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도 그들만의 사는 방식이 있다

우리 절에 안기다/경기도 여주 봉미산 신륵사

2011-11-07     불광출판사

                                                                                저녁 무렵, 신륵사 앞 여강을 유유히 흘러가는 배.

어느 날 야근을 하고 늦은 밤
, 서울 퇴계로의 한 식당에서 오랜 친구를 만나 소주잔을 기울였다. 첫 손자를 두었음직한 초로의 주인아저씨는 카운터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는 유난히 생생하고 활기 넘쳐 보인다. 별 말 없이 술잔만 부딪히는 우리 테이블의 분위기가 안쓰러웠는지, 아주머니가 추가 안주를 내오며 말을 붙인다
.
젊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힘이 없어요. 요즘 살기 힘들죠. 돈 걱정 때문이우. 그거 많이 하면 뇌출혈 일으켜요. ‘돈놀이안 하면 돈워리(Don’t worry)’하고, ‘내추럴(Natural)’하게 살면 뇌출혈걱정 없다우
.”
아주머니의 뜬금없는 언어유희에 우리는 터지고 말았다. 얼마나 좋은가, 아무런 걱정 없이 있는 그대로 사는 자유로운 삶! 그런데 우리 시대 서민들에겐 결코 쉽게 허용되지 않는 삶이다.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경제논리와 무한경쟁으로 점철된 힘겨운 삶의 역정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상처와 아픔, 분노를 켜켜이 쌓아가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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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한다. 하지만 돈, 명예, 권력의 흐름에 자신을 송두리째 맡긴 채, 불행을 자초하며 살아간다. 이제라도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 잃어버린 참나를 찾는 여행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이번 호부터 시작하는 템플스테이 연재를 통해, 괴로웠던 마음을 치유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 첫 번째 여정으로 여주 신륵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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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동행한 권미을 양(좌).
     경내에 있는 수령 600여 년의 은행나무 몸통 사이로 관세음보살상 형상의 고목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우).

지금 이 순간
,
고요한 평화로움이 마음에 깃들다
템플스테이와의 인연은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월간 불광1년간 연재하는 동안, 모든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일이 체험하며 템플스테이의 묘미를 만끽했다. 그윽했던 새벽예불과 사물 체험을 비롯해, 눈 감고 징검다리 건너기, 염주 꿰기, 찻잎 따기, 야생화 및 철새 탐방, 돌탑 쌓기, 스님과의 족구 및 대화, 차훈 명상, 유서 작성, 요가 및 선무도 체험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정갈하고 상큼했던 사찰음식 공양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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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이 지난 지금은 각 사찰의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이 특화되어 운영된다는 점에서 새롭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상시 휴식형 템플스테이의 증가다. 체험형과 휴식형을 동시에 운영하며, 참가자가 휴식형을 원할 경우 예불과 공양시간 외에는 자유롭게 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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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를 찾은 때는 추석을 바로 앞두고였다. 9월은 여름휴가와 방학이 막 끝난 시점이라 템플스테이 비수기인 데다, 올해는 추석 연휴까지 겹쳐 절은 더욱 고즈넉하고 한가로웠다. 덕분에 템플스테이 소임을 맡고 있는 태인 스님을 독차지하는 행운을 얻었다. 전화통화를 할 때부터 청량한 목소리로 반겨주시더니, 도량을 돌며 절 구석구석까지 친절한 안내를 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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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 바닷가도 아닌 강가에 자리 잡은 신륵사는, 남한강(여강) 줄기가 앞마당처럼 펼쳐져 있다. 강 너머 하늘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이 유명한데, 잔뜩 흐린 날씨 탓에 볼 수 없었다. 대신 여강을 따라 느린 걸음으로 발을 옮기며, 여전히 바쁘기만 한 마음을 천천히 내려놓는다. 멀리서 작은 배 한 척이 유유히 떠밀려온다. 저 뱃사공은 어디에서 무얼 하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리네 인생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갑자기 새 한 마리가 물을 박차고 훌쩍 날아올라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 어느 것도 확연히 알 수 있는 게 없는데, 온통 모르는 것 천지인데. 단지 지금 이 순간, 고요한 평화로움이 마음에 깃든다. 어둠이 몰려오자 강 저편에선 네온사인이 강렬한 불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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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템플스테이 소임을 맡고 있는 태인 스님과 함께.

