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법구] 발로 쓰는 족필(足筆)

내 마음의 법구

2011-05-30     이원규

지리산에 들어와 살면서 지난 10년 동안 족히 3만 리는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이유는 4대강 문제 등 다양했지만, 그 목적을 이루기 이전에 언제나 ‘걷는다’는 과정이 날마다 소중했다. 결과보다 과정으로서의 길 위에는 언제나 길동무 혹은 스승 같은 도반이 있었다. 수경 스님과 도법, 연관 스님이 늘 가까이 있어 고행을 자처하거나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도 ‘지금 바로 여기에서’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자세로 행복할 수 있었다.

전국 이곳저곳을 도보 순례하는 동안 수경 스님이 천막 속에서 날마다 강조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조고각하(照顧脚下)였다. 한 수좌가 각명(覺明) 선사에게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 하고 묻자 “네 발밑을 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언젠가 이른 새벽에 먼저 일어난 수경스님이 순례단 천막 옆 공중화장실에서 누런 변기를 닦는 것을 엿본 적이 있다. 이러한 스님의 ‘댓돌 위의 신발부터 똑바로 놓으라’던 낮은 목소리는 자주흐트러지는 신심에 죽비를 내려치는 일갈로서 모골이 송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한 걸음 걸음이 달라졌다. 첫 마음[初心]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썼다. 무언가 글을 쓸 일이 있어도 함부로 휘갈겨 쓰지 않고 한 글자 한 글자 첫눈 위에 발자국을 새기듯 마음을 다잡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모든 글은 손과 머리로만 쓰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쓰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문득 새로운 말을 하나 만들었는데, 이름하여 족필(足筆)이다. 연필과 볼펜과 만년필, 그리고 모필(毛筆)과 혁필로 쓰는 육필이 아니라 온몸으로 지렁이나 자벌레처럼 한 글자 또 한 글자씩 쓰는 족필!

걷고 또 걷다가 문득 생각하니 내 몸이 바로 움직이는 붓이요 펜이었다. 세상의 가장 느린 속도로 걷다 보니 아무래도 시와 편지 등의 글들은 손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쓰는 게 아니라 오직 발로 쓰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내 온몸이 하나의 붓이 되어 한 발 한 발 힘찬 획을 그으며 걷다 보니 그것이 바로 한 편의 시가 되고 편지가 되는 것이었다. 휘휘 둘러보면 세상 도처가 법당이요 도량이었다. 산과 바다와 들과 강, 농촌과 병원과 공장과 교도소와 삼팔선, 이 모두가 우리들의 경전이요 학교이자 기도처였다.

그러나 아직은 비뚤비뚤 일체원융의 동그라미 하나 제대로 못 그렸다. 다만 이제 나의 족필은 겨우 지리산에 850리의 거대한 원 하나, 엄마의 ‘ㅇ’, 옴의 ‘ㅇ’, 생명평화의 ‘ㅇ’, 사랑의 ’ㅇ’, 울음소리의 ‘ㅇ’ 자 하나 쓰고 지우고 다시 썼다. 자음과 모음 그 한 획도 함부로 쓰지 못해 행여 한 달 만에 겨우 단 한글자도 쓰지 못하면 또 어떠랴.

저 우주의 밤하늘에 빛나는 획 하나 긋느라 일생을 바치는 별똥별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별똥별이 떨어지는 곳, 내 발밑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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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
1962년 경북 문경에서태어나 1984월간 문학,1989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저서로는 강물도 목이마르다, 옛 애인의 집, 돌아보면 그가 있다, 빨치산 편지등의 시집과 지리산 편지,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등의 산문집이 있다. 신동엽창작상과 평화인권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지리산학교 교사대표 및 순천대 문예창작학과 강사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