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사랑에 빠진 학자

특집

2012-01-04     불광출판사

불교와 사랑에 빠진 학자들이 늘고 있다.
본인의 연구 영역에서 시선을 돌려 불교와 학문을 연계시켜 성과물을 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또 전공을 살리면서 수행에 심취한 학자들도 눈에 띄고 있다
.
이런 현상은 불교의 발전과 학자 자신의 발전을 함께 이룰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
그들이 불교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사랑을 이어갈 것인지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


불교와 학자,
그리고 불자 학자
그들에게는 마당
이 필요하다

지난
114일 오후 2, 서울 법련사 2층 강당이 가득 찼다. ‘믿음과 수행, 그 접점을 찾아서를 주제로 진행된 제6기독자-불자 교수 공동학술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각 종교별 믿음과 수행법에 귀를 기울였다. 특히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두 종교 외에도 가톨릭, 원불교, 유교에서 바라보는 믿음과 수행의 전통도 발표돼 150여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날 행사를 진행했던 한국교수불자연합회(이하 교불련) 회장 최용춘 교수(상지영서대 법학과)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학자들이 만나 이웃 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또 교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서로를 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러한 모임이 앞으로도 다문화 다종교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자리로 발전해 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독자-불자 교수들은 앞으로도 매년 학술대회를 통해 종교학술교류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
교불련은 1988년 창립된 이후 매년 학술대회와 수련회, 성지순례 등을 진행하고 있다. 회원 숫자만 1,500여 명에 이른다. 교불련은 학제간 연구와 불교동아리 지도, 불교의 사회적 방향 제시 등을 주요 사업 영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안국선원 수불 스님의 도움으로 전국 30개 대학 불교동아리 지도 교수들에게 50만원씩의 후원금을 전달했다. 전체 300여 만 명에 이르는 대학생 중 공식적으로 불교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학생이 채 1,000명이 되지 않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다. 교불련 김관일 사무국장은 지도교수들에 대한 후원 사업은 장기적으로 교불련과 대학생불교연합회가 함께 활동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
제도권에서 교불련이 활동을 한다면 불자(佛子) 학자들도 자신의 학문영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어 주목된다. 고려대 행정학과 윤성식 교수나 성균관대 경영학과 유필화 교수, 서울대 치대 배광식 교수, 고려대 반도체물리학과 양형진 교수, 영남대 장현갑 교수, 서강대 물리학과 박영재 교수 등은 자신의 연구와 불교를 접목시켰거나 남다른 수행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또 서울대 수의학과 우희종 교수, 서강대 물리학과 박광서 교수, 한양대 국문과 이도흠 교수 등은 불교시민사회 활성화와 활발한 사회참여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데 진력하고 있기도 하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김성철 교수 등은 전공을 바꿔 불교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경우이기도 하다
.


      제6회 ‘기독자-불자 교수 공동학술대회’ 모습.

현직 치과의사이면서 간화선 연구자이기도 한 변희욱 박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근본적으로 여러 학문들과 관련이 많기 때문에 학자들이 연구 과정에서 직접적인 연구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앞으로도 이러한 경향은 다양한 학문적 성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하고 있는 한 학자는 불교가 앞으로 더 많은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학문적 연구에 그치기보다 사회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자 학자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불자 학자들이 맘껏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자신의 대학에서 연구하는 수준을 넘어 불교계 차원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불교와 사랑에 빠진 학자
불교에 자본주의 대안 있다” _
고려대 행정학과 윤성식 교수


