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사랑과 더 큰 민주주의’를 외치는 노르웨이 사회

특별기고/현장에서 바라본 ‘노르웨이 테러 사건’

2011-09-23     불광출판사

지상 낙원에서 들린 총과 폭탄 소리
끝없이 펼쳐진 피오르드(협곡)를 채우는 한없이 푸른 바다가 있는 곳.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이루어 낸 사회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국가. 사회 구성원들 간의 자유와 평등을 존중하며 더 나아가 노벨평화상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중의 국제 원조를 통해서 세계평화와 인권을 수호하는 나라 노르웨이. 그간 노르웨이는 지상 낙원이라는 별칭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손꼽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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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11722지상낙원노르웨이는 우리에게 전혀 뜻밖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휴가철이라 평소보다 한가했던 금요일 오후 326분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큰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잔혹한 테러의 시작이었다. 정부 청사 앞에 주차된 차량에 장착된 비료 폭탄은 건물 1층에 큰 피해를 입히고, 총리실과 에너지부의 사무실에 화재를 발생시켰으며, 주변 건물 대부분의 유리창을 박살낼 정도로 큰 피해를 입혔다. 역사상 처음 발생한 노르웨이 땅에서의 테러로 8명의 사망자와 13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으며, 노르웨이 전역에 비상 경계령이 내려졌고, 모든 경찰력이 오슬로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충격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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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에서 40km 떨어진 조그마한 섬인 우토야에서는 현 노르웨이 집권당인 노동당의 청년부(AUF) 여름 캠프가 진행 중이었다. 1950년부터 진행되어 온 노동당 청년부 여름 캠프는 4일간 800여 명의 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진행되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청소년 정치의 장이다. 현직 총리인 옌스 스톨텐베르그, 전직 총리이자 현 노벨평화상위원회 위원장인 토르비욘 야글란드 같은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배출된 유서 깊은 캠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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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 오슬로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 지 한 시간 남짓 지났을 때 우토야 섬으로 향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연락선에 경찰 옷을 입은 건장한 남자가 탑승했다. 그는 오슬로 테러 때문에 우토야 섬의 보안 점검을 하러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하지만 그가 우토야 섬에 도착한 순간, 평화롭던 낙원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하고 말았다. 특히나 경찰력이 오슬로 테러에 집중되었기에 우토야 섬으로의 경찰 출동은 지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 동안 그 남자는 권총과 자동 소총으로 우토야 섬의 청소년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627분 경찰에서 그의 신병을 구속할 때까지 69명이 사망했고 66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와 부상자들 대부분은 또래친구들 보다 좀 더 정치 사회에 관심이 많았던, 여름휴가 대신 청소년 캠프에 참가한 노르웨이의 미래를 밝힐 등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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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 직후의 처참한 모습(위)과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들. 

