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각에서의 8년

카메라에 담아온 세상 풍경

2011-09-26     불광출판사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이다. 선배를 따라 해인사로 내려갔다. 잘 다니던 직장을 뒤로 하고 합천 행을 택할 때만 해도 나와 팔만대장경과의 인연이 이리도 깊어질 줄은 미처 몰랐다.
고려대장경연구소 주관으로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된 대장경판을 한 장 한 장 꺼내 사진을 찍었다. 판전 안에 스튜디오를 지었고 경판은 청소와 조사가 끝난 뒤 스튜디오로 운반되어 왔다. 작업은 그렇게 8년간 이어졌다. ‘’ ‘조명 터지는 소리, 셔터 감기는 소리는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
종종 경판에서 뜻밖의 것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경판에 활자를 새긴 각수장이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흔적을 남긴 것인데, 말하자면 서명과 같은 것이다. 자기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간단한 그림을 그려 넣은 것도 있었다. 그 섬세한 솜씨와 마주칠 때마다 나는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들과 마주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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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30대 청춘이 대장경 촬영과 함께 흘러갔다. 당시엔 도시의 화려한 불빛이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장경각에서의 8년이 고마울 따름이다. 불교사진을 대하는 내 생각과 자세는 그간의 세월이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이젠 가을바람이 분다. 해인사의 가을은 유독 춥고 쓸쓸했다. 내게 스친 소소한 바람이 장경각에 전해지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