117일 만난 고려대 행정학과 윤성식 교수는 나이(58)를 무색케 할 정도로 얼굴이 밝았다. 초면에 실례를 무릎 쓰고 물었다. “비결이 있습니까?” 웃음을 지어 보인 윤 교수는 노하우를 전격공개했다.
제가 부처님을 만난 지 10여 년 됐습니다. 그 당시 학교 앞에 위빠사나를 가르치던 선원이 있었습니다. 불교 공부를 하고 싶어서 그 선원에 나가 위빠사나를 시작했습니다. 그 후 매일 오후 1시간씩 명상을 하다 보니 표정도 밝아지고 건강도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
윤 교수는 진작 불교를 만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후회될 뿐이라고 했다. 이렇게 시작된 불교와의 인연은 학문적 연구로 연결됐다
.
지난 40여 년간 사회과학을 연구하면서 얻은 교훈이 인간의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 사회과학과 현재의 사회과학 방법론으로는 더 이상 사회과학의 유용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해답을 불교에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
윤 교수는 수행을 하면서 조계사 불교대학을 다녔다. 그리고 다시 동국대에서 불교학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
윤 교수는 행정학과 교수지만 경영학, 경제학, 회계학을 공부하고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이런 학문적 연구 때문인지 윤성식 교수는 한국 최고의 감사전문가로 꼽힌다. 전공 자체가 감사의 필수 요소들로 구성돼 있다. 현재 대학원과 학부에서 강의하는 수업도 예산과 회계. 이런 윤 교수가 최근 불교자본주의-시장자본주의의 대안이라는 책을 냈다. 책이 발간된 직후 윤 교수 주위에서는 무슨 불교자본주의라는 의문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
불교는 출발 당시에 상공업자들의 열렬한 지원을 받았으며, 매우 시장 친화적이고 자본친화적인 종교의 성격을 지녔습니다. 또 당시의 종교 기준으로 본다면 매우 파격적인 혁신 종교였습니다. 불교는 출가자들에게도 사유재산을 부분적으로 허용하였고, 재가자에 대해서는 이자를 인정하고 금융업과 부동산 임대업까지도 장려했습니다
.”
윤 교수는 시장과 자본에 친화적인 불교가 현재 많은 폐해를 남기고 있는 자본주의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
불교자본주의는 기존의 시장자본주의를 수정, 보완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비록 시장과 자본은 허용하지만 시장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자본주의입니다. 불교가 타 종교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는 종교라면 그리고 불교 사상이 다른 사상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는 사상이라면, 불교교리로부터 독특한 불교경제윤리와 연기자본주의 원칙에 근거한 새로운 불교경제철학과 시스템을 도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윤 교수는 불교자본주의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변화’, ‘정부의 적극적 역할’, ‘경제공동체의 회복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제는 불교자본주의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자본주의 영역에서 정부와 기업, 개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할 계획입니다
.”
불교를 통해 얻은 모티브로 우리 사회의 대안을 제시하려는 윤 교수의 몸놀림은 이미 빨라지고 있었다
.


불교와 사랑에 빠진 학자
부처님 가르침은 현장 중심” _
성균관대 경영학과 유필화 교수


117일 오후 7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 2층 전통문화공연장. 50여명의 화쟁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이 성균관대 경영학과 유필화 교수의 강의에 눈과 귀를 집중하고 있다. 이날 강의의 주제는 불교와 21세기의 경영 리더십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또 현장 위주였습니다. 기업은 가장 치열하게 현실과 부딪히는 삶의 현장입니다. 중생(衆生)들이 다 기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자들은 기업을 잘 모릅니다. 기업을 이끌어가려면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동양사상인 불교를 바탕으로 경영학의 미래를 연구하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
매월 6~7차례의 강연을 다니며 불교경영을 전하고 있는 유 교수는 3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참선을 하고 있는 불자다. “1981년 미국 유학시절 서강대 박광서 교수님과 함께 보스턴에서 불교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이뭣고화두를 들고 있습니다
.”
불자였던 어머니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절에 다녔던 유 교수는 유학 시절에도 부인과 함께 불교와의 인연을 이어 나갔다. “매일 아침 40분 정도 참선을 합니다. 참선은 를 바로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연구의 힘을 얻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
유 교수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을 대표하는 경영학자다. 대학교재로 쓰이고 있는 현대마케팅론을 비롯 부처에게서 배우는 경영의 지혜, 역사에서 리더를 만나다30여 권이 넘는 경영학 책을 펴냈다. 또 시집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를 낸 시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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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교수는 이날 변화 경영의 리더십을 특히 강조했다
.
모든 존재는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제행무상(諸行無常)입니다. 이 세계의 모든 존재는 생기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변화할 뿐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진실한 모습 중 하나입니다. 부처님은 우리의 번뇌는 존재가 변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변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데서 일어난다고 말씀하십니다
.”
유 교수는 이어 부처님이 말씀하신 제행무상의 원리가 오늘의 기업경영에 주는 큰 시사점은 오늘날처럼 기업의 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과거의 경험이 오히려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잘 되고 있는 회사일수록 환경의 변화에 더욱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기업의 세계에서는 성공이 바로 실패의 어머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특히 유 교수는 경영자는 사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일관성 있는 행동으로 변화의 모범을 보임으로써 회사 구성원들에게 확신을 주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역설했다. “가장 힘 있는 커뮤니케이션은 말이나 글로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서 말과 행동의 철두철미한 일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이날 강의를 마무리했다
.
유 교수는 2013년부터 선시를 경영에 응용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계획을 하고 있다. “()의 결정체인 선시를 통해 불교 경영의 진수를 전하고 싶어서. 수많은 저서들을 통해서 확인한 유 교수의 불교 경영노하우가 선시로 어떻게 표현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


