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 법을 향한 열정을 흉내내고 싶다

내 마음의 법구

2011-07-25     이종승

 

“거듭 거듭 자신에게 물어보라.”

법정 스님이 길상사에서 행한 법문 중에 자주 하신 말씀이다. 나는 이 말씀을 가슴에 품고 그동안 스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돌아본다. 스님이 필설로 남기셨던 것에서도 부처님의 법을 찾을 수 있지만, 스님의 말년을 기록한 사진 속에서 존재가 주는 무게감을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조금씩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가랑비에 옷이 젖듯 그렇게 내 안으로 서서히 스며들 것이기에 빨리 끝날 일이 아니다. 그래서 다양한 모습의 스님 사진을 보면서, 스님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거듭 거듭’ 물어본다.

길상사 행지실의 한 구석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내게 스님께서 “일여(법명) 회사는 어떤가”라고 갑자기 질문을 하신다. 이처럼 스님은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넌지시 ‘사진 찍는 걸 말리지 마라’는 암시를 주시곤 했다.

스님의 배려로 다른 사람들의 방해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스님은 그런 내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차 한 잔 하고 찍지.”라며 숨 쉴 틈을 주셨다. 스님의 날카로운 눈매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차를 마시면서도,스님께 눈을 떼지 않았다. 사진기자이기에 피사체에서 눈을 떼지 않는 버릇이 부지불식간에도 나타난 것이겠지만, 스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는 것이 책이나 법문으로 들었던 것보다 더 깊숙하게 내게 들어 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스님을 찍었던 7년은 빨리 지나갔다. ‘이런 분이 아닐까’라는 혼자만의 생각이 들 즈음 스님은 입적하셨다. 지나고 보니 언제까지고 스님은 그대로 계실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며 스님과 뒤늦은 대화를 한다. 생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만남이다. 그 과정에서 활구(活句)가 구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님은 길상사 마지막 법문, 그러니까 입적 1년 전 대중들에게 “부처님도 자신을 믿지 말고 법을 믿으라 했거늘 어찌 중을 믿는가. 나도 믿지 마라.”고 말씀하셨다.

스님이 평생 차고 다니셨던 빳빳한 행전(行纏, 무릎 아래부터 발목에 이르는 부분을 덮는 각반의 일종)을 보면 자꾸 그 말씀이 떠오른다. 검정 삼베에 풀을 먹여 언제나 빳빳했던 행전은 승복 바지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스님은 그 행전에 많은 공을 쏟으셨다. 법문 전 길상사 행지실에서 극락전으로 가는 짧은 동안에도 행전이 풀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고쳐 매시곤 했다. 작은 것에 충실한, 그리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스님의 모습이 드러나는 상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스님은 상황에 휘둘리지 않으셨다. 불일암에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자 강원도의 깊은 산골로 처소를 옮겼다. 자연과 교감하며 당신 스스로 즐기고 지키고자 했던 것이 방해 받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신’ 것이다. 스님 신념의 원천은 ‘법(法)’이었기에 법을 향한 수행자의 결기가 어떤지 몸으로 보이신 것이다. 죽음과 바꾼 법을 향한 열정. 내가 지금껏 느낀 스님과의 대화에서 얻은 것이다. 그 열정을 나는 흉내 내고 싶다.


이종승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 2004년 여름, 취재차 길상사를 찾았다가 절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모습들을 사진으로 찍기 시작했다. 지금도 회사에서는 일을 하고, 절에서는 사진공양 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토록 행복한 하루, 비구, 법정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