뒤틀린 증오가 만들어낸 괴물
생각지도 못했던 2건의 참극에 대해 수많은 추측들이 전파를 타고 있던 그날 저녁, 오슬로 경찰 당국은 피의자가 안드레스 베링 브레이빅이라는 32살의 노르웨이 사람이라고 발표함으로써 노르웨이 사회에 보다 큰 충격을 안겼다. 그는 외교관의 자녀로 태어났으며,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평생 딱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는 전형적인 노르웨이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평범함 듯 보였던 청년의 마음속에 어떻게 이런 괴물이 자라나게 된 것일까?
그가 범행을 저지른 직후 인터넷에 발표한 1,500여 쪽에 달하는 성명서에는 자신의 주장과 테러에 이르기까지의 준비과정을 매우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사람들이 그의 성명서를 읽고 그의 주장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일이야말로 브레이빅이 가장 바랐던 일이라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매우 조심스럽게 그의 주장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는 수많은 사상가들의 글귀를 인용하며 자신은 유럽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유럽 문화를 오염시키고 있는 이슬람문화를 멸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기독교 근본 민족주의자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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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베르겐 대학교의 라르스 스벤센 철학과 교수는 그의 성명서에는 진정한 철학이 담겨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가 인용하는 수많은 철학자들은 그의 증오를 표현하기 위해 오용되고 있을 뿐이다. 브레이빅이 가장 좋아 하는 책으로 소개한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보면, 실상 홉스는 사회에서 개개인의 신념의 자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브레이빅의 또 다른 추 천 도서인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서 밀은 타협할 수 없는 언론의 자유 와 모든 시민 개개인이 자신의 신념에 맞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이야기했다. 브레이빅이 그토록 꿈꾸는 이민자를 추방하고 이슬람을 탄압하는 유럽인들 만의 사회는 그가 자신의 이념의 바탕이라고 주장하는 철학가들의 사상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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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을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표현하면서도, 자신은 종교적으로 온건한 편이며 광적인 종교인이 아니라고 표현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문화적 보수주의자라고 주장하는 동시에 자신의 행위를 극단적인 혁명적 행위로 묘사하는 등 그의 성명서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 투성이다. 결국 그의 성명서를 통해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메시지는 그의 깊고 비틀린 증오뿐이다. 그는 이 증오로 인해 자아까지 잃어버렸다. 다른 인간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의 병을 철학과 사상으로 포장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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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 노르웨이 사회, 정부 그리고 심지어 노르웨이의 기독교까지도 너무나 세속적이고 타락했다며 비난한다. 브레이빅은 여성에 대한 증오 또한 강하게 피력하면서, 여권의 신장, 여성의 자유로움은 죄악이며 결혼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관계를 가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자신은 충분한 자기희생을 치렀기 때문에 정당화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저 다른 이에게 증오의 화살을 쏘아 대고, 그 미움의 화살이 자신까지 겨누게 될까봐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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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구분지었고, 그에 따라 차별했고 또 미워했다. 인종, 종교, 문화를 기준으로 사람을 배척했고 더 나아가 자신과 다른 성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마저 미워했다. 이런 식으로 자신과 다른 점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씩 하나씩 배척해나간다면, 장담하건대 그가 바랐던 유럽인의 사회에는 그 혼자만이 덩그러니 남겨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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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하고 반성하는 노르웨이 국민들
우리는 공포에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 (중략) 더 큰 사랑과 더 큰 개방, 그리고 더 큰 민주주의가 우리의 광기에 대한 답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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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 추모사 중

법구경인약매아 승아불승 쾌의종자 원종불식(人若罵我 勝我不勝 快意從者 怨終不息)’이라는 말이 있다. 이미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원한을 마음에 굳게 새기면 그 원한은 끝이 없으니, 악한 생각을 품지 말고 마음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였다. 어떠한 이유로든 인간의 삶 속에서 불만과 증오는 생겨나게 마련이다. 만약 브레이빅이 그 증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미워하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면 722일과 같은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늘 물 밖에 나와 있는 물고기처럼 두려움 속에 존재하고 있다. 우리의 두려운 마음이 약해지는 틈을 타서 악이 생기지 않도록 늘 지혜를 찾고 수행하는 삶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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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극이 일어난 뒤 노르웨이 사회가 보여준 모습은 참 여러 가지를 느끼게 해준다. 자극적인 책임 전가에 집중하는 대신 그 누구보다도 큰 고통을 받고 있을 유가족들과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에 전 사회가 힘을 모았다. 이와 더불어 노르웨이 내부에서는 증오가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현재의 노르웨이 사회가 제공했었다는 자성이 시작됐다.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이슬람에 대한 공포심(실상 테러 직후에 주요 언론에서도 이슬람 과격 단체의 소행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했었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노르웨이 사회 깊숙한 곳에서 기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슬람 포비아(혐오증), 또는 궁극적으로는 다름에 대한 배척에 대해 노르웨이 사람들은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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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계 이민자 소녀의 장례식에 참석한 총리, 이슬람 사원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한 외무 장관, 그리고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의 미소와 인사를 접했다는 아랍계 언론인의 이야기를 통해 아픔을 딛고 반성 속에서 성장할 노르웨이 사회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지금의 국제화 시대에는 어떤 국가도, 사회도 나 홀로살아갈 수 없다. 이미 세계의 경제는 서로 다른 인종, 문화, 종교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도록 재구성되었다. 특히나 빠른 속도로 수많은 타인들이 유입되고 있으며, 사회 내에 수많은 갈등이 현재도 상존하고 있는 우리 한국 사회는 갈등을 극복하고 사회적인 안정을 이룩할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다양성을 품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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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러한 다양성 속에서 보다 보편적이며 숭고한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다문화 사회는 서로 다른 문화가 교류 없이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만 공통된 가치를 수호하며 한 사회에서 한 문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공통된 가치는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가 명확하게 말한 더 큰 사랑과 더 큰 민주주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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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성 :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 입양아들의 표상에 관한 연구로 사회심리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 일본 및 북구 사회 이데올로기를 연구하면서 오슬로 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