불교와 사랑에 빠진 학자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 세계에 전할 터” _
서울대 치대 배광식 교수


저 한량없고 끝없이 맑은 마음세계와 청정하고 충만한 성품바다와 물거품 같은 중생들을 공과 성품과 현상이 본래 다르지 않고 한결같다고 관찰하면서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이 원래 한 부처인 아미타불을 항시 생각하면서 안팎으로 일어나고 없어지는 모든 현상과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의 덧없는 행동들을 마음이 만 가지로 굴러가는 아미타불의 위대한 행동모습으로 생각하고 관찰할지니라.”
118일 오후 7시 템플스테이정보센터 3층 보현실에 모인 금강 강독회회원들이 청화 스님의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을 합송했다. 보리방편문은 말 그대로 진리를 깨닫는 방편문으로 염불선을 주창했던 청화 스님이 은사인 금타 스님의 가르침을 정리한 것이다. 67번째를 맞는 강독회 모임은 매월 둘째 주 화요일에 모여 청화 스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모임으로, 서울대 치대 배광식 교수가 이끌고 있다. 배 교수는 매월 넷째 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회원들과 함께 전국을 사찰에서 철야정진을 하고 있다. 11월 철야정진은 화성 용주사에서 진행할 예정으로 벌써 70번째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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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독회 모임은 청화 스님의 저서인 마음의 고향을 교재로 10시까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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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교수의 불교 인연은 고등학생시절부터 시작됐다. 서울사대부고 보리회 창립멤버인 배 교수는 한국대학생불자연합회 서울지부 연구부장을 맡기도 했고, 서울대에 재직하면서부터는 서울대 교수불자들의 모임인 불이회회장을 지냈다
.
어려서부터 나름대로 불교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청화 큰스님을 만나면서 삶이 확 바뀌었습니다. 19854월경에 곡성 태안사에서 스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해회당 툇마루를 직접 닦고 계셨는데, 스님의 위의가 부처님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후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습니다
.”
배 교수는 청화 스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기 위해 4개의 인터넷 홈페이지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다음 카페 금강(金剛)/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cafe.daum.net/vajra)’와 네이버 카페 금강(金剛)/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cafe.naver.com/huineng)’, 다음 카페 금수레 불교도서관(cafe.daum.net/muyousim)’, ‘수미산(sumisan.hihome.com)’ 4개의 불교 인터넷 카페 및 홈페이지를 매일 2시간 넘게 관리하고 있다. 다음 카페는 7,000, 네이버 카페는 5,000명이 넘는 회원들이 서로의 공부를 탁마해 주고 있을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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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국제포교사회 회장을 맡으면서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배 교수는 한국 불교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을 마지막 소임으로 생각하고 있다
.
불교처럼 모든 것이 통하는 진리는 없습니다. 불교의 핵심 사상을 국내의 젊은이는 물론 해외 사람들에게도 알리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서양의 지식인들은 불교를 알고 싶어는 하지만 아직 종교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과제를 해결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


