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국 의료계의 화두, 몸 그리고 마음(Body & Mind)

서양 나라 젠(Zen) 풍경/젠 클리닉(Zen Clinic)

2011-07-25     불광출판사

     옥시덴탈 한의원. 

젠 클리닉
(Zen Clinic)
이 필요한 이유
옥시덴탈(Occidental)은 미국 북부 캘리포니아 태평양 연안에 있는 산골 도시다. 500여 가구가 모여 살고 주민의 85% 이상이 백인인 동네다. 히피 동네라는 소리를 듣는다. 샌프란시스코 북쪽 해안가 도시에 사는 히피 출신 부자들과는 달리 이들의 삶은 소박하고 나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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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작고 평화로운 이 마을에도 한의원이 있었다. ‘옥시덴탈 힐링 아트(Occidental Healing Arts)’이다. 한의사 린 드리튼버스(Lynn Drittenbas)가 침술, 마사지, 요가, 한약 조제 등을 한다. 한의원 내에 적혀 있는 몸을 정화시키고, 체중 조절, 스트레스 완화를 통해 삶을 바꾸자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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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피 마을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옥시덴탈 시 안내지도. 

린에게 주로 어떤 치료를 하는지 물었더니
, “응급이나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보다 스트레스로 인한 심리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환자가 많다.”고 한다. 그녀의 환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술은 함께 앉아 차 마시기다. 맥 빠지는 소리일 수 있지만, 그 시간을 위해 사람들은 돈을 지불한다. 린은 그저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다. 그리고 명상을 권하고, 친구를 사귀라고 조언한다. 린은 미국인들이 대화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젠 클리닉(Zen Clinic)’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The Last Resort(마지막 리조트)’. 미국인들은 한의원을 이렇게 부른다. 중국, 일본, 한국인들을 제외한 한의원의 단골들은 거의 백인이다. 로즈빌(Roseville)에서 한의사로 일하는 지나 스펜서(Jenna Spencer, 49)는 흑인이지만, 그녀의 환자들은 대부분 백인이다.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피부 관리를 받듯, 육체적·정신적 안정을 찾고자 지나의 병원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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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치과의사 아버지 밑에서 상류층 문화를 누리며 성장했다. 집안 모두 남부 애틀랜타 출신답게 독실한 침례교인이다. 흑인들의 교회 가는 비율은 다른 인종보다 현격히 높다. 그런 문화 속에서 성장했지만, 지나는 동양의학을 공부했고 일본 선불교와 티벳 불교를 흠모했다. 가톨릭 세례를 받기로 결심하기 전까지 불교에 귀의할 것인지를 두고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미국은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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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주 정부 시험을 통해 배출된 개원 한의사 수는 4,500여 명이다. 뉴욕 주는 800명 정도이며, 이와 대조적으로 주에서 면허시험을 실시하지 않는 곳도 있다. 아이다호, 인디애나, 캔자스 주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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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턴 사우스 엔드 지역 보건소. 길에 한의술을 선보인다는 알림판을 세워 놓았다. 

미국 의료 1번지의 최신 트렌드,
동양의학과 명상치유
미국 의료 시스템의 경우 보험회사가 병원을 소유한다. 그래서 병원을 찾는 이들은 개인이 추가 비용을 들여서 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소득이 없는 계층이거나 보험 없이 시술을 받으러 오는 이들이다. 보험 없는 자영업자들의 경우, 출산을 위해 하룻밤 병원 신세를 지면서 2만 달러씩 지불하기도 한다. 이렇게 병원비가 비싸다 보니 미국 병원은 무엇보다 서비스에 민감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동양의학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느는 추세다. 미국 전역에 431개의 종합병원을 거느리고 있는 카이저 퍼머넌트(Kiser Permanente)’의 경우 침술, 젠 다이어트, 기공이나 태극권 같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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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에게 물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젠 클리닉(Zen Clinic)이란 무엇인가카이저 병원 소아과 의사인 산드라 라이(39)는 동양의학을 꼽았다. 한국계 가정의학과 의사인 민호기 박사는 명상을 통한 치유술을 떠올렸다. 둘 다 현재의 트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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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보건소에서도 동양의학 서비스를 한다. 보스턴 사우스 엔드 지역 보건소는 길가에 한의술을 선보인다는 알림판을 세워 놓았다. 이곳에서는 비영리 기구인 ‘Pathways to Wellness, Inc.’와 연계해 침술, 지압, 한약, 추나요법 등을 시술하고 있다. 보스턴은 미국 내 최상의 의료쇼핑 지대다. 하버드 병원과 매사추세츠 병원, 보스턴 의대 등 대형 병원이 도시에 널리 퍼져 있다. 미국 의료 1번지인 이곳은, 또한 불교적 치유법이 출발한 도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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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카밧 진 박사. MBSR(마음챙김을 기본으로 하는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 창시자. 

