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인터뷰]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

“정성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

2011-11-28     불광출판사

지난 928일과 29, 연이어 두 분의 원로스님이 우리 곁을 떠났다. 수행자의 표상이자 불자들의 든든한 의지처였던 도천 대종사(법랍 83, 세수 101)와 정무 대종사(법랍 55, 세수 81). 두 스님이 남긴 열반송에서 치열한 구도정신과 청빈한 수행자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나는 깨친 것이 없어 수미산(須彌山) 주인집으로 머슴 살러 갈 거여.”(도천 스님)
내가 이 세상에 인연 따라 왔다가 바르고 정직하게 열심히 살다 간다. 도솔천 내원궁에서 우리 거기서 만나자.”(정무 스님)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무한경쟁과 정보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선지식(善知識)의 향기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또한 새롭게 변화 발전하려는 불교계의 움직임 속에서 본질의 핵심을 꿰뚫는 혜안이 절실하다. 월간 불광창간 37주년을 맞아,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70)을 찾아뵈었다.

“죽더라도 좌복 위에서 죽겠다”

이번 11월호가 월간 불광창간 37주년 기념호입니다. 그동안 문서포교의 한길을 걸어오며, 창간 40주년과 통권 500호 발행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덕담이나 당부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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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은 광덕 큰스님의 큰 원력이 담겨져 있는 교단 근대 문서포교의 효시입니다. 큰스님은 새로운 포교의 장을 열며, 부처님 제자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실천하셨던 분이셨습니다. 대중 포교지로서의 불광이 가지고 있는 그 역사성과 의미가 불교계에 끼친 영향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동안도 현대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불교가 짊어지고 가야 할 문화 포교의 역할을 잘해왔지만, 앞으로도 중생들에게 더욱 희망을 주는 잡지로 발전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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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는 선농겸수(禪農兼修)의 가풍이 살아있는 곳으로, 스님께서 아직도 울력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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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도 가꾸고 나무도 하고 담 쌓는 일도 합니다. 하루에 적당한 시간을 노동한다고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사람을 건전하게 해줍니다. 수행자들이 정신적인 정진은 필연적으로 생각하지만, 노동을 소홀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몇 시간씩이라도 노동을 해서 삶에 보탬을 주어야 하고, 나아가 잉여되는 삶을 중생에게 돌려준다고 한다면 너무나 좋은 일 아닌가요. 불조께서 방일(放逸)을 경계의 1호로 삼았습니다. 방일하게 되면 사람이 부패해지고 탁해집니다. 삶을 대충 건성건성 사는 것은 생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허송세월하며 무위도식하는 것은 죄악에 가까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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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종회의장 재임 말기에 췌장암으로 죽음 가까이 가신 적이 있습니다. 이후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젊은 나이에 수덕사 주지(1978~1988) 소임을 맡게 되고, 종회의장(1994~1998) 두 번 하면서 많이 설쳐댔잖아요. 본의 아니게 남을 아프게 한 일도 많이 했는데, 그게 참 후회되더라구요. 전생의 죄업으로 생긴 병이고, 금생에 내가 잘못 살아온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 거죠. 몸은 아팠지만,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어요. 나를 수행자로서 제자리에 되돌아가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죠. 선가(禪家)에서 중이 되었는데, 그동안 정진에 소홀했던 것이 참 아쉬웠어요. 눈만 뜨면 깨어 있는 시간은 천수다라니와 42수 진언을 하며 참회의 주력수행을 했습니다. 미국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와서는 죽더라도 좌복 위에서 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봉암사에 들어가 3년을 살았습니다. 병원에서 병세가 상당히 호전되었다는 얘기를 들으며, 죄업으로 생긴 병은 마음을 닦는 정진을 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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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기는 힘들다”

