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법구] “네가 있어서 내가 있다”

내 마음의 법구

2011-11-07     김택근

길에서 길을 찾기로 했다.

나도 드문드문 순례단에 합류했다. 2004년 3월 1일 함께 길을 나섰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생명평화 탁발순례의 시작을 하늘에 알렸다. 수경 스님의 독송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소유의 논리, 독점의 논리, 힘의 논리, 공격의 논리, 승리의 논리로 살아온 왜곡된 자기 사랑의 삶을 뼈아프게 참회합니다.”

생명평화순례단은 길에서 길을 물었다. 사람들은 내 생명이 내 안에, 네 생명은 네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전도몽상이다. 분리된 생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의 실상에 대한, 생명의 실상에 대한 무지요 착각일 뿐이다. 그런데도 너 없는 것이 내게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때는 너를 없애고 나만 존재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세상에 나 아닌 것은 없다. 우리는 어디를 가도 도법 스님이 다듬은 ‘생명평화의 경’을 읽었다.

“생명평화의 벗들이여! 서로 의지하고 변화하며 존재하는 생명의 진리는 우리 모두의 영원한 길이니, 지금 진리의 길에 눈뜨고 진리의 소리에 귀 기울일지니라. 자연은 뭇 생명의 의지처이고, 뭇 생명은 자연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공동체 존재이니라. 이웃 나라는 우리나라의 의지처이고, 우리나라는 이웃 나라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국가공동체이니라. 이웃 종교는 우리 종교의 의지처이고, 우리 종교는 이웃 종교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종교공동체이니라. 이웃 마을은 우리 마을의 의지처이고, 우리 마을은 이웃 마을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고향공동체이니라. 이웃 가족은 우리 가족의 의지처이고, 우리 가족은 이웃 가족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가족공동체이니라. 그대는 내 생명의 어버이시고 나는 그대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공동체 생명이니라.”

당시에는 생명평화란 용어가 생소했다. 하지만 5년이 넘게 전 국토를 순례한 이후 사람들은 생명평화를 자연스럽게 입에 올렸다. 놀라운 공명이었다. 나는 스님과 걸으면서 자연인 흉내를 낼 수 있었다. 걸은 만큼 가벼워지고 생각이 정리되었다. 내 속을 들여다보니 크고 작은 상처들이 보였다.

나는 그것을 치유할 수 있었다.

‘네가 있어서 내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었고, 또 누군가에게 용서받고 싶었다. 시작은 가난한 길이었지만, 그 끝은 늘 기쁨에 넘쳤다. 비울수록 충만했던, 그 순례길이 지금 다시 그립다.

부디 세상 만물에 생명평화가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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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
전북 신태인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시인이며 언론인이다. 경향신문 종합편집장, 문화부장, 경향닷컴 사장,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펴낸 책으로는 산문집 『뿔난 그리움』, 동화집 『벌거벗은 수박도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