서구 현대의학의 흐름을 바꾼 존 카밧 진 박사의
MBSR
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마음챙김을 기본으로 하는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은 존 카밧 진(Jon Kabat-Zinn) 박사가 1979년 미국 매사추세츠 의과대학에 설치한 환자 치유법이다. 불교적 가르침을 도입한 이 치유법이 선보인 지 30년이 지난 지금, 명상은 서구 의료계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과학적인 증명과 실험을 통해 보다 적용 범위가 확대되어 가고 있다. 지금까지 18천 명이 넘는 환자들이 거쳐 갔고, 전 세계 수백 곳의 병원에서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존 카밧 진이 몸과 마음의 관계, 두뇌의 역할을 세계적 화두로 떠오르게 함으로써 서구 현대 의학의 흐름을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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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인간을 ‘Human being’이라고 하죠? 하지만 우리들은 끊임없이 행동합니다. ‘Human doing’이죠. 몸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자꾸만 밖으로 떠다닙니다. 결국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지요. 스스로를 인식하는 법을 잊고, 목숨마저도 잃어버리고 맙니다. 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은 긴밀합니다. 그렇다고 기적에 초점을 맞추거나 암세포를 막는 데 명상을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줄 뿐이지요. 다만 그 과정에서 몸이 변하고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피부병 중 하나인 건선에 걸리면, 원통에 들어가 온몸에 자외선을 쪼이는 치료를 합니다. 그런데 치료할 때 두 그룹으로 나눠 실험해 봤더니, 명상하는 그룹의 치료 반응이 네 배 정도 빠르더군요. 정신상태가 몸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환자들에게 모든 기대감을 문 밖에 놓고 오라고 간청합니다. 열망을 놓아버리는 것 또한 아주 좋은 약입니다. 온전히 자신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니까요. 그렇게 되면 명상 자체가 스스로 뭔가를 이뤄냅니다
.”
지난 해 여름 존 카밧 진 박사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말이다. 그는 40년 전 숭산 스님을 모시던 제자이다. 스님과 함께 캠브리지 젠 센터를 만든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절하고 참선하던 그 생활을 지금까지 이어온다. 그는 MIT에서 분자 생물학 박사를 받은 후 학교의 지원으로 병원에서 명상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그때부터 오직 MBSR 프로그램에 전념해 왔다. 늘 숭산 스님을 떠올린다며, 사무치는 그리움을 들려주기도 했던 존 카밧 진 박사. 서구 명상 치료의 바탕에는 한국 선불교의 맥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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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스턴 시내에 있는 닥터 허버트 벤슨의 ‘벤슨-헨리 의료센터(Benson-Henry Institute)’(좌)
  2. 벤슨-헨리 의료센터 내부(우). 

의학적으로도 확인되는 치료 효과
닥터 허버트 벤슨(Herbert Benson)은 하버드 의대 심신의학 교수이다. 서구의학이 몸 따로 마음 따로라고 주장하며 기존의 방식을 뒤집기 시작했다. 그는 이완반응-명상 치료법을 발견해 냈다. 약물 처방 이전에 명상을 통한 이완작용이 보다 고혈압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 이후 초월 명상가들과의 작업을 통해 이를 의학적으로 확인했다. 달라이라마의 도움으로 티벳 수행자들의 사례도 분석하였다. 현재 미국의 60~70%의 의사들이 만성 통증 환자들을 이완반응-명상법으로 치료하고 있다. 하버드 의대는 닥터 벤슨의 공로를 인정해서 그의 이름을 딴 벤슨-헨리 의료센터(Benson-Henry Institute)’를 보스턴에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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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최근 들어 각광을 받고 있는 불교적 치료법은 티벳 의술이다. 티벳에서 온 린포체로부터 시술을 받아온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전해졌다. 동부와 서부 해안 도시에 작은 의원이 퍼져 있고, 티벳 불교의 성지처럼 된 콜로라도 볼더, 캐나다 토론토에 병원뿐 아니라 교육기관도 있다. 하지만 티벳 의술은 아직 주 정부로부터 정식 의술 행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를 감내하며 시술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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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 문화가 의료계까지 퍼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의술은 위험 부담이 높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감각적인 이해가 아닌 진지한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다. 웰빙에 대한 서구인들의 염원이 지극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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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경 : 저널리스트, Art/Mindfulness. 성신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미술 석사를 받았다. 불교방송 PD로 활동할 당시, 1998년과 2000년에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여러 매체에 미국의 시사 문화와 불교에 관해 소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세계 석학들과 현대미술 거장들을 인터뷰하고 명상적 시각에서 해석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 틱낫한 스님의 환경을 지키는 책 우리가 머무는 세상등을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