학자와 스님
스님을 만나 비로소 불교의 본질에 다가서

_
안동대 국문과 전재강 교수와 조계종 원로의원 고우 스님


오늘날 한국불교의 대표적 수행법인 간화선을 정립한 대혜종고 선사는 42명의 사대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들의 수행을 도왔다. 일상생활에서도 할 수 있는, 그래서 간화선이 스님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선사는 대중들에게 가르쳤다. 대혜종고 사후 제자와 후학들은 그 편지를 모아 책을 펴냈다. 바로 서장이다.
부처님이 당시 수많은 지식인들에게 진리의 문을 열게 해준 것처럼 스님과 지식인 계층의 인연은 2,600년 불교 역사 속에서 계속돼 왔다
.
봉화 금봉암에 주석하고 있는 조계종 원로의원 고우 스님과 안동대 국문과 전재강 교수의 인연도 대혜 스님과 제자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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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1월쯤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우 스님께서 각화사 서암에 주석하실 때 친구의 소개로 처음 찾아뵈었습니다. 바로 그날 불교와 선에 대한 스님의 놀라운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 시간 이상 계속된 스님의 장광설을 준비한 녹음기로 녹음을 해 가며 들었습니다. 스님과의 만남에서 얻은 놀라움은 제가 처음 구도회에서 불교기초교리 강좌와 수련 대회에 참가하면서 얻었던 기쁨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전자가 고통에서 조금 놓여나는 기쁨이었다면, 후자는 불교의 본질에 다가서는 놀라움과 희열이라고 해야 할 듯합니다. 그 후에도 계속 스님께 금강경삼가해강의를 들었고, 지금까지 서장강의를 3년 넘게 듣고 있습니다
.”
전재강 교수는 20048월 고우 스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서장을 우리말로 옮겨 출간하기도 했다
.
고우 스님께서는 선()의 본질이 흐려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시고 선의 원형을 서장선요에서 찾으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 두 책의 한글 번역본은 물론이고 그 저본인 안진호 스님의 강원용 교재까지 여러 부분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스님께서 항상 지적하시며, 한 세기가 가깝도록 이런 오류를 아무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스님께서 서암에서 뜻있는 몇몇 스님들과 재가자를 대상으로 이 두 가지 책을 강설해 주셨습니다. 꽃이 피고 더위가 오고 낙엽이 지고 찬 눈이 무릎까지 내리기를 몇 번을 거듭 했지만 장강 같은 스님의 법문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아마 그때가 제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때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번역을 병행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도 스님을 지속적으로 찾아뵙고 교정지의 틀리거나 빠진 부분을 고치고 보충해 번역본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책 출판 자체보다 공부의 단서를 잡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서울로 가는 방향을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에 필요한 정견(正見)을 세우는 데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
고우 스님도 전 교수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공을 들여 진행한 작업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오랜 시간 동안 공부를 하면서 전 교수는 중도(中道)에 대한 상당한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어와 한문, 영어 등 언어에 대한 지식도 해박해 서장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을 잘 해냈습니다. 나중에 전 교수의 서장은 높은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


전 교수는 지금도 매월 넷째 주 목요일 금봉암에서 열리는 고우 스님의 서장강의를 듣고 있다. “공부를 완전히 마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평소 고우 스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스님께서는 누구나 본래 부처라는 것을 믿고 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공(), 무아(無我) 혹은 연기중도(緣起中道)를 깨달아서 중생 교화에 나설 것을 말씀하십니다. 밖으로 추구하지 말고 안으로 구해서 자기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하는 일에 매진하라는 뜻입니다. 상대적인 행복이 아니라 절대적 행복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말씀도 자주 하십니다. 또 공부를 할 때 생활을 떠나 따로 공부를 하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생활 속에서 수행을 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생활을 떠나 수행하는 것은 토끼 뿔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하시면서 행주좌와(行走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일체시(一切時) 일체처(一切處)가 수행의 도량이 되도록 노력할 것도 주문하십니다. 그러한 노력을 하다 보면 아주 놀라운 효과를 거두게 됩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아서 심리적 압박을 받지 않고, 스스로 모든 일에 주인이 되며(隨處作主), 자기 일의 가치와 의미를 알아서 열심히 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며,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어서 매우 활발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
전재강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불교와 인연을 맺어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 부처님오신날 어머니를 따라 절에 처음 갔다. 그 후 대학시절 대구 보현사 구도회 활동을 하며 이기영 박사의 강의를 들으면서 불교에 대한 이해를 넓혀 나갔다. 대학을 졸업한 뒤 교직생활을 하면서도 불교학생회를 만들어 새싹 불자들을 만난 전 교수는 동양대에서 불교사상과 명상체험수업을 진행했고, 안동대로 옮긴 뒤에도 불교문학과 명상체험강좌를 개설해 벌써 4학기째 강의를 계속하고 있다. 이 수업은 80명이 정원임에도 항상 정원 초과로 수강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나올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수업은 이론과 실참을 병행하고 있다
.
“80명 정원에 매 학기마다 수강 신청자가 가득 찬다는 것은 다소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 선조들이 불교와 그만큼 친숙했던 영향과 너무나 복잡한 현실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학생들의 기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학생들의 기본적인 태도는 이 시절의 학생들이 다 그렇듯이 처음에는 매우 자유분방하고 주의력이나 불교 자체에 대한 관심도가 낮게 나타납니다. 그러다가 이론 강의와 참선이 진행되면서 집중하고 참여하는 정도가 다소 좋아지고, 사찰에서의 참선실수를 거치면서 뚜렷하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오랜 습관을 한 학기 수업으로 확실하게 바꾸기는 어려워서 이후 지속적 지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전재강 교수는 이렇게 늘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
불교 공부를 계속해 중요한 선서(禪書)를 더 펴내고자 합니다. 미루어 놓은 금강경삼가해, 육조단경을 먼저 번역하고 공부를 더 깊이 해서 힘이 닿는다면 벽암록도 번역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역대 선어록을 두루 살펴서 우리 현실에 필요한 것이 발견되면 추가로 더 번역할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더 능력을 키워 국내나 미국, 유럽, 중국 등 외국에 선포교를 해 보려합니다. 부족하지만 아침저녁으로 하고 있는 참선을 그래서 더 열심히 할 계획입니다
.”



