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모든 바람이 이뤄지길 기도하며

여동생과 함께 떠나는 산사여행/충북 진천 보탑사

2011-03-25     불광출판사

       산신각에서 내려오는 길가에서 바라본 3층 목탑.

함께 있어 몰랐던 동생의 빈자리
마포 불교방송국 16층 작가실.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가득하다. 나는 이 소리가 너무 좋다. 어릴 적부터 작가를 꿈꿔왔지만 곧장 작가의 길로 들어서지 못했다. 친구들이 캠퍼스 생활을 맘껏 누리고 있을 때, 나는 집안 형편이나 여러 가지 사정들로 인해 잠시 학교를 쉬며 백화점 판매일, 콜 센터 직원 등 다양한 일을 했다. 심지어 일자리를 찾아 부산으로 긴 여정에 오르기도 했다.
그땐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게 있어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사람은 바로 여동생이었다. 세상과 가족 그리고 알 수 없는 모든 것들에 대한 불만으로 우울증을 겪기도 했던 시절, 나와 세살 터울인 여동생은 행여나 내가 나쁜 길로 빠지진 않을까 마음 써주고 걱정해 주었다. 또 일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떠도는 나를 대신해 집안에서내 몫의 역할까지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불투명한 미래에 방황하고 힘겨워할 때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항상 나를 챙겨주던 속 깊은 동생이었다.
그런 동생이 몇 개월 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루는 안부 차 전화를 걸었는데 콜록 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보일러도 없는 곳에서 몇 벌 안 되는 옷으로 찬 겨울을 지내다보니 감기에 걸린 것이다. 그런데도 동생은 “내가 옷을 다 가져와서 언니 입을 옷이 없을 텐데….”라며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너무 고맙고 또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그날따라 좁기만 하던 내 방이 유독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좌) 보탑사 경내에 세운 달집태우기 나무 / (우) 부처님 열반상

동생과 처음 단둘이 떠나는 여행
얼마 전 방학을 맞아 동생이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 그동안의 회포도 풀 겸 여행을 제안했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고 충북 진천 보탑사로 향했다. 쌀쌀한 날씨에 몸은 한껏 움츠러들었지만, 처음으로 동생과 단둘이 여행을 떠난다는 설렘이 가슴 속에 가득했다.
내가 사회 초년생으로 첫 걸음을 내디딘 곳은 불교용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회사였다. 당시 그곳에 자주 들르셨던 스님께서 소개해 주신 절이 보탑사였다. 봄이면 꽃이 만발하고, 비구니스님들께서 절을 손수 예쁘게 꾸며놓아 뉴스에 나온 적도 있다는 말에 언젠가 꼭 한번 가고 싶었던 곳이다.
초입부터 웅장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우리를 반겼다. 수령이 300년이나 된 장수 느티나무였다.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듯 지지대로 가지를 받쳐놓았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더 멋스럽게 느껴졌다.
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자 색색의 종이가 무수히 달려있는 달집태우기 나무가 보였고, 그 앞으로 3층 목탑이 서 있었다. 이 목탑은 신라 황룡사 9층 목탑 이후 처음으로 사람이 오를 수 있도록 만들어진 탑으로, 현재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오를 수 있게 허용된 유일한 목탑이라고 한다. 목탑 1층에는 저마다 다른 이름을 가진 사방불이 모셔져 있었다. 약사보전, 극락보전, 대웅보전, 적광보전. 한자에는 까막눈인 나를 대신해 중국어를 잘 하는 동생이 한 글자씩 또박또박 읽어주었다. 우리는 네 곳에 모셔진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위층으로 걸음을 향했다.
2층으로 가는 계단 앞에서 달집태우기에 참여할 수 있는 소원지를 구입해 마음을 담아 소원을 적었다. 무슨 소원이 그렇게나 많은지 동생은 종이가득 소원을 적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가슴 속으로 동생이 소원하는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길 기도했다.
2층에 있는 팔만대장경을 모신 윤장대와 3층 미륵 삼존불을 둘러보고 삼배의 예를 올리고 탑을 내려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무로 만든 목탑을 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게다가 못과 같은 철재를 전혀 쓰지 않고 순전히 나무로만 지었다고 하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좌) 돌부처를 바라보며 / (우) 보탇사에서 바라본 겨울 아침 하늘이 더욱 청명하다

보탑사 곳곳엔 기왓장으로 만들어진 아기자기한 화단이 있었고, 꽃 이름이 적힌 푯말이 가득했다. 봄에 오면 꽃이 가득해 더 예쁠 것 같았다. 아쉽게도 한 겨울이라 만발한 꽃의 향연은 만나볼 수 없었지만, 대신 경내에 잔잔히 울려 퍼지는 염불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달래 주었다 .
조그만 연못, 연꽃 위 부처님, 부처님 열반상, 통나무로 지어진 산신각…. 고즈넉한 보탑사 풍경에 반해 나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오랜만에 여유를 갖고 마음을 쉴 수 있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소소한 얘기들을 동생과 나누면서, 우리는 꽃피는 봄이 오면 가족과 함께 다시 들러 템플스테이를 해보기로 기약했다.

       아름다운 반가사유상이 보탑사 풍경에 운치를 더한다.

힘들고 아픈 과거를 벗 삼아
서울로 출발하기 전 보너스(?)로 보탑사 근처에 있는 농다리를 둘러보았다. 천 년의 역사를 지닌 유형문화재 돌다리라고 하는데, 수많은 계단을 올라 정상에서 본 풍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동생과 나는 연신 예쁘다 예쁘다 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리고 잠시, 그 돌다리를 만들었을 옛 사람들의 삶을 반추해 보았다. 그동안 힘들다는 핑계로 내 생각만 하고 방황했던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이번 여행은 힘들고 아팠던 과거를 벗 삼고, 바쁜 삶조차 행복하게 느낄 만큼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지난 시간을 반성하고, 곁에서 힘들었을 가족과 동생을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공부를 해야 할 동생도, 힘든20대 초반을 보냈지만 결국 작가로서의 꿈을 이뤄가고 있는 나도, 부모님도 모두 부처님의 가피로 좋은 날만 가득한 앞날이 되길 바라본다. 갑자기 몸과 마음이 부자가 된 기분이다.

   천 년의 역사를 지닌 돌로 만들어진 농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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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지 : BBS 불교방송 코너 작가로 활동 중이다. 늘 이론으로만 배우던 방송 일을 시작하면서, 하루하루 꿈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