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 ‘NO’, 녹차 ‘YES’

서양 나라 젠(Zen) 풍경/Zen Tea

2011-04-26     불광출판사

    녹차 전문점 티바나(Teavana) 매장에 진열된 다구(茶具). 

“가벼우니까요”, “몸에 좋잖아요”, “의사가 권했습니다, 혈압이 높아서요”, “마음의 안정, 그리고 깨끗한 뒷맛” 슈퍼에서 녹차를 사가는 미국인들에게 들은 답이다.
컴퓨터 관련 용품을 파는 제이 허드슨(40세) 씨는 매일 아침을 인스턴트 녹차 한 병으로 시작한다. 예전에는 콜라를 마셨고, 에너지 드링크로 바꾸었다가, 지금은 녹차 드링크를 마신다. 대형마트에 갈 때마다 생수와 함께 ‘애리조나(Arizona)’ 한 박스를 잊지 않는다.
애리조나는 대표적인 녹차(Green Tea) 음료 상품이다. 찻잎을 우려내고 벌꿀과 인삼을 담았다는 문구가 상품에 새겨져 있다. 애리조나는 1992년 아이스티로 뉴욕 시장에 나왔고, 스포츠음료가 급성장하던 시기 녹차로 미국 전역을 사로잡았다. 15년 만에 그들은 펩시와 코카콜라를 위협하고 있다. 애리조나 캔에는 분홍 벚꽃이 피어있다. 일본 풍속화인 우키요에[浮世繪]를 발라놓은 듯하다. 음양 마크와 함께 찻잎을 따는 동양 고산지대 여성의 모습도 있다. 음료업계의 충고를 무시한 촌스럽고 이국적이었던 그들의 한심한 디자인이 이제는 트렌드를 이끄는 웰빙 아이콘이 되었다. 해마다 국제대회에서 디자인상도 받는다.


     티바나(Teavana) 매장에는 무료로 차를 맛볼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새로운 최신 트렌드, 녹차다방(Tea Shop)
50대 이상의 미국인들은 스타벅스나 피츠 같은 커피 전문점에서 5달러씩을 주고 커피를 사먹는 요즘 세태를 불편해 한다. 이들이 평생 함께했던 커피는 페인트 통만 한 크기에 10달러도 안 되는 가격과 맛이었다.
이제는 고급 차(茶) 문화 세태에 따라 녹차다방이 커피 전문점 옆을 비집고 들어선다. 커피 전문점이 짙은 녹색이나 밤색, 검정 톤이라면 녹차 전문점들은 이른 5월 갓 피어나는 찻잎 같은 연둣빛이다. 거기에 흰색, 주황색, 노란색등 밝은 이미지와 단순한 치장으로 젠 스타일을 풍긴다. 우리에게 녹차는 전통적 이미지가 강하지만, 미국의 녹차다방은 모던한 스타일에 도회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다. 마치 강남의 파스타 전문점이나 깔끔한 카페를 연상시킨다. 다만 벽을 장식하는 사진이 동양의 차밭이거나, 다구와 함께 붓다와 보살상을 모셔놓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제 중·대도시에서는 홍차보다 녹차 소비가 월등히 높아졌다. 캘리포니아 북부의 커피전문체인점 ‘피츠 커피 앤 티(Peet’s Coffee& Tea)’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경우 홍차에 대한 전문성도 함께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녹차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작년 후반부터는 녹차 판매가 홍차의 네 배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을 찾는 열 명의 사람 중 여덟 명은 커피, 두 명은 녹차를 주문한다. 녹차는 우롱차나 보이차 또는 과일 혼합차보다 더 많이 팔린다.
작년 여름 선보인 ‘피어니(Peony, 모란)’는 이미 가을이오기 전 확보한 물량을 다 팔았음에도, 아직까지 찾는 사람들이 있다. 피어니는 덖은 녹차 잎을 하나씩 모아 다발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 다관에 한 덩어리를 넣으면 모란처럼 탐스럽게 부풀기 때문에 더 인기를 끌었다.
요즘 ‘피츠 커피 앤 티’에서 집중적으로 안내하는 차는 스리랑카와 인도의 고산지대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홍차 ‘붓다 픽 실론(Buddha Peak Ceylon Organic)’과 진주처럼 동글게 말아 재스민 향을 첨가한 녹차 ‘재스민 다우니펄(Jasmine Downy Pearls)’이다. 재스민 다우니 펄은 어린찻잎 세 장을 새순에서 딴 솜털로 말아서 진주처럼 뭉쳐놓은 차다. 40컵 정도를 우려낼 수 있는 4온스(113.4그램) 한 통에 우리 돈 약 2만 5천원이다.