내가 불교와 사랑에 빠진 이유
삶의 과제를 실천으로 이끈 연기론의 사유 _
이도흠

부처님의 뜻과 마음을 따르는 길! 다른 길을 가다가 들어선 길, 멀고 어둡고 험한 길이건만, 마음은 늘 흐뭇하였다. 하늘엔 언제나 맑게 빛나는 별이 있고, 길섶엔 무수한 의미들로 넘쳐나는 꽃들이 흐드러지고 길가엔 언제든 달려와 부축해줄 도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

일세방에서 본 세상
대학 때 필자는 마르크스와 그를 계승한 마르쿠제, 루카치, 골드만 등의 사상에 흠씬 빠져있었다. 당시 이에 관련된 책은 금서로 묶여 구하기 어려웠다. 몇몇 비밀스런 행로를 따라 구하기도 했고, 때로는 이곳저곳 대학도서관을 전전하기도 했고, 미국문화원과 영국문화원에서 관련 저널의 논문을 복사하고 문화원 직원을 통해 미국과 영국의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기도 하였다
.
진리는 상대방과 대화 속에서 또 나오기에, 다른 대학의 학생들과 동아리를 만들어 공부하였다. 80년대엔 그리 공부하다 걸려도 구속될 수 있었기에 늘 이곳저곳 장소를 옮겨가며 공부하였는데, 하루는 자선단체의 빈 사무실에서 그를 행하였다. 그때 그 단체에 근무하고 있던 선배가 너는 왜 머리로만 민중을 말하느냐. 가슴으로, 온몸으로 함께 해보라.”며 서울역 인근의 일세방 체험을 권하였다. 일세방! 거기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모든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나환자, 장님, 앉은뱅이 등 서너 명의 가족이 서울역 뒤편의 빌딩 숲 뒤의 허름한 건물의 1.2~3평 쪽방에서 등도 대보지 못한 채 칼잠을 자다가는 하루 일세를 내기 위하여 겨우 몸을 이끌고 구걸을 하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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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한 달여 체험한 후 이를 어렵게 르뽀기사로 썼고, 그날 수첩에 이 시대에 어떤 형태든 고통이 상존하고 있다면, 그것이 영광과 명예와 갈채의 반대 길일지라도 나는 그 고통을 덜고 보듬는 길을 걷겠다. 바로 이 선택이, 타락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이라는 것이 나의 신앙이다.”라고 적었고, 새해 첫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이 문장을 새 수첩에 적는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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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를 통해 불교를 만나다
그러다가 대학 4학년 때 향가의 맛과 멋에 함뿍 취한 필자는 공장이냐 대학원이냐를 놓고 오랜 시간 번민하였고, 결국 향가 연구의 길로 발길을 돌렸다. 기존의 논의를 넘어서 향가를 총체적이고 심층적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총체적인 해석은 문화사회학적 방법론을 끌어들였고, 심층적인 해석을 하려니 당대 세계관인 신라 불교를 공부해야 했다
.
향가를 통해 원효와 의상을 만났다. 금강삼매경론을 폈을 때 단 한 문장도 이해할 수 없었다. 불교를 쉽게 해설한 책에서 원효를 해설한 책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원효는 저만치 거리를 두고 있었다. 오랜 번민 끝에 나의 사고의 패러다임 자체가 서양의 실체론과 이분법적 모순율인 것에 그 근본원인이 있음을 깨달았다. 실체론을 벗어나 연기론의 사유를 하고, A or not-A의 이분법을 깨고 A and not-A의 퍼지적 사유를 하자 원효의 모습들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그때 그리 견고하던 요새를 뚫고 진리를 만나던 순간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그 환희심을 맛보고자 향가도 잠시 제쳐두고 원효에만 매달렸다.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을 만나면 하루 종일 씨름을 했고, 그래도 안 되면 뒷산인 관악산에 올라가 능선 위에 서서 칼바람을 맞으며 몸을 괴롭게 했더니 머리가 맑아지며 실마리가 풀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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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론을 깨달으면 세 가지가 가능해진다. 실체로 생각한 것이 망상임을 깨닫고 실상을 직시한다. 우주 삼라만상이 서로 조건이 되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역동적인 인과관계에 있으니 아()라고도 자성(自性)이라고도 할 것은 없으며 공()임을 깨닫는다. 내 호흡이 내 입 앞의 미생물을 바꾸고 그리 달라진 공기가 내 몸을 다르게 하고 그 몸이 다시 호흡을 다르게 하듯, 모든 것이 찰나의 순간에도 서로 조건이 되고 상호작용을 하니, 모든 존재는 연기적 생성자(Inter-becoming)이며 타자는 바로 나라는 실상을 깨닫고서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보살행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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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적 공부 통해 만난 도반들