청춘의 아픔을 달래주다
이번 신륵사 여행은 월간 불광의 사진을 책임지는 하지권 작가, 동국대 국문과 4학년 권미을 양과 동행했다. 미을 양은 현재 동국대에서 추진하는 ‘1학과 1기업 현장실습(인턴십)’ 연수생으로서, 졸업 후 출판사 취업 준비를 위해 불광출판사에서 실무 경험을 익히고 있다. 미을 양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늘 밝게 웃고 있었지만, 그녀에게도 남모를 아픔과 고민이 마음 깊숙이 박혀 있었다. 새삼 우리 청춘들의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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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7IMF 사태가 터졌을 때였다. 취업을 걱정하는 졸업생들에게, 정년퇴임을 앞둔 노교수가 위로의 말을 전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정말 하기 싫어도 해야 되는 일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돈벌이(취업)와 결혼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세요
.”
그랬던 거 같다. 그 시절까지는 노교수의 말이 전적으로 통하는 시대였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청춘콘서트의 청년멘토이자 서울시장 출마설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안철수 교수는, 20~30대 사이에 쌓인 분노의 에너지가 폭발 직전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기득권이 장악하고 있는 불공정한 사회에서 청춘들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이다. 대학 등록금은 세계 2위 수준이며, 청년고용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대학을 4년 만에 졸업하는 학생은 30%가량밖에 안 된다. 대학을 어렵사리 졸업하고 취업을 했더라도, 턱없이 높이 오른 전세값을 마련할 길이 없어 결혼은 엄두도 못 내는 커플이 부지기수다
.
우리 시대 청춘들을 대변하듯, 미을 양이 태인 스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미을 양은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대학을 다니는 4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병행했다. 그러다 보니 일찍 철이 들고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다 보니,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정체성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졸업을 앞둔 여느 대학생이 그렇듯이 취업과 인간관계, 불안한 미래에 대한 총체적인 고민이었다. 스님의 답변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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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에는 아가씨처럼 고민이 많거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이 와요. 그런데 템플스테이에서 모든 문제를 말끔하게 해소시켜줄 수는 없어요. 그저 지친 마음을 쉬게 하고 편안함을 줄 수는 있지요. 아가씨처럼 본인들의 문제는 본인들이 너무나 잘 압니다. 저는 단지 들어줄 뿐이에요. 이야기를 들어주면 문제가 드러나고,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면 답은 의외로 간단해요. 아가씨는 지금 주어진 환경에 불평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인생의 주인으로서 아주 훌륭하게 살고 있어요. 다만 밤하늘에 랜턴을 비치면 별빛이 잘 안 보이듯이, 상대방의 시선으로 자신의 행동을 비쳐보는 습관 때문에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 습관만 버리고 지금처럼 자신이 선택한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답은 저절로 구해질 거예요. 그리고 가끔 시간 내서 오늘처럼 템플스테이를 하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삶이 한결 여유롭고 편안해지겠죠
.”


     신륵사를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봉미산 소나무 숲. 약골의 소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숲을 이루고 있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현대식으로 신축된 템플스테이 전용 방사는 아담하고 깔끔했다. 5년 전만 해도 욕실을 비롯해 더러 방사가 불편한 사찰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느 사찰을 가더라도 외국인이나 어린 학생들도 만족할 만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오랜만에 편안하게 맞이한 절에서의 하룻밤이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 속에서 마음이 무장해제된 듯 가뿐하다. 4년 동안 같이 일 해온 하지권 작가와도 밤늦도록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마음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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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참 열심히 산다. 가까운 지인들만 보더라도, 맹렬하게 일하고 운동하며 가정에도 충실하다. 그런데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이 개운치 않다. 목숨 걸듯 일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조금만 방심하고 아날로그적 감상에 젖으면 낙오자가 되기 쉽다. 어디를 가도 잘난 사람들이 우글우글하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평생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할 정보가 폭증하는 시대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너무나도 힘겨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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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은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라고 했던가. 신륵사 소나무 숲에 이르면 괜스레 마음이 포근해진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미인송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약골의 소나무들이 제멋대로 휘어져 춤을 추듯 옹기종기 모여 숲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 그들도 그들만의 사는 방식이 있다.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돈놀이하지 않고 내추럴하게 살면 그런 대로 행복하지 않겠는가
.

신륵사 템플스테이 안내
강바람 소리(휴식형) 예불과 공양시간 등 최소한의 일정만 지키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쉬며 지낸다. 산사의 향기(일반 체험형) 예불, 포행, 운력, 108, 다도 등 사찰과 스님의 일상적인 삶을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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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031)885-2505,
www.silleuksa.org

[
우리 절에 안기다]는 한국불교문화사업단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www.templest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