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과 문양] 깨달음의 상징, 보리수

상징과 문양

2011-03-25     유근자
그림1. 보드가야 대보리사의 보리수, 인도.


깨달음의 성지, 보드가야(그림 1)
보리수는 석가모니불께서 이 나무 아래에서 성도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산스크리트어로는 아슈밧타(Asvattha)·핍팔라(Pippala)이며, 한역 불교경전에는 도수(道樹)·각수(覺樹)·길상수(吉祥樹)·도량수(道場樹)·불수(佛樹) 등으로 의역되었다. 보리수의 학명은 ‘Ficus religiosa’이며 나뭇잎의 형태는 심장 모양을 하고 있다.

7세기경에 인도를 방문한 현장 스님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보리수에 대해 “보리수는 과거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께서 한결같이 그 성스러움을 증명하신 곳이다.”(『대당서역기』 제8권)라고 말씀하고 있다. 인도에서 나무를 신성시하는 성수신앙(聖樹信仰)은 불교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인도인들의 나무에 관한 신앙이 어떠했는지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나무의 여신 약시(Yakshi)

무성한 잎, 아름다운 꽃, 열매의 생성 과정을 수반한 나무는 고대로부터 불사(不死)와 재생(再生)의 상징이 되었고 생명의 나무, 신성한 나무, 지혜의 나무, 하늘의 나무 등으로 불리며 성수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기독교 미술에서도생명의 나무인 포도와 종려나무는 예수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인더스 모헨조다로 유적에서 출토된 인장(印章)에는 고대 인도인들의 신앙을 암시하는 난간으로 둘러싸인 나무의 표현이 많이 보인다. 이는 인도문화의 근본을 이루는 성수신앙의 원류라고 할 수 있으며, 이후 여성과 결부된 수목신앙은 초기 불교미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풍요의 신이자 나무의 여신인 약시상으로 나타난다.

약시는 삼림과 나무에 사는 여자 정령으로 인도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토착적인 지모신(地母神)신앙에 뿌리를 둔 수호신이다. 재생을 상징하는 나무는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여신의 육체와 결부되어 풍요와 생명을 상징하게 되었으며, 여성의 생식력을 상징하는 수신(樹神)을 불교의 수문신 형태로 채용한 것이다(그림 2).

그림3. 소원을 들어주는 겁수, 기원전 1세기경, 바르훗 난순, 인도 캘커타박물관.


소원을 들어주는 겁수(劫樹)

인도인들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세계는 어떤 곳이었을까? 기원전 1세기경에 건립된 바르훗(Bharhut) 대탑의 난순(欄楯, 성역을 둘러싼 돌 울타리)에는 인도인들이 동경했던 이상세계인 우타라쿠르(Uttarakuru)가 조각되어 있다. 이 가운데 수목신앙과 관련된 것은 바라는 바를 다 들어준다는 겁수(劫樹, Kalpavrksa)로서 여의수(如意樹)라고도 한다.

고대 인도 브라만교의 근본경전 가운데 하나인 『리그베다』에서 겁수는‘재보(財寶)의 주(主)’로 찬탄된 제석천의 신수(神樹)를 뜻하고 있으며, 『금강정유가중략출염송경』 제4권에서는 “서방의 국왕과 장자는 갖가지 꽃·향·영락을 나무 위에 장식하여 걸어놓고 일체를 보시”하는 나무로 등장하고 있다. 겁수를 표현한 유물은 인도 캘커타박물관에 소장된 베스나갈 출토의 기원전 2세기경의 것이 유명하다.

겁수를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기원전 1세기경 제작된 바르훗 대탑의 난순에 새겨진 조각이 있다(그림 3). 한 남자가 나무 앞에 앉아 기도를 하자 나무는 한 손으로 밥이 가득 찬 그릇을, 다른 한 손으로는 물이 든 주전자를 내밀고 있다. 소원하는 바를 모두 들어주는 나무야말로 인도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지 않았을까?

 

그림4. 보리도량과 항마성도, 1세기경, 산치 대탑 탑문, 인도.

보리수로 표현된 붓다

인도 초기 불교미술에서는 스투파·성수·법륜 등을 예배 공양하는 도상이 많다. 산치 대탑의 경우는 성수 예배도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네 개의 탑문에 상징도상으로 표현된 스투파는 32예, 법륜은 6예인 것에 비해 성수는 67예나 된다. 이것은 어떤 상징물보다도 성수가 애호되었던 사실을 추측케 한다. 보리수는 석가모니불과 그의 깨달음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과거 7불을 상징하기도 한다.

산치 대탑 탑문에 있는 부조(그림 4)는 보드가야의 성도를 나타낸 것으로, 대보리사(大菩提寺)는 아치형 창과 난간으로 둘러싸인 2층 건물로 표현되었다. 1층 법당 안에는 부처님을 상징하는 사각형의 금강대좌가 놓여있고, 2층 역시 중앙에 부처님을 상징하는 보리수가 꽃줄로 장엄된 산개와 함께 표현되었다. 볼록한 배와 짧은 다리에 험상궂은 인상을 한 마왕의 무리들이 오른쪽에 표현되어 있고, 성도를 찬탄하는 천신(天神)들은 합장하거나 꽃과 악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오른쪽에 등장하고 있다.

보리수 아래의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의 대표적인 수인(手印)인 항마촉지인은 보리수 아래에서깨달음을 얻는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간다라 불전도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도상이었다. 석가모니불은 풀 베는 청년 솟띠야로부터 받은 길상초를 손에 들고,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로 향했다. 그때 마왕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방해하기 위해 나무에 살고 있는 귀신이 밤이 되면 나타나서 해칠 것이니 그곳을 떠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석가모니불은 보리수 아래 길상초를 깔고 그 위에 앉아 깨달음을 얻어 인류의 스승이 되었다.

쿠샨제국의 간다라인들은 항마성도의 부처님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했다. 보리수 아래 앉은 석가모니불은 오른손으로 지신(地神)을 부르고 있으며, 그 좌우에는 마왕과 그의 무리가 등장하고 있다. 손에 뱀·북·돌·무기 등을 들거나 동물의 형상을 하고 위협하는 마왕의 무리는 석가모니불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는 경전의 내용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부처님이 앉아 있는 대좌 앞에는 패배한 마왕을 상징하는 두 명의 인물이 갑옷과 무기를 든 채 쓰러져 있다(그림 5). 보리수와 부처님이 탄생하는 감동적인 순간이다.

지난 1월 성도를 상징하는 보리수가 있는 보드가야의 대보리사에 들렀다. 부처님의 성도지인 보리수 아래 앉아 성도지 순례의 인연으로, 다음 생이 아닌 ‘바로 지금 여기에서, 매 순간 붓다로 살 것’을 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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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덕성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박사과정을 이수했다. 「통일신라 약사불상의 연구」로 석사학위를, 「간다라 불전도상(佛傳圖像)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사)한국미술사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