요즘 불교계가 자성과 쇄신을 위한 5(수행·문화·생명·나눔·평화) 결사, 한국불교중흥을 위한 대토론회 등 희망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불교 발전을 위한 매우 중요한 시기일 수 있는데,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문제는 무엇으로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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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선거제도는 일반사회의 민주적인 방식을 도입하고 있지만, 한마디로 실패한 제도입니다. 장로 정신이 깨지면서 위계질서가 문란해졌고, 이로 인해 승단의 본분인 화합이 깨지면서 소위 패거리문화가 심해졌어요. 특히 돈선거로 얼룩져 삼보정재가 끝도 없이 낭비되고 있는데, 돈을 돌리는 선거 풍토는 절집 안의 추태 중 제일가는 부끄러움입니다. 예전처럼 중진이나 장로들이 모여 대중공사(大衆公事)를 펼쳐 추천하는 제도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약 현 선거제도를 고집한다면 선거법을 개정하는 등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슨 일이든 취지가 좋다고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구호에만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만들어 강한 집념으로 결실을 맺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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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다문화 다종교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종교평화, 한국불교의 세계화, 간화선의 대중화 등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한국불교의 나아갈 방향성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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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유억불의 조선시대, 일제시대의 암흑기를 거쳐 불교가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는 것은, 치열하게 정진하여 불조의 혜명을 잇고 중생을 구제하려는 출가정신이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한국불교가 발전하려면 스님들의 역량이 더욱 요구됩니다. 물질문명의 세속에 물들지 않으며, 올곧고 청렴한 모습을 철저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수행과 교리에 대한 이론을 확실하게 정립시켜, 실참실수(實參實修)의 과정을 거쳐 이해와 실제가 항상 두 바퀴처럼 병행되어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사회 눈높이의 지성과 교양, 언어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그래야 불교의 저변을 확대시키고 세계화도 가능할 것입니다. 출재가를 막론하고 전략적으로 인재양성에 힘을 쏟아야 할 때입니다. 수영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기는 힘듭니다. 우선 우리 것, 즉 불교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역량의 정비가 선행되어야 상대의 실체를 제대로 인정하고 존중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진정한 종교 평화 질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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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불행하다”

최근 일어난 안철수 열풍은 리더들의 도덕성과 사회적 공정성에 대한 요구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불교가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합니까?
본연에 충실하면 됩니다. 원효 스님이 말씀하셨듯이,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 모든 것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단번에 생사의 번뇌에서 벗어난다)’입니다.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안심입명(安心立命: 삶과 죽음을 초월함으로써 마음의 편안함을 얻는 것)의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그 불교의 본질 적인 삶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오욕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일체의 자유로운 사람이에요. 바로 사무량심(四無量心)인 자비희사(慈悲喜捨)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자애로운 마음으로 남과 더불어 기뻐하고 슬퍼하며 희생 봉사하는 삶이에요. 매우 간단하지만 세계 종교로서 지녀야 할 위대한 사상이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를 믿으면 구원해주고 안 믿으면 지옥에 보내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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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언론을 통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불명예 1위 기록들을 보게 됩니다. 이를테면 자살률, 연간 노동시간, 청소년 행복지수, 이혼율, 출산율, 교육비, 암증가율 등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괴롭고 지친 마음을 호소합니다. 그들에게 위안과 격려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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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50, 60년대에 비해 경제적 수치로 100배 이상 잘 살게 되었지만,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은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습니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욕망이라는 것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가정과 학교, 사회가 경쟁에서 이기는 법만 교육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가르치지 않는 데 큰 문제가 있습니다. 상대를 경쟁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연기적인 관점에서 자연이든 인간이든 사물이든 고맙고 다행스러운 존재로 받아들어야 합니다. 마음에 불평과 불만, 원망과 미움이 가득 차 있으니 남 탓만 하며 인생을 허비하게 됩니다. 자기 인생은 자기 스스로 길을 찾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정성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 자기 주체적인 삶이 확실하고 신념이 분명하다면, 상대적 빈곤이나 박탈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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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 스님 : 194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1955년 수덕사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해인사 강원을 마치고 범어사·봉암사 등 제방선원에서 수행했다.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농대 원예학과를 졸업했다. 경허·만공·벽초·원담 스님으로 이어진 수덕사의 선맥(禪脈)을 잇고 있는 스님은 수덕사 주지, 조계종 개혁회의 법제위원장,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서울 화계사 회주 등을 역임했으며, 2009년 덕숭총림 수덕사의 4대 방장으로 추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