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과 문양] 수병(水甁)과 정병(淨甁)

수행자의 상징 수병(水甁), 관음보살의 상징 정병(淨甁)

2011-07-25     유근자
그림1. 물병을 든 바라문들, Zar Dheri 출토, 2세기경, 국립쿄토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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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물이 든 정병(淨甁)과 보통 물이 든 촉병(觸甁
)

 

모든 물에는 깨끗한 물[]과 보통 물[]의 구분이 있다. 병도 두 개가 있어 깨끗한 물은 질그릇을 사용하고, 보통 물은 구리 등 금속제를 사용한다. 깨끗한 물은 식사 때가 아닐 때 음료수로 사용하고, 보통 물은 대소변 후에 필요한 물이다. 깨끗한 물은 깨끗한 손으로만 지닐 수 있고 반드시 청정한 곳에 두어야 하며, 보통 물은 언제나 필요할 때 잡을 수 있게 해 손이 닿는 곳에 두어야 한다.”

그림2. 버드나무와 물가의 풍경이 새겨진 정병, 고려, 국립중앙박물관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 수밧다

간다라의 부처님 열반 불전도에 꼭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 직계 제자가 된 수밧다이다. 열반상 앞에는 유행승(遊行僧)의 지물인 세 개의 막대[三杖, Tridanda]에 가죽으로 된 물주머니가 걸려 있다. 이것은 유행승이었던 수밧다의 출가 이전 출신을 나타내는 중요한 도상이다. 인도에서는 지금도 정해진 주처(住處)없이 유행(遊行)하는 힌두교의 사두들에게 고리 달린 지팡이, 물 주전자, ()이 중요한 지물(持物)이다.

간다라 열반 불전도의 삼각(三脚) 막대기에 매달린 물주머니와 수밧다의 표현은 굽타시대 아잔타 26굴의 열반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그림 3). 아잔타 26굴의 열반상 앞에는 여러 인물상과 함께 부처님과 대면하고 있는 수밧다가 등을 보이며 앉아 있고, 다리가 셋인 막대기 걸개에 정병 형태의 물병이 매달려 있다. 물병의 형태는 마치 고려시대의 정병과 유사하다(그림2). 물병 아래에는 물을 담거나 따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릇이 놓여 있다.

 
그림3.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 수밧다와 물병, 아잔타 26굴, 굽타(5~6세기), 인도

수행자풍의 미륵보살과 수병(水甁)

범천(Brahma)은 우파니샤드 시대에 신격화된 남성신으로 창조주와 동일시되었고, 제석천(Indra)은 전사적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세속 세계를 지배하는 신들의 왕으로 여겨졌다. 이런 바라문교의 최고신인 범천과 제석천은 불교에 도입되어 부처님을 수호하는 호법 신장이 되었기 때문에, 초기불교미술에서는 부처님의 양 옆에 오게 되었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흥기와 함께 범천과 제석천은 차츰 미륵보살과 관음보살에 밀려나게 되었고, 3세기경에 이르러 미륵과 관음보살이 부처님의 옆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범천은 수행자적이고 성자적인 이미지 때문에 긴 머리칼을 올려 묶거나 늘어뜨린 채 손에는 물병을 들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것은 당시 수행자상을 반영한 것이다. 반면 제석천은 왕자적이고 전사적인 이미지 때문에, 머리에는 장식이 있는 보관이나 터번을 쓰고 손에는 금강저를 들고 있다. 당시 신들의 왕이며 세속의 왕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범천 도상은 미륵보살로 계승되고 제석천 도상은 관음보살로 이어진다. 미륵보살은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수행자적 이미지를 반영해 범천처럼 머리칼을 묶거나 늘어뜨리고 손에 물병을 들고 있다.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왕자적 이미지를 가진 관음보살은 제석천처럼 몸에 장신구를 걸친 화려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간다라의 미륵보살상은 바로 수행자적 이미지를 반영한 긴 머리칼과 손에 물병을 든 모습으로 표현되었다(그림 4).

그림4. 수행자풍의 물병을 든 미륵보살상, 간다라(2~3세기), 페샤와르박물관 (왼쪽) 그림5. 정병을 든 석굴암 범천, 통일신라(751년경), 경주 석굴암(가운데) 그림6. 감로수병을 들고 있는 석굴암의 11면관음보살, 통일신라(751년경), 경주석굴암(오른쪽)

석굴암의 범천
대한불교조계종 종무기관인 총무원 청사를 방문하면 맨 처음 건물 출입문에서 석굴암의 범천과 제석천을 만나게 된다. 751년경 완성된 경주 석굴암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불교조각으로 유명하다. 석굴암의 범천은 왜 오른손에는 불자(拂子)를 들고, 왼손에는 목이 긴 정병을 들고 있을까(그림
5).
범천이 들고 있는 불자는 부처님 당시 인도에서 파리나 모기를 쫓을 때, 일상생활에서 스님들이 사용하던 도구였다. 또한 크샤트리아 계급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되던 것이다. 왼손의 정병은 바로 범천이 갖고 있는 수행자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초기불교미술에서 범천의 도상을 연상시키면 쉽게 이해된다
.

관음보살은 중생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자비의 상징으로 널리 신앙되고 있다. 관음보살은 중생들의 목마름을 해결해주기 위해 손에 병을 들고 있다. 이 병은 일반적으로 정병이라고 하지만 감로가 든 감로수병 또는 감로병이라고도 한다. 수행자의 상징이었던 물병이 관음보살에게 와서는 중생구제로 그 역할이 변화되었다.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는 관음보살의 지물, 감로병(甘露甁)

우리에게 익숙한 관음보살의 정병은 인도의 초기불교미술에서는 바라문 수행자의 표시 수행자풍의 범천 수행자풍의 미륵보살의 지물이 되었다가, 관음보살의 대표적인 지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정면에서 보면 본존인 석가모니 부처님께 가려 보이지 않는 석굴암의 11면관음보살상을 눈앞에 두고, 올 여름 무더위와 온갖 갈증은 관음보살께서 모두 거두어 가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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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덕성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박사과정을 이수했다. 통일신라 약사불상의 연구로 석사학위를, 간다라 불전도상(佛傳圖像)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한국미술사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