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을 위한 욕구 관리

김정호 교수의 행복심리학

2011-03-25     불광출판사

몸에 대한 욕구
얼마 전부터는 내가 타는 전철역 스크린 도어의 한쪽 면에 여성의 가슴 사진이 붙어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애드벌룬 두 개를 모아놓은 것 같은 엄청난 크기의 가슴이다. 가만 보니 그 옆의 벽면에는 성형외과의사의 사진이 실려 있다. 가슴성형을 선전하는 광고인 것이다.
현대만큼 몸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적이 또 있었을까? 많은 부모들은 자식의 ‘숨은’ 키를 찾기 위해 거금을 투자한다. 지하철의 탈모 광고에서는 나처럼 벗겨진 머리의 사진을 붙여 놓고 관리를 받으라고 하니 지하철 타기도 민망하다. 유전적으로 나이 들며 머리가 벗겨지니 어쩔 수 없다고 그냥 심상하게 넘어가려고 해도,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버젓이 탈모를 관리나 치료를 받아야 하는 증상으로 몰아가니 스스로 자괴감이 들게 된다.
상황이 이러하니 여성들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싶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책받침처럼 마른 몸매가 아니면 전부 열등한 몸매이고, 애드벌룬은 아니더라도 풍선처럼 큰 가슴이 멋진 가슴이며 작은 가슴을 가진 여성들은 열등감을 느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입하는 것 같다. 멋진 다리 근육을 물려받은 어떤 여학생은 ‘저주받은 종아리’라며 바지만 입고 다닌다. 아파트 상가안내 광고의 절반 이상이 피부 관리, 손톱 관리, 비만 관리 등으로 채워져 있다. 지하철 전동차 내의 광고에도 비포-애프터(Before-After)사진을 담은 얼굴 성형수술 광고가 빠지지 않는다. 홑꺼풀 눈은 쌍꺼풀 눈으로 만들 때까지, 낮은 코는 오뚝하게 솟게 만들 때까지, 사각턱은 깎아서 갸름하게 만들 때까지 내내 주눅 들고 열등감을 느껴야 한다는 분위기다.



물질에 대한 욕구
우리의 지대한 관심은 몸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의 욕구는 몸에서 확장되어 사용하는 물건이나 사는 집에까지 뻗쳐 있다. 현대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매일 새로운 목록의 욕구를 마음의 사회에 유입시키고 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새로 들어온 욕구는 기존의 충족된 욕구를 밀어내고 새롭게 충족시켜야 할 욕구로 자리를 잡는다.
그냥 휴대폰에서 사진도 찍는 휴대폰으로, 거기서 다시 TV도 보는 휴대폰으로 우리의 욕구는 변천해 왔다. 최근에는 인터넷 기능을 가진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마음에는 스마트 폰을 갖고 싶은 욕구가 새롭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늘 그래왔듯이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처음 구입한 사람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꺼내어 이리저리 다양한 이용법을 즐긴다. 한편 옛 모형의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점차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기가 창피해지기 시작한다. 적어도 왠지 자신이 시대에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디 휴대폰뿐인가. 새로운 형태의 TV, 더욱 업그레이드된 컴퓨터와 노트북, 새로운 기능의 냉장고, 향상된 기능과 세련된 디자인의 신형차, 더 작고 더 많은 기능을 갖춘 카메라와 캠코더, 새로운 모델의 명품 가방, 명품 의류, 새로운 디자인과 편리한 기능의 아파트 등등 끝이 없다.

