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나그네를 편안하고 아늑하게 맞아주는 옛절

우리 절에 안기다/전남 순천 조계산 선암사 템플스테이

2012-01-04     불광출판사

      선암사 제1경으로 꼽히는 승선교, 무지개 다리 안으로 강선루가 보인다.

한 사람의 입심이 한 사찰의 업무를 마비시켜버렸다
. 지난 8월 말, MBC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저자 유홍준 교수가 선암사를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손꼽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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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방송 다음 날부터 선암사 홈페이지는 접속 폭주로 다운되어 10분 간격으로 리셋(Reset)시켰으며, 쉴 새 없이 걸려오는 문의전화로 근 한 달간 일상 업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방송의 힘을 빌어서나마,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옛절의 아름다움이 다시금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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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문턱, 쌀쌀한 날씨에도 선암사는 인파로 북적였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도 급증하여 한 달에 200명을 넘어서고 있다. 전남 지역에서 해남 미황사, 구례 화엄사를 제치고 템플스테이 참가자 1위에 등극할 태세다. 보면 볼수록 정감이 넘치는 선암사에서의 하룻밤, 한 해의 묵은 감정을 닦아내며 한층 맑아진 마음으로 새해 계획을 품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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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암사는 전각과 전각이 돌담으로 나뉜 공간이 많고 돌담 사이에 각종 나무가 자라고 있다. 까치발을 들어 돌담 안을 들여다보면 마치 옛 사람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오랜 세월이 빚은 아름다운 유산
태고총림(太古叢林) 선암사는 태고종 유일의 총림[선원(禪院), 강원(講院),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종합수도도량]으로, 백제 성왕 5(527) 아도 화상에 의해 창건된 이래 한국불교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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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는 천오백년의 역사를 간직하며 삼다(三多)라 하여 곳곳에 연못, 돌우물(石井), 꽃이 많다. 연못이 많은 이유는 정유재란을 비롯한 대화재로 인해 수많은 건물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소화수 확보를 목적으로 연못을 많이 조성하게 된 것이다. 돌우물이 많은 이유는 선원과 강원, 염불원 등이 6당으로 나뉘어 각각 독립된 생활을 하며, 각 당마다 식수와 공양을 해결할 급수시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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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는 무엇보다 꽃의 천국으로 불릴 만큼, 꽃의 종류와 수를 모두 헤아릴 수 없다. 600년 된 홍매, 동백과 목련, 영산홍과 자산홍을 비롯해 수많은 야생화 등이 사시사철 절 전체를 장엄한다.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온 천오백년의 세월이 빚은 아름다운 자연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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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다른 사찰엔 있는데, 선암사에만 없는 삼무(三無)의 전통이 있다. 사천왕문을 비롯해 대웅전에 협시보살(본존불을 보좌하는 좌우 보살) 및 어간문(御間門, 전각의 정중앙 문)이 없다. 조계산 주봉이 장군봉인데, 장군이 수호하고 있으므로 호법신장인 사천왕상이 필요 없다. 그리고 대웅전 주존불인 석가모니부처님이 마구니를 제압한 항마촉지인 수인을 하고 있어 협시보살의 도움이 필요 없다. 또한 부처님처럼 깨달은 사람만이 어간문을 통과할 수 있다고 하여 따로 중앙에 문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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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삼다와 삼무의 의미를 생각하며 선암사를 느긋하게 음미하다 보면, 어디선가 그윽한 산의 향기가 풍겨오고 산새들의 지저귐이 감미롭다. 어느샌가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어 빨려드는 느낌이다. 어수선하던 사람들의 움직임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지극히 평화로운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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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새벽예불. 태고종 스님들은 붉은 가사를 수하는데, 일월(日月, 낮과 밤)을 상징하는 삼족오와 토끼 문양이 새겨져 있다.

