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과 위빠사나, ‘구별짓기’보다 ‘소통’이 필요하다!

특집/간화선과 위빠사나의 역사적인 만남, 그리고 소통(1)

2011-05-30     불광출판사

지난 48일부터 사흘 동안 전통불교문화원에서 열린 간화선과 위빠사나의 만남과 소통 국제 연찬회는 간화선과 위빠사나의 고승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간 깨달음에 이르는 방편으로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던 두 수행법의 진면목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과연 두 선지식(고우 스님, 파욱 스님)이 말하는 간화선과 위빠사나의 정수는 무엇이었을까. 뜨겁던 3일간의 현장 분위기를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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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간화선과 위빠사나,‘구별짓기보다 소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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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看話禪)과 위빠사나(vipassana). 화두(話頭)를 참구하며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법이 간화선이라면 위빠사나는 무상(無常(무아(無我)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혜를 증득하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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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과 위빠사나 사이의 긴장은 1980년대를 전후해 위빠사나로 대표되는 초기불교가 한국에 소개되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대승(大乘)’의 본류를 자처하는 한국불교 주류는 상좌불교를 소승(小乘)’으로 폄하하며 무시했다. 한겨울 굳게 닫힌 선방만큼이나 객()들에게 틈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위빠사나를 체험한 대중들이 빠른 수행 효과
에 대한 입소문을 내기시작하면서 어느새 초기불교 수행자들의 숫자는 빠르게 늘어났다
두 수행법 사이의 긴장은 수행의 깊이부처님 수행법 여부등으로 초점이 모아진다. 간화선 수행자들은 위빠사나가 구경각(究竟覺)에는 이를 수 없는 수행법이라고 비판한다. 아라한을 뛰어넘는 진짜 부처의 지위에는 오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자들은 위빠사나의 법() 역시 단순한 개념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구경법(究竟法)”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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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위빠사나 수행자들은 간화선이 중국 송대에서야 정립된 종파불교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부처님은 위빠사나로 수행해 깨달음을 얻었다면서 말이다. 이와 관련해 동국대 황순일 교수는 불교평론46호에서 확실한 것은 위빠사나만이 초기불교의 명상은 아니다.”위빠사나가 남방불교에서 중요시된 것은 어디까지나 근대 이후이며 그나마도 미얀마 군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또 다른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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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지난 수십 년간의 논쟁은 다분히 소모적이었다. 불필요한 오해는 계속 오해를 낳았다. 서로를 비하하는 감정적 논쟁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간화선과 위빠사나의 소통을 말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김재성 교수는 번뇌를 없애고 중생이 부처임을 인식한다는 측면에서 간화선과 위빠사나 수행의 목적은 동일하다.”다만 화두를 통해서 공부를 하느냐 심신의 관찰을 통해 수행하느냐 하는 방법론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특히 최근 간화선을 공부한 스님들이 법문 등을 통해 초기불교의 핵심사상인 중도(中道)와 연기(緣起),(), 무아(無我) 등을 말하는 것은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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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간화선과 위빠사나의 만남과 소통 국제 연찬회가 조계사 선림원(원장 토진 스님)과 전통불교문화원(본부장 혜오 스님) 공동 주최로 48일부터 3일간 공주 전통불교문화원에서 진행됐다. 이번 연찬회 역시 상호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간화선 법문에 나선 조계종 원로의원 고우 스님은 간화선과 위빠사나는 결국 깨달음이라는 하는 목적이 같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어떤 수행법이든 정확히 이해하고 실참(實參)한다면 생활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찬회 진행을 맡았던 해남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은 연찬회는 수행의 우열을 가리고자 마련한 것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평화를 만드는 자리라고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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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과 위빠사나는 마음공부를 하고자 하는 동서양의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이제부터 두 수행법은 명상에 목마른 시민들을 위해서라도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찾는 데 노력을 같이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