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불교를 만드는 명품 불자

만남, 인터뷰/서강대 물리학과 박광서 교수

2011-11-07     불광출판사

한국불교가 반 세기의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고들 한다. ‘자성과 쇄신 결사를 비롯해 화쟁위원회출범, ‘불교사회연구소설립 등을 통해, 청정한 사부대중 공동체를 가꾸는 동시에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대사회적 활동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태동한 것은 아니다. 불교계 곳곳에서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대안제시, 실천적인 활동들이 이뤄졌기에 가능하다.
지금과 같은 한국불교 중흥의 방향성을 만들기까지, 재가운동이 커다란 역할을 해왔다. 재가가 승가보다 사회와 더 밀접하게 교류하니, 반응도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불교의 위상이 추락하고 해방 이후 기독교 중심의 국가가 되어가는 것을 보며, 큰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재가불교운동의 중심축을 이끌어온 이가 있으니, 바로 재가운동의 산증인인 종교자유정책연구원 공동대표 박광서(63)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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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도깨비가 맺어준 불교와의 인연
박광서 교수가 불교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이던 60년대 중반, 소설 원효 대사를 통해서다. 원효 대사가 산 속에서 귀신도깨비를 만나는 장면에서 깊은 충격을 받고 불교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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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분법적 이데올로기의 잣대를 들이대며 선과 악, 죽일 놈 살릴 놈, 내 편 네 편 등 편 가르기와 패거리문화가 심했습니다. 귀신도깨비는 빨갱이 즉 북한의 상징처럼 묘사되는 시대였기에, 무조건 나쁜 놈, 죽일 놈으로 인식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원효 대사가 귀신도깨비와 함께 낄낄대며 웃으면서 춤을 추는 거예요. 그때, ‘, 불교엔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구나를 직감적으로 깨달았죠
.”
이후부터 불교서적을 탐닉하게 되고, 고등학교 시절 불타사상연구회를 결성해 불교 공부에 심취하게 된다. 가슴 속엔 서서히 출가의 꿈이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불교계 현실은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전국적으로 서로 절을 차지하겠다며 스님들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출가를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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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출가시기를 늦추고, 현대인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현대 학문을 하나 공부해보고 머리를 깎겠다는 원력을 세운다. 우리의 전통사상과 문화가 서구사상에 휘둘리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서구를 강하게 만든 본질을 과학물질문명에서 찾고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브라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숭산 스님께 출가의 마음을 냈지만, 끝내 출가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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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없었던 거죠. 인연에 맡기는 심정으로 서울대와 동국대에 교수 임용 이력서를 냈는데, 엉뚱하게 서강대에서 연락이 와서 83년부터 둥지를 틀게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재가운동이 일천했어요. 재가불자가 기복적인 신심으로 절에 다녔지, 사회의식을 갖고 행동하는 건 부족했지요. 그래서 재가운동의 중요성을 느끼고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
그는 제일 먼저 사회 지식인들이 스스로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며, 1988년 교수불자연합회를 결성했다. 이후 1991년 소위 재가신행결사단체인 우리는 선우를 태동시켰으며, 1999년 불교바로세우기재가연대를 결성해 교단 자정 활동을 펼쳤다. 2년 후 참여불교재가연대로 명칭을 바꿔, 교단 자정 활동과 함께 불교 교육 및 연구, 시민사회 및 종교간 연대 사업 등 활동 영역을 넓혀나갔다. 현재는 종교자유정책연구원 공동대표 및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으로서, 종교인권의식 확대와 종교평화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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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년 오체투지순례단 수경 스님과 함께 2. 지난해 4월, 강의석 학내 종교자유 공익소송 대법원 승소 후 기자회견 모습.

