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발걸음과 인도의 명상문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부처님의 참모습

2011-07-25     불광출판사

교진여의 깨달음과 붓다의 격정
붓다의 가르침에 의해서 최초로 교화되는 것은 5비구 중 교진여이다. 5비구의 명칭은 전적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교진여와 마승, 그리고 십력가섭 3명은 확실하다. 교진여는 최초의 지음(知音)자로, 마승은 사리불의 인도자로, 십력가섭은 아난의 화상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기록에는 자기적인 깨달음과 더불어 타자적인 관계적 역할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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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교진여가 깨닫자 교진여는 깨달았다, 교진여는 깨달았다. 이제부터 교진여를 깨달은 교진여 아약 교진여라 한다.”라며, 충만한 기쁨을 격정적으로 표출한다. 아약(阿若)은 인도 말 아즈냐타(Āñāa)’의 음사로 깨달았다는 의미이다. 1929년 우리나라를 동방의 등불로 칭탄하여, 암울했던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주었던 인도의 대문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그가 1922년 간디에게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라는 칭송을 담은 시를 헌사한 이후, 간디에게는 마하트마라는 수식이 붙게 된다. 마찬가지로 교진여 또한 이 사건을 통해서 아약이라는 수식이 따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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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붓다가 감정을 표출했다고 기록된 사례는 거의 없다. 이는 인도불교가 주정(主情)주의가 아닌 이성주의를 표방하는 것과 일치한다. 실제로 붓다가 격한 감정을 드러낸 경우는, 교진여가 깨달았을 때와 비유리왕에게 석가족이 전멸당한 직후 정도이다. 그러나 석가족의 전멸도 교진여의 교화에서와 같은 감정 분출에는 이르지 않는다. 이는 붓다에게 있어서 교진여의 교화가 얼마나 중요한 사건이었는지를 잘 드러내준다. 그와 동시에 불교사적으로는, 교진여라는 최초의 승려에 의해 불··3보가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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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은 또 다른 등불로
교진여의 교화는 붓다의 깨달음이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타자화 되어 사회적인 변화의 물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붓다의 일생은 이제 수행자에서 교사로 전환된다. 태자에서 출발해 수행자로 변화한 붓다는, 수행 완성자를 거쳐 마지막으로 교사라는 종착점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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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가르침을 받는 동안 5비구들은 2명이 탁발해 오면 3명이 가르침을 듣고, 3명이 탁발해 오면 2명이 가르침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교진여를 시작으로 곧 5비구 모두가 깨달음을 성취하게 되는 것으로 종결된다. 하나의 등불은 이제 기하급수적인 등불이 되어 천하를 밝히는 태양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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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일깨우는 대장정
5비구를 교화한 붓다에게 녹야원은 이제 좁은 세계가 된다. 물론 이곳이 매우 의미 깊은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후일 최초로 전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은, 이곳에 붓다의 최초 설법을 기념하는 다르마라지카 스투파를 건립하게 된다. 이 탑은 붓다가 미륵보살에게 수기한 곳에 건립한 43m 높이의 다메크 스투파와 필적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1794년 힌두교도였던 바라나시의 왕과 대신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현재는 13m 정도의 원형기단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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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을 파괴하는 과정 중 탑의 정상부로부터 8m 정도 되는 위치에서, 붓다의 사리와 돌로 된 사리용기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 귀중한 유물은 곧 갠지스 강에 버려지는 만행에 처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갠지스 강은 불교적으로도 붓다의 사리가 잠긴 성스러운 강이라고 하겠다. 인도의 어머니 갠지스는, 이제 붓다와 더불어 수천 리를 흘러 대해로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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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르나트 박물관에는 인도의 불상 중 가장 아름다운 사르나트 양식의 초전법륜상이 모셔져 있다. 이 불상은 본래 다르마라지카 스투파의 감실에 모셔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를 순례하는 사람들 중 이러한 내용을 잘 모르는 이들은 다메크 스투파만을 참배하며, 그곳을 붓다의 최초 설법지로 오인한다. 이는 계몽(啓蒙)자의 게으름이 파생한 또 다른 슬픔이다. 순례자들은 녹야원에서 두 탑을 머릿속으로 그려봐야 한다. 교진여를 통한 붓다의 기쁨과 미륵에게 전해진 진리의 상속을 함께 음미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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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는 때로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경주의 황룡사나 익산의 미륵사를 참배할 때, 우리에게 이러한 상상의 기능이 요청된다. 녹야원에서도 바로 이러한 감응이 필요하다. 존재의 감응 속에서 2,500년의 세월을 거슬러 붓다를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차피 진리는 시간을 초월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눈을 감고, 마음을 열어 놓는 조금의 여유를 가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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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붓다에게 녹야원은 목적이 완수된 닫힌 세계이다. 그래서 붓다는 더 큰 이상의 세계, 바라나시로 간다. 이때 5명의 길동무가 함께했다. 초패왕 항우가 강동(江東)의 자제 8,000명을 데리고 중원을 도모했다면, 붓다는 5비구를 대동하고서 천하를 일깨우는 대장정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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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르마라지카 스투파의 기단 부분   2. 다메크 스투파  

