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 스님은 마술사

만남, 인터뷰/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 원장 선재 스님

2011-07-25     불광출판사

구제역 파동 이후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육식에 대한 회의뿐 아니라, 가공식품과 화학조미료에 대한 폐해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다. 거대 식품산업에 가려지고, 또 우리 주변 사람들의 생계가 달린 문제라 참으로 불편한 진실이다.
지난 64일 교보문고 광화문점. 광화문역으로 이어지는 통로까지, 한 권의 책을 든 이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다. 11년 만에 새 책 선재 스님의 이야기로 버무린 사찰음식을 펴낸 선재 스님(56)으로부터 직접 사인을 받기 위해서다. 스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며 사진을 찍는 이들에게서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과연 선재 스님이 선도하는 사찰음식문화에는 어떤 진실이 담겨져 있는 것일까
?


     지난 6월 4일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열린 선재 스님의 사인회. 

꿀벌이 꽃에서 꿀을 따올 때처럼
지난 66일 현충일, 휴일 아침부터 경기도 양평의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이 한 무리의 외국인들로 북적인다. 국제슬로푸드연맹에서 설립한 이탈리아 미식과학대학 소속 교수와 학생들이다. 이 날 한국의 전통 음식문화를 배우기 위해 선재 스님을 방문했다. KBS 1TV ‘생로병사의 비밀’(79일 토요일 저녁 810, ‘사찰음식편 방송 예정) 촬영팀도 가세해 사찰음식의 정수를 담으려 애쓴다. 스님의 강연이 무르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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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우리는 인간이 동물을 지배하고, 동물은 식물을 지배하는 생명관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불교는 모든 중생은 나와 하나라는 불이(不二)의 연기론적 생명사상으로 출발합니다. 깨끗한 물을 마시면 건강하고 오염된 물을 마시면 병이 나듯, 땅이 맑아야 식물도 나도 건강해지는 것이죠. 수행을 하려면 건강한 몸과 맑은 영혼이 필요해요. 그 토대는 음식이 만들어줍니다. 그러므로 수행을 완성하고 지혜를 갖추기 위해선 자연계에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꿀벌이 꽃에서 꿀을 따올 때 꽃을 해치지 않고 따오듯이,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
이심전심일까. 푸른 눈의 이방인들의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지며,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스님은 강연하랴, 요리하랴, 사람들 챙기랴 잠시의 쉴 틈도 없다. 강연이 끝나자마자 우엉두부조림, 호두제피잎조림을 시연하며, 식재료의 성질과 효능을 설명함과 동시에 사찰음식에 깃든 생명사상을 설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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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엉이 내 입에 오기까지는 햇빛, 바람, 공기 등 자연의 힘과 더불어 농부의 수고로움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거쳐 왔기 때문에, 그 속에서 우주의 생명을 봅니다. 단순히 2천원짜리 우엉이 아니라 우엉 부처님인 것이죠. 양념으로 부족한 것을 채워가며 우엉 요리로 만드는 것은 곧 우엉을 성불시키는 것과 같아요. 이렇게 만들어진 음식을 먹을 때, 내 안의 부처 또한 이루는 것이지요
.”
스님이 제자들과 함께 죽염, 표고버섯, 호박, 풋고추, 상추, 오이 등 식재료를 장류(된장, 고추장, 간장)와 조청으로 버무려 맛깔스럽게 요리해, 밥과 김치를 함께 내놓는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찰음식을 감상하던 학생들이 서툰 젓가락질로 음식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놀라운 탄성을 자아낸다. 잠시 지쳐보이던 스님도 흡족한 미소를 띄며 한 마디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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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된 장류로 만드는 사찰음식은 해독작용과 함께 소화를 도와, 금방 배가 고파질 수 있어요. 각자 느끼는 맛이 다르고 입맛에 안 맞을 수 있지만, 마음을 굉장히 편안하게 해주죠. 내일 아침 화장실을 나올 때 기분이 상쾌해질 겁니다
.”
학생들을 이끌고 온 모리니 교수는 사찰음식을 통해 불교가 어떤 종교인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며, “밤새도록 스님과 얘기 나눠보고 싶다.”며 진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공양이 끝나갈 무렵 김선교 양평군수가 찾아왔다. 지나는 길에 인사차 들렀다며, “스님은 양평의 자랑이시니, 다른 곳으로 가실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십시오.”라며 당부 또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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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뉴욕에서 열린 '한국사찰음식의 날' 행사장에서(좌).  KBS 1TV '생로병사의 비밀'(7월 9일 토요일 저녁 8시 10분, '사찰음식'편 방영) 촬영이 한창이다(우).