원력 하나만으로 걸어온 재가운동의 길
박광서 교수의 불교에 대한 애정과 헌신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그처럼 불교 발전을 위해 20여 년간 꾸준히 왕성한 활동을 한 이는 극히 드물다. 그를 움직이는 열정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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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했지요. 요리로 치자면 불교가 얼마나 좋은 재료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까. 그런데 불교를 이 사회에 펼치는 불자들이, 그러니까 요리사가 시원치 않아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당당한 종교로 기능하지 못하도록 한 거지요. 다른 말로 하면 명품을 짝퉁으로 만든 것이 우리 불자들이 아닌가하는 자괴심이 있었습니다. 유학생활 10년 동안 한인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전통이며 문화적 뿌리이기도 한 불교가 푸대접 받는 걸 보며, 불교의 위상과 사회적 기능을 반드시 회복시켜야겠다는 원력을 다져왔던 거 같네요
.”
얼핏 생각해봐도, 원력 하나만으로 걸어온 재가운동의 길이 순탄치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사찰재정투명운동 같은 스님들이 꺼려하는 활동을 할 때는 승가의 곱지 않은 시선도 부담이 되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가시적인 성과물들이 나오고 불자들의 호응과 관심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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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많은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불교계와 사회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성과들이 나타날 때죠. 90년대 초반에 생명나눔운동을 펼치며, 장기기증에 대한 불자들의 인식을 조금씩 바꿔나갔죠. 지금 생각해도 참 훈훈한 기억입니다. 그리고 1997고속철도 경주 도심 통과 백지화운동을 통해, 천년의 고도 경주 도심을 통과하려는 계획을 막아낸 일도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처음엔 좋을지 몰라도 망가지면 회복 불가능하니,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말라며 서명운동을 펼쳐 결국 경로를 우회시켰습니다. 수천 명의 학자들이 호소를 해도 끄떡 않던 김영삼 정부를 불교계가 앞장서 설득시킨 거죠. 또한 강의석 군의 학교내 종교자유 침해 손해배상청구소송승소, 종교시설 내 투표소 설치를 금지시킨 일련의 활동도 종교 인권 문제를 통해 우리 사회를 업그레이드시킨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
하지만 지난 세월을 돌이켜볼 때 많은 일들에 아쉬움이 따른다. 특히 눈앞의 급박한 종단 현실에 대응하느라 불교 내부 문제에 천착해, 불교의 사회적 기능을 확대시키는 데 역량을 투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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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불교가 너무 정체되어 있었죠. 조계종 사태 등 하나하나 터지는 현안을 감당하느라, 승가의 파트너로서 재가운동의 기반을 탄탄하게 만들어갈 겨를이 없었어요. 조직 활성화를 비롯해 운동의 역량 강화, 사상적인 배경 등을 깊게 만들지 못한 게 아쉬워요. 활동적인 측면에서 가장 아쉬운 건 달라이 라마 초청 건입니다. 2000년부터 몇 년 동안 굉장히 애를 썼죠. 당시 김수환 추기경 등 종교계 최고 어른들 17명의 서명을 직접 받아 추진하기도 했는데, 정부가 끝내 허용을 안 했습니다. 중국의 압력에 눈치를 보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종교지도자를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더군요. 일본만 해도 수시로 방문해 법회를 여는데, 대한민국의 서글픈 현실이 매우 부끄럽습니다
.”


      2005년 인도에서 열린 INEB(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 대회에 참가 당시, 달라이 라마와 함께한 참여불교재가연대 임원진.

사회적 열정을 품은 불자의 삶
그는 불자의 삶을 얘기하며,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강조했다. 소유하지 않는 지혜를 구하고, 사회적 인연의 책임을 다하자는 말이다. 철저하게 소유하지 않으면서 철저하게 남을 위한 삶을 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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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돈, 명예, 권력을 소유하고, 사회적으로는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으니 우리 사회가 힘들어지는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적게 갖고, 사회적으로는 열정을 품어라이것이 불교에서 가르치는 불자의 삶입니다. ‘내 이익만 생각하는가, 아닌가이것만 생각해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절에 가서 자기 복만 챙기려고 기도하는 사람은 참다운 불자가 아니에요. 이웃과 사회의 인연에 책임을 다한다는 마음을 반드시 항상 따뜻하게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
그는 이어서 자신의 수행관에 대해서도 밝혔다. 삶과 수행을 둘로 보지 않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있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100% 몰입하라고 당부한다. 사실 그가 불교활동에 치중한 시간을 전공 학문에 쏟았더라면, 세계적 석학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비교적 전공에 적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서강대 대학교수 업적평가에서 이공계 전체 교수 중 1위를 하기도 했으며, 지난 7월에는 자연과학부 학장 소임을 맡게 됐다. 삶이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사람들에게 그의 삶이 명확한 길을 제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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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터뷰 할 땐, ‘어떻게 100% 몰입할 것인가하는 것이 지금의 제 화두입니다.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특별한 것을 구하는 것을 수행이나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재가불자들에게 어려운 일입니다. 불교의 기본교리나 체계나 사고방식은 석 달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본 골격은 간단해요. 그 이후에는 수행을 삶에서 찾아야 합니다. 경계에 부딪혔을 때 순간순간을 화두로 삼아 자나 깨나 살피다보면, 내 문제가 무엇인지 확연하게 드러나고 삶의 문제 또한 쉽게 풀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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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일어난 티벳 시위에 대해 중국당국이 무력진압을 하여 세계의 지탄을 받을 때,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와 함께한 ‘평화봉송’ 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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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서 :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MIT 연구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및 자연과학부 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20여 년 전부터 불교의 사회참여운동에 적극 나서 ()우리는 선우 이사장, ()생명나눔실천회 이사, 교수불자연합회 이사, 참여불교 재가연대 상임대표, 달라이 라마 방한준비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 등을 거쳐 현재 참여불교재가연대 공동대표와 종교자유정책연구원 공동대표,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