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지스 강을 건너 5비구를 만나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부처님의 참모습

2011-05-27     자현 스님

수행자에게는 뱃삯을 받지 말라
붓다께서 깨달음을 얻은 곳에서 최초 설법지인 녹야원까지는 대략 320정도나 되는 먼 거리이다. 붓다는 이 길을 중생구제를 위한 설법의 마음과 함께 맨발로 걸으셨다. 녹야원은 바라나시 북쪽으로 약 6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붓다의 행로는 바라나시에서 녹야원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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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강의 강변 도시인 바라나시로 가기 위해서 붓다는 필연적으로 강을 건너야 했다. 강변에 도착한 붓다는 뱃사공에게 강을 건네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뱃사공의 답변은 뱃삯의 요구였다. 붓다는 뱃사공에게 수행자는 세속적 가치를 초월해 있기 때문에 금전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한 뒤, 다시금 도강(渡江)을 부탁한다. 그럼에도 뱃사공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붓다는 문득 고개를 들어 자유롭게 강을 건너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면서, 지형적 한계에 결박당하지 않는 자유를 찬탄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마저 넘어선 신통으로 강을 건넌다. 이를 보고 뱃사공은 자신이 사욕에 가리어진정한 수행자에게 무례를 범했음을 한탄하며, 몸부림치며 자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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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문이 두루 퍼져 왕의 귀에 들어가자, 왕은 모든 수행자에게는 뱃삯을 받지 말라는 전교를 내린다. 인도에서 수행자에게 뱃삯을 받지 않는 풍속은 이렇게 붓다에 의해 비롯된 것이다. 이 일화는 붓다의 발걸음이 더 이상전철(前轍)을 밟는 걸음이 아니라, 새로움을 만들어 가는 창조적 행보라는 점을 분명히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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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붓다가 신통을 사용해 강을 건널 거라면, 왜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깨달음 이후의 붓다에게 있어서는, 모든 행위가 중생을 위하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서였다면, 붓다는 처음부터 신통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뱃사공을 제도할 수 있음을 관조하고, 뱃사공을 위해서 이러한 번거로움과 치욕적인 부탁의 행위를 전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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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답을 제시해 주는 분이 아니다. 다만 우리로 하여금 답이 무엇인가를 스스로가 알 수 있도록 자각케 해주는 분이다. 이 점이 바로 붓다의 규정지어질 수 없는 자유의 위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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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에게 허용된 땅, 녹야원
붓다는 상업도시인 바라나시에서 풍요와 가능성, 그리고 가치관의 혼란과 새로운 민중의 요구들을 목도하게 된다. 이것은 붓다에게 충분한 힘이 되었을 것이다. 붓다는 바라나시에서 5비구가 있는 녹야원, 즉 사슴동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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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야원은 전생의 붓다가 사슴왕이었을 때, 거느린 무리 중 새끼를 밴 암사슴을 대신해 죽고자 했던 보살행의 땅이다. 당시 이곳을 다스리던 인간의 왕은 이러한 사슴왕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감동하여, 이곳을 사슴들이 자유롭게 사는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녹야원이라는 명칭이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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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녹야원에는 일본불교에서 풀어 놓은 사슴들이 존재하고 있어 옛 정취를 상기케 한다. 일본에서 가장 큰 부처님(노사나불, 높이는 16.2m)을 모시고 있는, 신라 의상계 화엄종 사찰인 동대사(東大寺)에도 사슴이 방목되어 있다. 이 역시 붓다의 숭고한 희생과 최초설법을 기리기 위한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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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명도는 북송의 6대 황제인 신종(神宗)에게, “선성(先聖후성(後聖)이 부절(符節)을 합한 듯합니다. 성인(聖人)은 도를 전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전한 것이며, 성인의 마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전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옛적 성인들이나 지금의 성인들이 모두 똑같이 한결같은 마음이며, 그것은 곧 내 마음의 본체일 뿐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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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께서 녹야원으로 간 것 역시, 과거 보살행의 희생정신과 작금의 중생구제라는 내외의 마음이 하나로 합치된 결과이다. 이곳에서 붓다는 진리라는 영원의 깃발을 들어 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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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깨달음에서 방출되는 붓다의 에너지