인도의 명상문화와 기후
인도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명상이다. 그만큼 인도는 강렬한 영적인 가치를 소유한 명상의 나라이다. 사실 인도에 명상 풍토가 없었다면, 붓다의 거대한 위업도 그리 용이한 일은 아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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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도에는 명상풍토가 발달한 것일까? 그것은 인도의 기후환경과 관련돼 이해되곤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도를 찾는 계절은 겨울이다. 이때 인도의 기온은 대략 30도 정도이다. 그런데 여름철 인도 기후는 40~45도까지 이른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인간이 더위를 느끼는 것은 온도보다 습도와 관련된다. 즉 습도가 높은 인도의 아열대기후에서 더 극심한 더위를 체감하게 된다는 말이다. 사막에서는 온도가 높게 올라가도 그늘에 있으면 시원하다. 그러나 인도는 짜증나는 더위가 파상적으로 몰려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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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2모작 3모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에 큰 비중이 없다. 여기에 무더위로 인한 활동제한은 사람들을 보다 수동적으로 변모시킨다. 우리나라 군대에서도 32도가 넘으면 외부활동과 훈련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그런데 인도의 경우 그 기준이 40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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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나트 출토 초전법륜상(5c 후반) 

무더위를 피해 사색에 빠져들다
귀족과 부호들의 놀이문화는 동서를 막론하고 정해져 있다. 그것은 여자··사냥이다. 그런데 40도가 넘는 기후조건에서, 이러한 가치들은 더 이상 유희적이지 않게 된다. 누가 푹푹 찌는 사우나 같은 조건에서 이성이나 술, 사냥 같은 가치를 선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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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이 발명되기 전까지, 제아무리 큰 권력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더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무더위 속에서는 이성은 차치하고, 자신의 몸조차도 부담스럽다. 그래서 신체의 모든 부분은 서로 접촉을 멀리하면서 떨어지게 된다. 인도불상의 수인을 자세히 보면, 육체로부터 떨어져 허공에 맺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운 날씨로 인해 형성된 문화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중국문화권의 불상은 수인이 신체와 밀착된다. 이는 추운 기후 조건을 반영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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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역시 무더위 속에서는 즐길 수 없다. 사우나에서 술을 마실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술을 통해서 즐거움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만이 파생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5계 중 다른 4계가 성계(性戒)로써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금지규정인 반면, 불음주는 차계(遮戒)마시면 나쁘다는 정도로 매우 관대하다. 이는 인도인들이 태생적으로 술을 잘 마시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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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장에 보면, 아침에 짠 주스를 오후에는 마실 수 없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자연발효에 의해서 주스가 일종의 샴페인 같이 변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렇게 약한 알코올 성분을 마시고도 이성을 잃고, 때로는 붓다에게 술주정을 하기도 하였다. , 인도인들은 태생적으로 알코올분해효소가 거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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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라는 환경은 사냥도 불가능하게 한다. 40도가 넘는 조건에서 말을 타고 사냥을 나갔다가는, 동물을 잡기도 전에 말과 사람이 먼저 꼬꾸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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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일상적인 유희들이 인도에서는 무더위라는 기후조건에 의해, 더 이상 유희의 가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대신 이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유희적 가치는 목욕이나 숲에서 바람 쏘이기와 같은, 사색과 연결되기 쉬운 가치들이었다. 인도의 자연환경이 귀족과 부호들을 사색으로 인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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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현 스님 : 철학박사(율장) 및 문학박사(불교건축). 동국대 철학과 및 불교학과를 졸업하였고,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및 동국대 미술사학과 박사 졸업, 고려대 철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50여 편의 논저서가 있으며, 현재 월정사 교무국장이다. 동국대, 울산대, 성균관대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