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법구] 발로 쓰는 족필(足筆)
내 마음의 법구
지리산에 들어와 살면서 지난 10년 동안 족히 3만 리는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이유는 4대강 문제 등 다양했지만, 그 목적을 이루기 이전에 언제나 ‘걷는다’는 과정이 날마다 소중했다. 결과보다 과정으로서의 길 위에는 언제나 길동무 혹은 스승 같은 도반이 있었다. 수경 스님과 도법, 연관 스님이 늘 가까이 있어 고행을 자처하거나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도 ‘지금 바로 여기에서’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자세로 행복할 수 있었다.
전국 이곳저곳을 도보 순례하는 동안 수경 스님이 천막 속에서 날마다 강조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조고각하(照顧脚下)였다. 한 수좌가 각명(覺明) 선사에게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 하고 묻자 “네 발밑을 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언젠가 이른 새벽에 먼저 일어난 수경스님이 순례단 천막 옆 공중화장실에서 누런 변기를 닦는 것을 엿본 적이 있다. 이러한 스님의 ‘댓돌 위의 신발부터 똑바로 놓으라’던 낮은 목소리는 자주흐트러지는 신심에 죽비를 내려치는 일갈로서 모골이 송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한 걸음 걸음이 달라졌다. 첫 마음[初心]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썼다. 무언가 글을 쓸 일이 있어도 함부로 휘갈겨 쓰지 않고 한 글자 한 글자 첫눈 위에 발자국을 새기듯 마음을 다잡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모든 글은 손과 머리로만 쓰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쓰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문득 새로운 말을 하나 만들었는데, 이름하여 족필(足筆)이다. 연필과 볼펜과 만년필, 그리고 모필(毛筆)과 혁필로 쓰는 육필이 아니라 온몸으로 지렁이나 자벌레처럼 한 글자 또 한 글자씩 쓰는 족필!
걷고 또 걷다가 문득 생각하니 내 몸이 바로 움직이는 붓이요 펜이었다. 세상의 가장 느린 속도로 걷다 보니 아무래도 시와 편지 등의 글들은 손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쓰는 게 아니라 오직 발로 쓰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내 온몸이 하나의 붓이 되어 한 발 한 발 힘찬 획을 그으며 걷다 보니 그것이 바로 한 편의 시가 되고 편지가 되는 것이었다. 휘휘 둘러보면 세상 도처가 법당이요 도량이었다. 산과 바다와 들과 강, 농촌과 병원과 공장과 교도소와 삼팔선, 이 모두가 우리들의 경전이요 학교이자 기도처였다.
그러나 아직은 비뚤비뚤 일체원융의 동그라미 하나 제대로 못 그렸다. 다만 이제 나의 족필은 겨우 지리산에 850리의 거대한 원 하나, 엄마의 ‘ㅇ’, 옴의 ‘ㅇ’, 생명평화의 ‘ㅇ’, 사랑의 ’ㅇ’, 울음소리의 ‘ㅇ’ 자 하나 쓰고 지우고 다시 썼다. 자음과 모음 그 한 획도 함부로 쓰지 못해 행여 한 달 만에 겨우 단 한글자도 쓰지 못하면 또 어떠랴.
저 우주의 밤하늘에 빛나는 획 하나 긋느라 일생을 바치는 별똥별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별똥별이 떨어지는 곳, 내 발밑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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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
1962년 경북 문경에서태어나 1984년 「월간 문학」,1989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저서로는 『강물도 목이마르다』, 『옛 애인의 집』, 『돌아보면 그가 있다』, 『빨치산 편지』 등의 시집과 『지리산 편지』,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등의 산문집이 있다. 신동엽창작상과 평화인권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지리산학교 교사대표 및 순천대 문예창작학과 강사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