시한부 선고를 되돌린 사찰음식
사찰음식의 대중화를 이끌며 사찰음식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선재 스님은 평소에도 누구 못지않은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일주일에 여섯 차례 전국비구니회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전국 어느 곳이라도 요청이 있으면 바로 달려가 사찰음식 전파에 힘쓰고 있다. 단지 한 사람이라도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으로 이끌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경전에 근거한 스님의 열정적인 강의는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가, 어느덧 수강 대기자가 천 명을 넘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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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고부터는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에 즐거운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인의 밥상’, ‘시사매거진 2580’, ‘즐거운 책읽기등 공중파 방송프로그램을 비롯해 주요 일간지와 여성지가 앞 다퉈 인터뷰기사를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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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요즘 매우 힘들긴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저의 강의와 책이 마지막으로 잡아보는 희망일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정진하게 됩니다. 몇 달 전 강의 장소를 리모델링하는 관계로 잠시 방학을 한 적이 있는데, 난소암에 걸린 딸을 위해 사찰음식을 배우러 온 엄마가 방학을 안 하시면 안 되느냐며 간절하게 하소연하는 거예요. 그분들이 바로 제가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이유입니다
.”
사실 선재 스님은 17년 전 간경화로 1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몸이다. 이미 속가 아버지와 두 오빠를 간경화로 잃은 아픔이 있었기에, 생을 포기하려고도 했다. 그때 자신이 국내 최초로 사찰음식을 주제로 쓴, 중앙승가대학 졸업논문 사찰음식문화 연구가 눈에 들어왔다. 바쁜 일상을 핑계로 대충 인스턴트 가공식품으로 때우던 식습관을 사찰음식으로 바꾸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간이 까맣게 망가진 상태에서, 1년 만에 천 명 중 한 명도 만들기 어렵다는 항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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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파보았기에 아픈 사람의 심정을 잘 알아요. 그리고 먹어야 할 것, 먹지 않아야 할 것을 몸으로 직접 체득하였기에 확신을 가지고 말해 줄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건강한 몸과 맑은 영혼으로 살기 위해서는 바른 음식을 먹어야 해요.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던 과자와 아이스크림, 화학조미료가 나를 죽이는 음식이란 걸 안다면, 과연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요


     한식 세계화를 위해서 전 세계 유명 요리사와 저널리스트를 초청한 서울 고메 행사에서, 선재 스님이 사찰음식시연과 함께 강연하고 있다. 

소박한 밥상에 담긴 무한 에너지
선재 스님은 어려서부터 요리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수라간 궁녀였던 외할머니의 손맛은 어머니에게 그대로 전해졌고, 선재 스님이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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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저를 보면 마술사 같다고 해요. 부엌만 들어가면 음식을 뚝딱 만들어온다고요. 하하. 바로 저희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별다른 재료도 없는 것 같은데, 부엌에서 무슨 마술을 부리는지 맛있는 음식이 줄줄이 나왔거든요
.”
선재 스님의 타고난 음식 솜씨가 세상에 알려진 건, 94년부터 3년간 방영된 불교TV ‘푸른 맛 푸른 요리를 통해서다. 이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심신이 지쳐가며, 끊임없이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묻고 또 물었다. 모든 활동을 접고 절로 돌아가 수행에 전념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사찰음식을 통해 암을 치료하고 품성이 변화되는 사람들을 보며, 사찰음식 강의가 곧 수행임을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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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은 채식과 구분을 두어, ‘선식(禪食)’이라고 표현해야 합니다. 자극이 강한 오신채를 금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맑게 해주면서, 식재료의 불성을 살려 우리의 지혜와 인격을 완성시켜 주기 때문이죠. 세상에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은 많지만 모두 인격을 갖추지는 않았어요. 사찰음식을 통해 마음이 맑아지면, 거기서 무한한 에너지가 생겨나요. 좋은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순해져 청소년 비행도 없을 것이고, 자연과 더불어 살기 때문에 환경오염도 안 될 것이며, 우울증 환자도 줄어들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의 마음이 평화로워지면 세상이 평화로워지겠죠
.”
선재 스님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사찰음식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지난 해 미국 최고의 요리학교인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미국요리학교)’에서 사찰음식을 선보여 큰 호응을 이끌어냈으며, 해마다 독일 슈바인바이스 대학 MBE 과정 학생 100여 명이 사찰요리를 배우러 온다. 인터뷰 다음 날에도 프랑스 저널리스트들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스님은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고 있지만, 꿈은 의외로 소박하고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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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어디서도 편하게 올 수 있는 거리에 사찰음식연구소를 만들고 싶어요. 그곳에 전시관, 실습실, 교육장을 비롯해 장독대, 텃밭, 잔디밭도 조성해 누구라도 와서 편안한 마음으로 사찰요리를 체험하고 불교의 생명사상을 실천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폭염주의보가 내리는 등 올 여름 더위가 심상치 않다. 혹시나 해서 물었다. 기력을 보충하고 여름을 건강하게 날 수 있는 보양식은 없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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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음식이죠. 덥다고 찬물,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면 중풍에 걸리기 쉬운 체질로 바뀌어요. 기운 나는 음식도 좋지만, 여름에 적응할 수 있는 음식이 최고예요. 제일 좋은 차는 보리차, 제일 좋은 밥은 보리밥이에요. 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음식으로는 풋고추, 오이, 상추, 열무김치 등이 좋아요. 이런 게 바로 약이지요. 잘 먹기보다 발효음식과 같이 먹어 내 몸의 독소를 빼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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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 스님 : 1980년 경기도 화성 신흥사 주지 성일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수원 봉녕사 승가대학 대교과를 졸업하고 여러 선방에서 정진하였으며, 화성 신흥사 청소년수련원에서 수행지도를 했다. 1994년 중앙승가대학 사회복지과를 졸업, 졸업논문으로 사찰음식문화연구를 발표했다. 불교TV에서 선재 스님의 푸른 맛 푸른 요리를 진행했으며,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가정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 원장으로 사찰음식 계발과 아울러 사찰음식을 지도하고 있다. 한편 국민 식생활 개선에 기여하고, 사찰음식의 전승과 보존, 대중화와 세계화에 크게 공헌한 공로로 75일 제26회 불이상을 수상한다. 저서로는 선재 스님의 이야기로 버무린 사찰음식선재 스님의 사찰음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