어선 시장통 옆에 있었다. 선사의 법문이 향하는 대상도 출가자뿐만 아니었다. 도교 수행자와 일반인,관료, 선비들이 참여한 가운데 한 벼슬이치의 물음으로 법을 설했다. 그렇다면 왜 선사는 산사를 버려두고 시끌벅적한 저잣거리의 사찰에서 일반인과 이웃종교 신도, 벼슬아치들을 상대로 가르침을 폈을까?

혜능 선사로 인해 본격화한 선불교는 출가자가 전유하는 출세간의 종교가 아니었다. 이웃종교와 도시 생활인, 오랑캐와 사냥꾼을 위한 저잣거리의 가르침이었다. 돌아보면 인류사를 흔든 진리의 가르침을 저잣거리에서 펼친 인물이 어디 혜능 선사뿐인가.기자를 그만둔 뒤 꾸린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불교시민강원’을 열고 도시 생활인이나 이웃종교 신자도 스님 못지않게 ‘제대로’ 불교를 공부해 보자는 원을 세운 뜻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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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꽤 오래 신문 기자로 일하는 동안 몇 차례 종교를 담당했다. 올해 봄 뜻있는 학자들과 힘을 합쳐 시민 인문학 운동단체인 대안연구공동체를 만들었다. 이 공동체에서 최근 꾸린 불교시민강원에서는 이웃종교 신자를 포함한 30여 명의 시민들이 불교 경전을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