붓다께서 5비구에게 다가가자, 5비구들도 멀리서 붓다를 보게 된다. 이때 5비구들은 붓다의 깨달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타락한 수행자와 상종하지 말자고 담합했다고 한다. 그러나 붓다께서 가까이 오자, 서로 누구랄 것도 없이 앞 다투어 일어나 자리를 권하며 맞이하게 된다. 이는 멀리서는 파악되지 못하는 기운이 가까이에서는 좌중을 압도하는 강력함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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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서 주목되는 것이, 붓다의 형상과 관련되어 후대에 집취(集聚)되는 32상 중 장광상(丈光相)이다. 이는 붓다의 신체 주변으로 1, 3m 정도 영역으로 존재하는 빛을 의미한다. 이 빛은 불상과 불화의 조형에서는 신광(身光)으로 묘사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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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는 나름의 특정한 에너지 장과 같은 고유한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예컨대, 유사한 가게에 들어가도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쉽게 나올 수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장소나 직원의 기운에 눌려 뭐라도 사가지고 나오게 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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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측면은 우리문화의 전통 속에서도 다수가 확인된다. 물건이나 사람을 잘못 들여서 집안에 우환이나 탈이 났다는 것, 또는 집의 증개축이나 묏자리를 손댔다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경우. 그리고 방위나 상사(喪事) 등과 관련된 살()과 같은 것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사람 간에 합()과 충() 운운하는 것들 역시 이와 연결된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에너지장 혹은 기운이나 카리스마 등으로도 이해되기도 하는 이러한 측면들은, 실로 우리 주변에서 다양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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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에너지는 진리의 깨달음에서 방출된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일반의 잡스러운 기운과는 비교될 수 없는 신성함과 강력함이 존재한다. 붓다의 생애를 이해함에 있어서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붓다와 대면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붓다의 앞에 오게 되면, 5비구에서와 같은 일관성 없는 모습을 종종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후 붓다가 상대하는 국왕들과 관련해서도 이들의 막강한 카리스마를 일거에 제압하는 붓다의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된다. 이러한 양상들은 공히 붓다의 깨달음에서 방사되는 진리의 기운에 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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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비구들이 붓다를 맞이한 장소에는 후일 이 사건을 기념하는 영불탑(迎佛塔)이 건립된다. 그러나 현재 영불탑은 파괴되고, 그 자리에는 이슬람 건축물만이 존재하고 있어 참배객들로 하여금 깊은 탄식을 자아내게 한다. , 현재붓다를 맞이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5비구가 아닌 이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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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스스로를 말하다
붓다를 모신 5비구들은, 무언가 붓다가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인지한다. 그래서 붓다에게 고타마시여, 안색이 수승하고 신색(身色)이 원만하니 혹여 좋은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묻는다. 이때 붓다께서는 깨달은 여래를 성씨로 부르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라고 주의를 준다. , 당신의 깨달음을 5비구에게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붓다의 5비구에 대한 첫 대면의 말이었다는 점은, 중국문화적인 전통에서는 매우 이질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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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화권과 같은 경우는 겸사가 미덕이다. 그래서 공자와 같은 경우, 논어에서 ()과 인() 같은 것을 내가 어찌 바라겠는가.”라고 한다. 이는 공자가 인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이 아니라, 겸사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붓다와 같은 경우는, 불편한 오해로 한동안 헤어져있던 5비구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깨달음을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있다. 이는 두 문화권의 차이를 단적으로 나타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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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주의적인 중국문화권에서는 두드러지는 개인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성을 앞에 쓰고 이름을 뒤따라오게 한다. 이는 주소에서도 전체를 나타내는 큰 지명이 앞이고, 동네명은 뒤가 되는 것을 통해서 일관된다. 그러나 개인주의적인 인도와 서양에서는 그 순서가 정반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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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서구문화의 유입으로 자기PR이나 개인기가 강조되고 있다. 이제면접에서는 당차게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보다 배점을 높게 받는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알면서도 모른다고 겸사를 해야 했던 상황과는, 너무나도 다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권의 충돌에 의한 우리의 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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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개인주의 문화권이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는 5비구에게 자신의 변화에 대해서 스스로를 말하고 있다. 붓다는 여기에서 여래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붓다가 스스로를 칭하는 자칭의 표현이다. 이후 제자들과 같은 경우는 붓다를 세존이라고 부른다. 마치 임금이 자신을 칭함에 이나 과인을 쓰지만, 신하들은 전하로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자들이 아닌 경우 붓다에 대한 칭호는 대사문(大沙門)’이나, ‘고타마가 주로 쓰인다. 그러므로 붓다의 칭호만을 보고서도, 우리는 그 사람과 붓다의 관계를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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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현 스님 : 철학박사(율장) 및 문학박사(불교건축). 동국대 철학과 및 불교학과를 졸업하였고,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및 동국대 미술사학과 박사 졸업, 고려대 철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50여 편의 논저서가 있으며, 현재 월정사 교무국장으로서 동국대, 울산대, 성균관대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