이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니, 연기가 아닌 것이 없었다. 향가를 보는 방법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처럼, 문학을 해석하는 방법도 둘, 곧 형식주의와 맑시즘 비평론으로 나뉘어 있었다. 형식주의는 문학 작품을 안으로부터 분석하여 문학성을 추출하기는 하지만 해석에 구체성이 없다. 반면에, 맑시즘 비평은 문학작품을 외부의 사회문화로부터 해석하기에 구체성이나 진정성이 있지만, 문학성을 잃는다. 이에 원효의 화쟁을 통하여 작품과 사회, 독자와 작가, 구조와 주체를 연기적 관계로 놓고 해석하는 화쟁기호학 이론을 만들어 새롭게 해석하였다. 이를 엮은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화쟁사상을 통한 형식주의와 마르크시즘의 종합은 관련학회에서 20여 년 만에 서평을 부활하여 평가회를 가질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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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신 오현 스님은 미천한 학궁을 의상·만해연구원의 연구원으로 불렀고, 여기서 매달 월례발표를 하면서 고 고광영 사장, 서재영, 석길암 교수와 같은 이들과 지혜를 나누고 인품에 취하게 되었다. 이어서 불교평론의 편집위원으로 들어가서 필자는 주로 불교를 현대적, 진보적으로 해석하거나 서양의 인문학과 비교하는 글을 쓰거나 기획을 하며, 홍사성 주간, 박경준, 김성철, 조성택, 조은수, 박병기, 조준호 교수와 같은 훌륭한 학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인연의 끈이 이어져 도법, 수경 스님과 같은 선지식까지 알게 된 것은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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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필자가 불교와 사랑에 빠져든 첫째 이유는 거기 늘 부처님과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바다와 같은 넉넉함으로 모자람 많은 비전공의 학궁을 품어주었고, 봄날의 햇볕처럼 따스하게 모난 인간을 보듬어 주었고, 만날 때마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지혜를 길어 올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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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가운데 부처님의 품 안에 마르크스도, 화이트헤드도, 들뢰즈도, 데리다도 폭 안김을 발견하였기에 더욱 사랑은 깊어졌다. 우주 삼라만상 가운데 연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실체론이나 이분법에서 자연, 세상이나 사회와 인간을 바라본 서양의 자연과학, 인문학, 사회과학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부처님의 말씀과 마음을 서양의 프레임으로 설명하는 것과 함께 서양의 한계를 부처님의 프레임으로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며, 그것을 도반들과 함께 수행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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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도 불교가 실천의 사상이라는 점이 더욱 열정을 다해 부처님을 사랑하게 한 것이리라. 화엄경, 보살행에 관련된 숱한 말씀들,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는 유마경의 말씀은 대학 새내기부터 꿈꾸어오던 과제를 불교 안에서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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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필자는 수행도, 신앙도 아주 부끄러운 초급자 수준이다. 그럼에도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아파하고 그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그 자리에 부처님이 계신다고, 그런 우리의 마음에 물을 주는 수행을 하면 세상은 선의 꽃밭으로 흐드러질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다. 우리는 악이 선을, 불의가 정의를 이길 때 부처님의 존재를 의심한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가장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로 오신 것인데 다만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다. 그런 자리에 불자가 아니라면 누가 서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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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흠 :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조계종 포교원 통일법요집 편찬연구위원, 계간 불교평론편집위원, 실상사 화엄학림 외래교수,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의장, 정의평화불교연대 사무총장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