몸과 물질에 집착하는 이유
몸과 물질에 대한 우리의 욕구는 진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에게 매력적이지 못한 처녀, 총각은 결혼하여 후손을 둘 수 없다. 화려한 깃털을 갖춘 공작새나 강한 힘을 가진 사자·표범이 후손을 남기듯이, 우리는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며 외모를 가꾸고 경제적 능력을 확대하며 자신을 과시해온 조상의 후손이다. 이러한 과시욕구는 그 자체로 독립적 욕구가 되었기 때문에 이성에게 보이지 않아도 과시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얻을 수 있으며, 거의 모든 연령대에서 강한 욕구로 작용한다.
문제는 남들과의 비교에 사용되는 품목이 현대에 와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또 그러한 증가추세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외모의 비교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눈꺼풀을 만들 수도 있고 코를 높일 수도 있고 얼굴을 깎을 수도 있고 가슴의 크기를 조절할 수도 있다. 물질적 능력의 비교에서도 그 품목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하였다. 단순히 소유할 수 있는 물질의 수량만이 아니라 물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의 수량도 엄청나게 증가했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하루 만에 지구 어느 곳에나 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돈만 있으면 비행기를 타고 지구 어느 곳이든 하루 안에 갈 수 있다. 비행기를 탈 때도 좌석에 등급이 있어서 비용을 더 많이 지불하면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경제적으로 현재의 하위계층과 상위계층의 차이는 과거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게다가 더 이상 신분제도의 제한이 없으므로 비교대상의 제한도 없으며 TV나 인터넷 등 대중매체의 발달은 비교의 범위를 작은 동네에서 전체 국가나 전체 세계로 확장시켰다. 이제는 동네 처녀들, 동네 총각들과의 비교가 아니라 나라 전체나 세계 속의 모든 처녀 총각들과 비교를 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각 개인에게 커다란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처럼 쉽게 포기하거나 수용할 수 없다. 자신이 노력해서 돈을 벌면 얼굴과 몸을 고칠 수 있고 물건을 더 많이 소유할 수 있고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돈을 버는 데 더 집착하게 되고, 이와 관련해서 한국 같은 사회에서는 학력을 높이는 데 더 집착하게 된다.

행복한 삶의 출발을 위하여
아름다운 얼굴, S-라인 몸매 등 멋진 외모를 향한 욕구를 나쁘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 좀 더 향상된 기능과 세련된 디자인의 제품을 향한 욕구를 비난할 수만은 없다. 이러한 욕구가 없었다면 지구상에 인간이 지금까지 이렇게 번성하며 살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조화이다. 우리 마음을 구성하는 욕구들의 조화, 지구생태계와의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 특히 자본주의의 특성상 물질적 발달은 물질에 대한 우리의 욕구를 끝없이 목마르게 함으로써 인류의 생존자체를 위태롭게 할 정도로 지구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며, 우리 내면의 다른 건강한 욕구의 추구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 마음에는 몸과 물질에 대한 욕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과시하고 부러움을 받는 관계가 아니라 진정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관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건강한 삶에 매우 중요하다. 일 자체를 통한 성취감을 얻고자 하는 욕구,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인간적으로 성숙해지고자 하는 욕구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욕구이다.
자신의 마음에 어떤 욕구들이 있는지 어떤 욕구들이 사라지고 또 새로 생기는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외부환경의 영향에 취약하게 된다. 특히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술과 디자인의 끝 모르는 개발로 매일같이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고, 광고를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욕구를 심어주고 비교를 조장함으로써 소비를 유발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물질적 욕구는 충족에 따른 만족감이 오래가지 않으며, 한 번 갖춘 물질은 유지하지 못하게 되면 불행감을 일으킨다. 역설적이게도 현대는 갖추면 행복해지는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 갖추지 못하면 불행해지는 불행의 조건이 늘어나는 사회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 살다보면 똑바로 정신 차리지 않는 한 누구의 삶을 사는지도 모르게 행복하지도 않은 삶을 살다가 어느덧 병들고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된다.
비교적 젊었을 때부터 자신의 인생에서 추구하는 욕구들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 이들 간의 우선 순위는 어떻게 부여할지 등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행복한 삶의 출발이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삶의 유한함을 돌아보는 것은, 즉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현재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해준다. 죽음에 임하여 편안하게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잘 산 인생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죽음을 원한다면 어떤 욕구들을 어떻게 추구해야 할까?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정답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며 한 번에 답이 명쾌하게 모두 나와야만 좋은 것도 아니다. 살면서 이러한 질문을 종종 던지는 것 자체가 삶을 돌아보게 해주고 신선하게해주며 올바르게 방향을 잡아줄 것이다.
끝으로 영어 경구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에서 ‘쥐 경주(Rat Race)’란 현대의 극심한 생존경쟁의 삶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If you win the rat race, you are still a rat.”(쥐 경주에서 일등을 한다고 해도 여전히 쥐일 뿐이다.)

우리는 어떤 경주에서 일등을 하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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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 덕성여자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서 현재 한국건강심리학회 회장, 대한스트레스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조금 더 행복해지기』, 『스트레스의 이해와 관리』, 『스트레스는 나의 스승이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