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걱정을 많이 하면, 자기 문제가 해결됩니다”

만남, 인터뷰/에코붓다 유정길 대표

2011-06-28     불광출판사


수행공동체 정토회 활동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지난 510일 열린 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회만 하더라도 매우 인상 깊다. 김명진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김홍진 신부(쑥고개 성당 주임신부), 박남수 선도사(동학민족통일회) 등 이웃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며 종교화합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날 사회를 본 소셜테이너(사회 참여 연예인) 김여진 씨는 최근 대학생 등록금 문제로 1인 시위를 하고,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사회문제에 대한 소신발언으로 대중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러한 활동은 정토회 방송문화예술인 마음공부모임인 길벗에서의 수행과 토론, 사회봉사를 통해 익혀진 것들이다.
또한 서점가의 불교 코너는 법정 스님의 빈자리를 스님의 주례사, 기도-내려놓기등 법륜 스님(정토회 지도법사)의 저서가 채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변 불자들 사이에 깨달음의 장’, ‘백일출가등 문경 정토수련원의 수행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정토회 활동을 특별하게 만들고 우리 마음을 열게 만드는 것일까. 정토회 창립(1988) 멤버로서 정토회 활동의 산증인이자, 시민운동의 대표적 인물로 손꼽히는 유정길(51) 에코붓다 공동대표의 삶을 통해 반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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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붕괴와 폐문정진
유정길 대표는 대학시절 민주화투쟁을 주도하던 골수 운동권이었다. 1984년 무렵 오랜 수배생활 끝에, 지인의 소개로 서울 어느 선원에 은신하면서 불법을 처음 접하게 된다. 그곳에서 법륜 스님과의 인연도 시작되었다. 이후 구속되어 1년간의 옥살이를 거치고 노동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6개월간 용접을 배우던 시기에, 우연히 현재 함께 정토회 활동을 이끌고 있는 박수일 법사를 만나게 된다. 이때 잠시 대학생 수련 교재의 교정을 도와주며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공부하게 되면서, 불교적 세계관에 깊은 충격을 받으며 인생의 전환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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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공부를 하면서 확철대오하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운동을 바라보는 시각도 넓어지고 제 삶에도 변화가 일었지요. 이후에 불교개혁운동에 뛰어들고, 1988년 정토회 공동체도 함께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동구권과 소련 등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지향해오던 이념과 신념, 정체성에 큰 혼돈이 왔어요. 오랜 논의와 고민 끝에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3년간 폐문정진(閉門精進)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하고 새로운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
현재 정토회 활동의 기반은 이 3년의 시간 동안 만들어졌다. 전 삶을 바치겠다는 신념이 무너진 상태에서,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시스템을 극복할 새로운 비전과 대안을 창조하려는 노력은 그만큼 절실했다. 모든 것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도인, 인류학자, 물리학자, 경제학자, 통일운동가 등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났다. 또한 협동조합, 지역공동체, 환경운동단체 등을 두루 다니며 견학하고 이와 관련된 책을 번역하는 등 끊임없이 연구하고 치열하게 토론했다. 무엇보다 법륜 스님이 제안한 환경 공부를 하며 새로운 대안의 실마리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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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모든 경제 성장의 발전 개념은 자원이 무한하다는 전제 위에서 만들어졌어요. 잘 사는 20%의 나라가 화석 연료의 80%를 소모하며 현재의 환경 위기가 초래된 것입니다. 만약 못 사는 80%의 나라가 저마다 잘 먹고 잘 살겠다며 자원을 무한대로 소비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적당한 소비 내에서 정신적인 풍요를 추구하는 형태의 생태주의 가치관, 철학, 산업시스템, 정책개발로 가지 않으면 우리는 마침내 공멸하게 됩니다. 사실 환경운동이라는 용어는 이러한 패러다임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합니다. 적과 아를 구분하고 나만 옳다는 이분법적 세계관, 세계가 직선적으로 발전한다는 직선적인 시간관 등에서 벗어나 생명운동의 관점으로 죽임의 문화에서 생명의 문화로 바꿔가야 합니다. 이는 모든 생명체는 그물망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의존적인 존재라는 불교의 연기론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어요. 환경운동뿐만 아니라 정토회가 펼치고 있는 평화운동, 구호개발운동도 마찬가지로 생명운동의 다른 측면입니다. 이름은 다르지만 하나의 활동을 해온 것이죠
.”

 
      법륜 스님, 정토회 법사단과 함께.