즉문즉설이 펼쳐지는 스님과의 차담
조계종 전통사찰 템플스테이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낯선 모습이 포착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스님들이 밤색이 아닌 붉은색 가사[紅袈裟]를 수하고 있는 것이다. 절을 하는 방식도 양 손바닥을 하늘로 펴고 귀 높이로 올리는 접족례(接足禮)를 하지 않고, 손바닥을 그냥 바닥에 대고 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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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차이에 대한 의문점은 저녁예불 후 이어진 스님과의 차담시간에 풀 수 있다. 편안하게 차를 마시며 즉석에서 묻고 답하는 방식의 즉문즉설이 펼쳐졌다. 지도법사 스님이 제 법명은 진정으로 봉사하는 스님이라고 해서, 진봉입니다.”라며 참가자들의 긴장감을 풀어준다. 가장 먼저 조계종과 태고종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스님의 답변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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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제일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태고종이 어디서 툭 떨어져나온 종단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의 한국불교태고종과 대한불교조계종은 원래 한 뿌리입니다. 이승만 정권 때 불교 분열 정책에 의해 승려들의 결혼을 허용하는 측과 독신을 주장하는 측으로 양분되어, 오랜 분규 끝에 1970년 태고종이 조계종과 결별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태고종은 독신을 고집하지 않고 가정을 돌보며 수행과 교화를 하는 제도를 인정하고 있으며, 종조(宗祖), 법의(法衣), 불교의식 등 역사적으로 이어져온 한국불교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
이번 선암사 템플스테이 체험형에는 가족 단위의 참가자가 많았다. 경남 창원을 중심으로 한 소방관 동료 모임의 일곱 가족 26명이 대표적이다. 그 중 한 명이 불교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다며, 불교의 가르침을 물었다. 스님은 불교의 탄생 배경부터 시작해, 불교사상의 특징, 사성제와 팔정도 등 기본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해줬다. 다소 긴 시간이었지만, 어른부터 아이까지 스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한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알아차림에 대한 당부로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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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쉽습니다. 단지 순간순간 어떤 마음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림을 해주세요. 알아차림 하면 그 마음에 제동이 걸려 확대가 되지 않아요. 우리는 왜 화를 내는지도 모르고 욕망에 휩싸여 퍼붓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얽매어 후회하는 것은 살아가는 데 절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선을 행하며 잘 살아갈 것인가를 실천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


      1. 편백나무 숲에서 다정한 모습을 연출한 강종교(53세)·여경숙(48세) 부부.
      2. 선암사 칠전선원 달마전 뒤뜰의 돌우물.

마음껏 기대어 쉴 수 있는 자연에 감사하다
도시적 삶에 익숙한 이들에게 산사의 밤은 당혹스럽다. 어둠에 휩싸인 적막이 익숙하지 않다. 몸은 고단하고 9시면 잠을 청해야 하지만,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마침 보름달이 환하게 떠올랐다. 경내를 하릴없이 돌며 사색에 잠겨본다. 한 해가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발걸음 하나하나에 생각들이 저마다 알아서 정리가 된다. 가져온 책을 펼쳐보기도 한다. 활자들이 마음속에 박혀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그렇게 잠이 들고 청아한 도량석 소리에 잠이 깬다. 새벽 3시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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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전사물(佛殿四物: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고요히 잠들어있는 세상을 깨우면서 새벽예불이 엄숙하게 행해진다. 이어서 선방 스님의 지도 하에 108배와 참선 실참이 이뤄지고, 발우공양과 도량을 정비하는 운력이 진행된다. 말이 필요 없는, 평화롭고 정갈한 아침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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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나무 숲 걷기 명상이 시작되자, 참가자들 사이에 소풍을 가듯 가벼운 설렘이 인다. 선암사 제1()인 승선교(昇仙橋, 보물 제400)를 건너 산을 조금 오르자, 하늘로 곧장 뻗어오른 편백나무들이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도심의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껏 기대어 쉴 수 있는 자연에 새삼 감사함이 일고 가슴이 충만해진다. 동료가족 친목모임을 선암사 템플스테이로 제안했던 박영규(47, 소방관) 씨도 큰 만족감을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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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근무지가 다르지만, 일곱 가족이 13년째 모임을 유지하며 해마다 두어 차례씩 여행을 떠납니다. 올 봄에는 지리산 종주를 했고, 이번에는 우리의 전통문화 체험을 염두에 두고 선암사 템플스테이를 찾았습니다. 마음으로만 불교에 가까웠는데, 발우공양과 참선 등을 직접 체험해보니 불교문화의 우수성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특히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대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어 좋았는데, 나중에 큰 향수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
간혹 지인들로부터 여행하기 좋은 사찰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곤 한다. 선암사가 그 추천목록에 빠질 수 없다. 그 이유는 늘 선암사 템플스테이를 밝고 활기차게 진행하는 열혈 실무자 자련화(38) 보살의 말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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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누구나 가슴에 품은 절 한 곳씩은 있기 마련이에요. 저에겐 선암사와의 첫 만남이 강렬한 임팩트로 다가왔지요. 10여 년 전 아주 무덥던 여름, 남도 사찰을 순례할 때였어요. 할머니가 손녀딸을 맞아주듯, 흙길과 계곡, 돌담, 전각과 전각 사이 우거진 나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지친 나그네를 아주 편안하고 아늑하게 맞아주었지요
.”


      첨성각 후문의 연못. 선암사엔 역사적으로 화재가 많이 나서 소방수 역할을 하는 연못이 많다.


선암사 템플스테이 | 문의
061)754-6250, www.seonamsa.net
[우리 절에 안기다]는 한국불교문화사업단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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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templest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