     티바나(Teavana)에서는 차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먹거리(쿠키, 사탕)도 판매하고 있다.

골라먹는 재미, 110가지 ‘그린 티’ 세상
녹차전문점 ‘티바나(Teavana)’는 미국인뿐만 아니라 인근 멕시코인들의 생활까지 바꿔가고 있다. 미국 내에 티바나가 들어서지 않은 주가 없다. 캘리포니아에는 거의 모든 도시에 티바나가 있다. 160여 매장에서 110가지 차를 판다.
티바나는 ‘Tea’와 ‘Nirvana(니르바나, 涅槃)’의 합성어로, 이들이 내세운 슬로건은 ‘차의 극락(Heaven of tea)’이다. 일반적으로 녹차다방(Tea Shop)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거나 일을 하는 카페라면, 티바나는 전문적인 고품격차 소매상이다. 모든 차를 갓 우려내 판매하기도 한다.
아든 아케이드에 위치한 티바나의 점장 미셸 컨(Michelle R. Kern)은, 주말이면 매장에 손님이 2만 명 이상 몰린다고 한다. 대부분 무료시음을 하며 둘러보는 사람들이지만, 판매량도 대단하다. 하루 매상 5천 달러, 우리 돈으로 약 600만원 정도다. 30평 남짓한 공간에서 잎차를 팔아 올리는 매상으로는 예상치 못한 액수였다.
티바나의 주요 고객층은 젊은 세대이다. 최근 들어 10대들 사이에서 탄산음료 대신 다양한 종류의 녹차를 마시는 것이 유행이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초·중·고등학교에 탄산음료 자판기 설치가 금지되었다.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펩시나 코카콜라에서는 과일이 함유된 음료 생산에 열을 올렸다. 이제는 다양해진 녹차가 그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르겠다.


     미국 내 대표적인 녹차음료 브랜드인 애리조나(Arizona).

