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꿈 밝은 길

2007-06-13     관리자
푸른 꿈 밝은 길 
                                                               남지심/소설가
‘감응도교(感應道交)’라는 말이 생소해서 사전을 찾아보니 부처와 사람, 가르치는 것과 가르침을 받는 것이 기분이 서로 통함. 중생의 기감(機感)과 부처의 응용(應用)이 상통하혀 융합함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두 손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상응(相應)하고 있다는 말인 것 같다.
갑자기 왜 이렇게 확실하게 알지도 못하는 말을 끄집어내 가지고 사전까지 찾아보며 요란을 떠는가 하면 요근래에 감응도교(感應道交)는 아니라 하더라도 감응지교(感應之交)의 감정은 경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는 보살들 중심의 불교모임이 하나 있다.
그 모임이 시작된 지는 4·5년 정도 되었고 회원수는 50여명을 넘으니 보살들 중심의 불교모임으로는 뿌리가 탄탄히 내려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모임이 그렇게 뿌리를 내리기까지에는 그 회를 이끄는 회장의 원력과 희생이 밑거름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그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 모임과 나의 인연에 대해서만 얘기하기로 하겠다.
2월로 기억되는데 회장이 회원 몇 명과 놀러오겠다는 제의를 해왔다. 회장뿐 아니라 회원과도 친교가 있는 지라 나는 그 제의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어느날 우리는 한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날 우리는 장시간에 걸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야기의 결론은, 불교가 좋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좋아서 절에 나오지만 실제로 불교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고, 따라서 주위 사람들한테 불교를 전하고 싶어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일단 불교공부를 함께 해보자고 내가 먼저 제의를 하고 교재는 부처님의 일대기, 공부장소는 우리집으로 결정했다.
막상 약속을 해놓고나니 그 순간부터 '괜한 약속을 했구나'하는 후회의 감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우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난다는 것부터가 나로서는 너무나 번거롭게 느껴졌고 불교교리에 대해서 체계있게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열 명이나 되는 다른 사람들과 공부를 한다는 것이 여간 부답스럽지가 않았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 입 밖에 낸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고 해서 나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겉으로는 웃으면서
"그럼 다음 월요일 우리집에 오세요"
하고는 헤어졌다.
그들과 헤어져 집에 오면서도 중요한 일을 너무 충동적으로 결정했구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 계속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나는 아주 오래전서부터 그런 일, 다시말해 인연닿는 사람들을 모아 함께 불교공부를 하는 일을 원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고 있으면서도 좀더 나이가 먹어 한가해지면 그때가서 공부를 더 한 후 해야지…하고 미루어 두었었다.
현재로선 시간이나 공부가 모두 갖추어져 있지 않지만 이왕 인연이 닿았으니 최선을 다해 보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그들과 함께 공부하는 일을 내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런 후 공부하기로 약속한 월요일이 다가오자 나는 부처님의 일대기라는 책을 펴서 우선 단원부터 나눠놓고 공부할 단원의 내용을 읽고 다른 책도 참고하면서 중요한 부분을 열심히 노트를 했다.
그리고 노트한 것을 가지고 문방구점에 가서 10부씩 복사를 해왔다. 말하자면 공부할 교재를 만든 셈이었다.
그 다음 월요일이 되자 공부하기로 약속한 분들은 모두 우리집으로 모였고 우리는 아침 10시에 향을 피워 놓고 삼귀의,반야심경독송,사홍서원 등 의 순으로 간단하게 예불을 드린 후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하는 방법은 공부할 단원의 내용을 우선 돌아가면서 읽고 미리 준비한 교재를 가지고 내가 보충설명을 해 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집이라는 편안한 공간에서 공부를 하니 마음도 자연 느슨해져서 우리는 하고 싶은 얘기도 서로 충분히 나누면서 공부를 해나갔는데 그렇게 하다보니 평균 5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 되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자 우리는 서로서로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갖게 되었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내가 지방을 간다든가 하는 식의)우리는 약속한 공부를 계속해 나갔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무량한 과거생에 어떻게 보살도를 닦아 오셨는가? 에서부터 시작해서 도솔천 내원궁에서 수행을 하시던 부처님이 인간세계에 오시기까지의 과정,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은 어떻게 공부를 했으며 사문유관이라는 극적인 과정을 통해 무엇을 고민하셨는가?
출가를 결심하시기까지의 모습과 출가 후의 공부방법, 성불이라는 마지막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처절한 정진, 항마성도, 부처님으로서의 출현, 삼법인, 사성제, 팔정도, 연기법….
우린 지금 부처님이 성도하시어서 초전법륜을 펴시는 과정까지를 공부했다.
똑같은 내용의 공부도 공부하는 사람들에 따라 받아들이는 깊이가 천차 만별이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공부했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아무튼 우리들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범위안에서 최선을 다해 진지하게 공부를 해왔다.
이렇게 공부를 해 오는 동안 우리들 사이에는 공부와는 별도의 즐거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손뼉이 상응(相應)하는 것 같은 감응지고(感應之交)의 감정이었다.
열 명이 모여 책상주위에 둘러앉아서 부처님 일대기를 펴놓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으면 마주보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해졌다.
그래서 우리는 만남 그 자체를 즐거워 하게 되었고 만남이 즐겁기 때문에 5ㅡ6시간씩 같이 앉아 있어도 힘들다거나 지루하다는 느낌없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감응지교의 재미를 만끽하게 돼서인지 그들은 우리집에 와서 함께 부처님 공부를 하다 가면 잠시 극락에 다녀온 듯 한 느낌이 든다고 까지 했다.
극락에 다녀온 듯한 느낌이라는 말은 듣기에 따라 과장스럽게도 들리겠지만 아무튼 함께 만나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는 일이 그만큼 행복하다는 말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나는 너무 짧은 시간에 얻어진 이 감응지교의 교류를 놓고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 얻어진 결론은 우리 모두가 공부를 위해 진실되게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진실되게 노력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서로서로에게 감동을 주면서 일체감 속으로 몰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불보살님과 우리 중생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중생을 제도하시고자 하는 불보살님의 원력과 무명에서 해탈되고자 하는 중생원력이 서로 상응(相應)할 때 비로소 제도도 해탈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바로 감응도교(感應道交)다.
선생님이 교단에 서서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가르쳐도 학생들이 딴 장난을 하고 한눈을 팔고 있으면 수업은 성립될 수 없다.
우리들은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은 귀담아 듣지않고 딴 장난을 치거나 한눈을 팔고 있는 말썽꾸러기 학생들은 아닐런지!
무량겁 동안 나를 제도해주시기 위해 불보살님은 설법을 계속하고 계시는데 무량겁 동안 중생놀음에 빠져 한눈만 팔고 있었으니 아! 나는 정말 중생이구나.

무량겁 동안 나를 제도해주시기 위해 불보살님은 설법을 계속하고 계시는데 무량겁 동안 중생놀음에 빠져 한눈만 팔고 있었으니 아! 나는 정말 중생이구나

중생을 제도하시고자 하는 불보살님의 원력과 무명에서 해탈되고자 하는 중생원력이 서로 상응할 때 비로소 제도도 해탈도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감응도교(感應道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