감동을 생산하고 선()의지를 이끌어내는 코디네이터
3년간의 폐문정진이 끝나고 정토회는 1993‘30년 결사(만일 결사)’를 시작하며 새롭게 활동을 전개했다. 30년의 원력으로 꾸준히 정진하면, 문명 전환의 꽃을 피울 수는 없더라도 새로운 문명의 씨앗을 뿌리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현재 6차 천일 결사가 회향되었고, 지난 27차 천일 결사가 시작되었다. 정토회는 보직 순환제개념으로, 매 천일 결사가 끝나는 시점에서 모든 활동을 내려놓고 전면 검토한다. 이때 소임자의 보직도 해임되어, 새로운 분야에서 활동하게 된다. 두 번째 천일 결사까지는 유임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무조건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직무에 대한 배타적인 소유의식을 견제하고 후배 활동가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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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길 대표도 이러한 운영 원칙에 따라 한국불교환경교육원과 에코붓다에서 환경 분야 일을 하다, 공양주를 자청해 부엌살림을 살았고, 이어 91 사태 이후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에서 3년간 긴급구호와 개발지원활동에 참여했다. 2005년부터는 평화재단이 설립되는 과정에서 얼개를 만드는 활동을 했으며, 현재 평화재단 기획위원과 에코붓다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 인터뷰 내내 그의 얼굴엔 넉넉한 웃음이 가득했다.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는, 행복과 즐거움이 묻어나는 웃음이었다. 무엇이 그를 웃게 만드는 것일까?
저는 일을 재밌는 놀이를 하듯 즐기면서 합니다. 돈을 버는 일도 아닌데, 즐겁지 않으면 이토록 오래 할 수 있겠어요? 그 원동력은 바로 감동의 에너지입니다. 예를 들면 빈그릇운동 서약 캠페인을 할 때 130만 명 이상이 음식을 남기지 않겠다고 서약에 동참하였습니다. 그것도 굶주린 이웃을 돕기 위해 천원씩 기탁하면서 말이죠. 그야말로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우리가 하는 일이 바로 감동을 생산하고, 그 감동의 힘으로 사회를 발전적으로 변화시키는 활동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면 좋은 사람들, 감동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돈 빌려 달라, 보증 서달라고 찾아오는 사람은 없어요. 하하
.”
정토회 상근활동가는 300여 명에 이르며, 공동체 생활을 하는 활동가는 100여 명이다. 이들에게는 매일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다. ‘수행, 보시, 봉사의 생활화이다. 매일 1시간 수행, 일정 금액 보시, 한 가지 이상 남을 위한 봉사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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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마음을 돌아보는 수행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운동은 같이 가야 합니다. 자신이 변한 만큼 주변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자동차의 배기량처럼 자기 에너지만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원력의 크기를 높이는 것이 바로 수행이자 마음공부입니다. 과거 사회운동은 적개심과 분노가 에너지로 작용했습니다. 증오의 에너지는 자기를 피폐시키고 갉아먹어 활동을 오래 할 수 없습니다. 활동가의 전문성은 과거처럼 분노를 결집시켜 투쟁을 조직화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자원과 스케줄을 잘 꾸리고 구성하는 코디네이터로서, 사람들의 선()의지를 이끌어내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만들어가는 데서 찾아야 합니다
.”

 
      정토회 거리모금캠페인.

고민하는 만큼 상상한다
유정길 대표는 일본 불교사회단체인 중앙학술연구소 특별연구원 자격으로, 지난 해 12월부터 일본에 머물며 1년 예정으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조계종 한국불교 중흥을 위한 대토론회 생명생태문제와 한국불교발제와 불광연구소의 학술연찬회 한국불교의 생태담론과 생태운동발표를 위해 잠시 귀국하여 한국에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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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지역운동이나 풀뿌리운동이 굉장히 발달해 있어요. 일본에 있는 동안 불교사회단체를 비롯해 지역운동단체, 구호개발단체, 환경단체 등을 조사연구하며, 일간 네트워크를 유기적으로 만들어갈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군비 축소가 일어나는데, 동북아 지역만 유독 군비 증강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대만과 중국의 불교단체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네트워크를 펼친다면, 동북아 평화를 도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 나라는 특히 불교가 중심인 나라이기 때문에 종교적인 매개체 역할이 중요하며 그 가능성도 충분하리라 봅니다
.”
그는 50이 넘은 나이지만 안주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점검해보는 도전을 즐긴다. 경험하는 만큼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에게 미래는 추상적이지 않다. 우리가 지향하는 이상향, 정토, 불국토도 충분히 구축할 수 있는 세계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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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해결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화두를 들듯 원인을 끝까지 파고들어가서 극복하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더 큰 고민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사회운동을 할 때 실존과 민족 문제를 고민하면, 나이키 신발을 신고 싶은 문제는 고민거리도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국불교의 문제도 초점을 내부에서 벗어나 세계로 넓혀 가면, 내부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식도 생기고 미래 중심으로 통합될 것입니다
.”
문득 개인 문제로 돌아와, 우리는 왜 삶이 이토록 괴로운 것일까 생각해본다. 돈에 찌들리고 인간관계에 상처받고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이해관계의 세계를 떠난 그의 대답이 조금이나마 삶의 위안과 희망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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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성장이 아니라 성숙의 삶을 살겠다는 선언을 해야 합니다. 집이 크면 클수록 더 많은 물건으로 채워야 하기 때문에, 구매 욕구를 자꾸만 자극하게 만듭니다. 삶의 사이즈를 줄이고 남는 것은 나누며 사는 것이 불자의 실천입니다. 어렸을 때 미국 영화를 보면, 미국을 동경하며 미국 배우가 우리 아버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아프가니스탄에 갔을 때 꼬마들이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거예요. ‘저 아저씨가 우리 아버지였으면 좋겠다라구요. 한국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복을 누리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남 걱정을 많이 하면, 자기 문제가 해결됩니다
.”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구호개발활동 당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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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길 : 에코붓다 공동대표 및 평화재단 기획위원. 수행공동체 정토회 창립 이전부터 25년간 불교수행과 사회운동을 함께 해온 불교계 대표적인 사회활동가다. 정토회 실무책임자로 활동하며 ‘음식물쓰레기 제로-빈그릇운동’을 비롯해 환경·생태운동, 제3세계 구호개발활동, 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조계종 환경위원, 한국 JTS 정책위원, 용기순환협회 이사, 지혜학교 이사, 녹색서울시민위원회 의제분과 위원으로도 활동하며 사회운동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해 말부터 1년 일정으로 일본 중앙학술연구소 특별연구원 자격으로, 일본 불교사회단체 활동을 조사연구하고 있다. 2010년 대원상 재가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