건강과 젊음을 찾아주는 신비한 영약
티바나를 보면 미국 사람들이 문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티바나에는 차를 이해시키는 도표가 있다. 건조 방식, 발효시간, 찌거나 덖는 방식에 따라 나뉜 차에 다시 색깔과 문양을 표시해 시각화했다.
말려서 찐 차는 화이트 티(White Tea), 당연히 흰색 통에 담는다. 말아서 말리고 부분 발효를 거쳐 팬에 덖은 차는 녹차(Green Tea), 나비를 그려 녹색 통에 담는다. 팬에 덖거나 말린 후 빗질을 하거나 흔들어 놓은 차는 우롱차. 블랙 티(Black Tea)는 불로 건조하고, 완전발효해서 말아놓은 차로 검정 통에 담는다. 여기에 원산지마다 색의 강도를 조절하고 딸기, 복숭아, 라벤더, 블루베리, 석류 등의 첨가물 비율에 따라 색상을 달리한 통에 담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벽을 메웠다. 차마다 이름도 매혹적이다. ‘눈꽃 게이샤’, ‘생을 위하여’, ‘몸+마음’, ‘붉은 구름’, ‘황제의 운무’, ‘슈퍼 과일 연합’, ‘복숭아 재스민 경전(Sutra)’, ‘달콤한 우롱의 혁명’ 등이다.
그 무엇보다 강한 흡입력은, 한약방 조제 스타일을 본떠 건강과 젊음을 찾아주는 태고의 영약처럼 차를 신비화시켰다는 데 있다. 티바나 벽에는 고혈압 환자에게 좋은 차, 당뇨 환자를 위한 차, 잠을 잘 자게 하는 차, 다이어트에 좋은 차, 몸의 독소를 빼주는 디톡스 차, 에너지를 올려주는 차 등 다양한차 칵테일 방법이 쓰여 있다. 이것을 보고 원하는 효과에 맞게 차통에 차를 섞어서 사갈 수 있다.
예를 들어 디톡스 차는 ‘실버 니들 화이트 차(Silver Needle White Tea)’, ‘교쿠로 황제 녹차(Gyokuro Imperial Green Tea)’와 ‘동양의 미 우롱차(Eastern BeautyOolong tea)’를 섞은 것이다. 이 차를 마시면 점진적으로 몸을 정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25~30컵 정도 우려낼 수 있는 2온스(56.7그램) 차통이 61.74달러로 세금까지 계산하면 우리 돈으로 대략 7만 5천원이다. 그리고 일정 금액을 내고 6개월이나 1년 회원 등록을 하면, 집으로 한 달에 두 번에서 세 번에 걸쳐 차를 배달해 준다.


     피츠 커피 앤 티(Peet's Coffee & Tea)에서 판매하는 차(茶), 취향에 따라 다양한 혼합이 가능하다.

내 안의 붓다를 드러내는 다도(茶道)
샌프란시스코에 우라센케[裏千家] 재단이 있다. 일본 교토에 본부를 둔 차 문화 재단이다. 1964년부터 차문화와 철학을 서구에 옮겨왔다. 일본 다도인 차도(Chado)이다. 이들은 차와 함께 어울림[和], 높임[敬], 맑음[淸], 고요함[寂]을 가르친다. 차도의 바탕은 선불교이며, 우리 안에 있는 붓다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 주도 새크라멘토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CSUS)에는 우라센케에서 차 수업을 받은 일본계 미국인 나카타니 여사가 기증한 다정(茶亭)과 다실(茶室)이 있다. 바로 2007년 6월 2일 문을 연 ‘소키쿠 나카타니 다실과 정원(Sokiku Nakatani Tea Room and Garden)’이다. 이곳에는 다다미방에 야외정원이 마련되어 있으며, 다관과 다구도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지금까지150여 회의 다도 강습을 해왔으며, 주 이용객은 아시아 역사나 미술, 인류학 또는 사회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이다. 한 회에 40여 명이 등록한다니, 배출한 수강생만 해도 4천 명이 넘는다.
이들 다회(茶會)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차는 물을 끓이는 것일 뿐이다. 그냥 우려내고 마시면 된다.” 낯설지만 따라 하고픈, 미적거리는 서양인들을 참 가뿐하게 해주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 말 안에는 심심한 일상 속에서 마음자락을 펼쳐볼 수 있도록 하는, 우려 볼수록 깊은 가르침이 있다.
따뜻한 물 한 잔에 찻잎이 펴지듯, 그들의 마음속 주름도 펴질 것이다. 그럭저럭 서양인들의 생활도 몸과 마음이 함께하는 선(禪) 자리에 머무르지 않을까? 여러 선지자들의 50년 노력이 이제 시절인연을 만났다.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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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경 : 성신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미술 석사를 받았다. 불교방송 PD로 활동하는 동안 1998년과 2000년에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다. 여러 매체에 미국의 시사 문화와 불교에 관해 소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세계 석학들과 현대미술 거장들을 인터뷰하고 명상적 시각에서 해석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 틱낫한 스님의 환경을 지키는 책 『우리가 머무는 세상』 등을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