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 스님이 던진 질문에 답해야 할 때

특별기고/문수 스님 1주기 추모사업을 마치고

2011-07-25     불광출판사

문수 스님께서 소신공양한 531일을 전후해 소박한 1주기 추모행사를 가졌다. 참회와 성찰의 108, 생명평화 대화마당, 추모음악회, 낙동강 지보사 순례, 부도탑 조성 등 규모는 작았지만 행사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준비했고, 참가자들도 애틋한 마음을 보태 주었다.
작년 이맘때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선방에서 고요히 정진하던 한 스님이 낙동강변에 고요히 소신공양을 결행했다는 소식은 정말 큰 충격이었다. 수경 스님과 몇몇 활동가들이 급하게 모여 대책을 논의하였고, 조계사에 분향소를 차렸다. 그리고 49재가 끝날 때까지 불교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거의 조계사에서 살다시피 하며 뙤약볕 아래 함께 구슬땀을 흘렸다. 끝까지 서로를 격려하며 국민추모제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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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분향소를 지키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조용히 분향소 뒤에 앉아 흐느끼고 가던 비구니스님과 수녀님들, 불교계가 왜 이렇게 미온적이냐며 열변을 토하던 재가불자들, 늦은 밤 문수 스님 영정 앞에 앉아 통곡을 하던 회사원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님의 숭고한 뜻에 머리를 숙였지만, 의외로 불교 내부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소신공양은 부처님의 불살생계를 어긴 것이므로 동의할 수 없다고 항의를 하였고, 어떤 이는 스님이 왜 투사처럼 정치적 이슈로 분신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문수 스님의 과거 행적을 문제 삼았고, 어떤 이들은 문수 스님의 의도를 의심했다. 그것이 못내 가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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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지난 현재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비슷한 질문들 앞에 또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문수 스님을 위해, 아니 우리 모두를 위해 다시 자문자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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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소신한 행위는 과연 부처님의 가르침에 합당한 것인가
?
합당하다. 소신이 다른 생명을 해치는 것과 다름없다면 부처님이 전생에 보살이셨을 때 뭇 생명을 위해 육신을 던졌던 숱한 전생담의 일화들은 다 죄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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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교계나 수행자가 세상의 문제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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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다. 세상에 고요한 고립이란 존재치 않는다. 중생을 위해 고통의 현장에 뛰어들어 짊어지는 것이야말로 부처님이 걸어가셨던 길이고, 그 뒤를 좇는 보살의 길이다. 팔만사천법문이 다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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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님의 과거 삶의 궤적을 알기에 선뜻 마음 내기 어렵다.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닌가
?
아니다. 우리가 수행을 할 때 과거의 기억,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오직 지금 여기(Now and here)를 살피듯, 지금의 행이야말로 그 존재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문수 스님이 천일 정진하며 생명파괴를 걱정하고 뭇 생명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던진 그 행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과거의 업이 현재의 전부가 되고, 미래의 모든 것을 규정한다면 대체 살인자 앙굴리말라가 어떻게 아라한이 될 수 있었겠는가. 일체중생에게 부처될 씨앗[佛性]이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 되지 않겠는가
?

4. 출가수행자가 정치적 이슈로 분신한 것은 지나친 것 아닌가
?
수행자가 생명을 살상하고, 백성을 돌보지 않는 통치자의 잘못을 경책하는 것은 정치적 행위라기보다는 지극히 종교적 행위이다. 이것이 속된 의미의 정치행위라면 부처님이 석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코살라국 대군 앞을 막으셨던 것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그야말로 가장 적극적인 반전평화시위가 아니셨던가
?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은 한국불교사 초유의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꼭 하나의 정답을 찾아야 되는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답을 찾아가는 건강한 논쟁의 과정이 불교와 세상을 살찌울 것이다. 그러나 침묵하거나 불편해 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위축되고 의기소침한 과거의 습관을 떨쳐버리고 과감히 문을 박차고 나와야 한다.
우리는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이 불교의 사회적 역할, 불교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호국불교라는 좁은 관념을 깨뜨리고, ‘호민(護民)불교’, 나아가 뭇 생명을 살리는 생명평화의 불교로 전환하도록 거룩한 자기 희생을 하신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불교가 세상을 위해 헌신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그 방법은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하는지, 역량은 어떻게 키워 나갈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문수 스님의 뜻을 되살리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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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기를 보내면서 다시 가다듬는다. 우리가 흘린 땀방울과 소박한 희망이 모여 세상을 위한 불교, 모든 생명을 위한 불교의 길이 작게라도 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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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기 : 불교신문 기자를 거쳐 참여불교재가연대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며 불교시민사회운동에 헌신해 왔다. 현재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