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법구] 꽃을 던지세요!

내 마음의 법구

2011-09-26     조능희

요즘 ‘최종병기 활’이라는 영화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화살이 청나라 병사의 목을 차례로 꿰뚫는 장면이 빠른 템포로 전개되는 영화에 관객은 빠져든다. 여동생을 구하는 데 성공하고 숨을 거두는 주인공의 처절한 모습이 감동스럽다. 게다가 화살이 날아가면서 내는 독특한 효과음은 가슴을 섬뜩하게 하며 간담을 서늘해지게 하니, 한여름에 개봉하여 피서효과를 노린 영화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듯하다. 화살은 창, 칼과 더불어 사람을 상하게 하는 상징적 존재여서 그런지 부처님께서도 화살을 인용하시며 여러 가지 법을 설하셨을 것이다.

얼마 전 방송에 출연했던 스님과 통화하는데 스님께서 갑자기 물으신다.

“처사님 요즘 심정이 어떠세요”

즉시 대답했다.

“그냥 화가 날 뿐이죠.”

당시 <PD수첩> ‘광우병’ 편으로 기소되어 3주에 한 번씩 재판에 참석하며 정치검사들과 언쟁하고, 권력에 아부하여 한자리 얻으려는 관변 증인들에게 치를 떨던 중이었으니 그런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스님이 잠시 생각하시더니 화살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처사님, 화는 화살과 같습니다. 그런데 활을 당겨서 상대에게 쏘면 그 화살은 상대방을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돌아와 내 몸에 꽂힌답니다. 그러니 ‘화’라는 화살을 쏘지 말고 꽃을 던지세요, 그러면 그 꽃이 나에게로 돌아온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어찌 그 자들에게 꽃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화살을 받는다고? 그랬다. 스님 말씀이 옳았다. 오히려 내가 쏜 화살을 내가 맞고 있는 중이었다.

검찰 측 증인 중에 정모라는 영어번역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그때까지 이 여자의 거짓말은 정권을 지지하는 보수언론에 대서특필되며 무슨 내부고발처럼 포장되어 있었다. 고통스런 형사재판에서 얻은 수확 중에 하나는 정모의 정체를 밝힌 것이다.

검사와 보수신문의 기자만 은밀히 접촉하다가 검찰증인으로 공개재판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정모는 법정에서 진술을 바꾸며 횡설수설하다가 재판장으로부터 신빙성이 없다고 판결문에 명시되었다. 그러니 내가 이 여자에 대해 어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화가 나면 그 화를 들여다보라’는 말을 이해 못하고, 나는 어리석게도 화살을 쏘아대고 있었다. 욕설이란 화살을. 화가 나서 주체하지 못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에이 XX 같은 X. 재수 없는 X. 화장실에서 혹은 책상에서 혹은 편집실에서 일이 잘 진척되지 않거나 무슨 불쾌한 생각이 들면 무의식적으로 이런 욕설을 해댔다. 여기에 나를 체포하고 심문한 정치검사들과 이들을 사주한 권력자에 대한 욕설까지 더해졌다.

평소 욕 잘하는 사람을 인격이 모자란 사람으로 여기며 싫어했는데,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화살이 돌아와 나에게 꽂힌 것이리라.

그런데 제일 먼저 돌아온 화살은 아내와 딸로부터 받은 것이다. 화장실에서 ‘무슨 X’이라고 욕하는 것이 새어나가 무심코 들렸을 때 아내와 딸은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을까. “설마 나 욕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면서도 이 상처는 커진 모양이다. 부부관계나 아이 키우는 법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가족관계전문가로 자처하는 나도 이 화살을 막지 못했으니, 부처님 말씀은 하나도 그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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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능희
MBC 시사교양국 PD. <PD수첩> CP를 역임했고, <MBC스페셜-출가, 그 후 10>으로 2009년 불교언론문화상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매주 수요일 저녁 650분 방송되는 <불만제로>를 연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