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심은 모든 악업을 극복하는 명약

특별기획/2011년 달라이라마 신년법회

2011-03-25     불광출판사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14대 달라이라마의 신년 법회(뮌람)가 석가모니 붓다의초전법륜지인 인도 사르나트에서 열렸다. 1월 12~16일 티베트 대학에서 진행된 이번 법회에는 중국 신장자치구(티베트)에서 2천여 명이 비공식적 일정으로 동참했으며, 한국과 러시아 불자를 포함한 총 2만여 명의 사부대중이 함께했다.

법문을 들을 때 지녀야 할 올바른 동기
오늘 법문은 샨티데바의 『입보리행론』을 기초로, 보살행과 보리심을 증장하는 내용을 주제로 하겠습니다. 즉, ‘어떠한 방법으로 보리심을 키워야 하는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경전을 거듭 읽고 깊이 사유하여 실행할 때 보살의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부디 이번 법회를 머릿돌 삼아 보리심을 키우는 최고의 경전인 『입보리행론』의 종이가 까맣게 닳도록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법문을 들을 때는 무엇보다 옳은 동기가 중요합니다. 설법자는 중생의 이익을 위해 순수한 법을 설해야 하며, 경쟁심과 명예와 부를 얻기 위한 의도가 없어야 합니다. 또한 법을 청하는 이들은 가르침을 받은 이익을 공덕으로 회향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해탈은 나 자신 스스로에게 달려 있습니다. 부디 이번 법문이 바른 해탈의 기회를 만드는 인연이 되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인간의 소중한 몸을 얻었으니 불법을 만나 보리심과 공성(空性)을 수행하고, 이로써 일체 중생을 해탈시키고자 하는 동기를 세워야 합니다. 티베트의 스물다섯 분파 스승님들이 수행하여 얻은 깊은 깨달음이 오늘날우리에게 전승되어진 것도 모두 이러한 바른 동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본인의 목표를 성취하고 타인의 목표 성취를 돕는 데 이생의 인간 몸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법문을 들은 이익으로써 일체 중생이 성불에 이르기를 모두 함께 발원해봅시다.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는 법
모든 것은 원인으로 인해 인연이 이어지며 원인에 의해서 성취될 수 있습니다. 인연이 없으면 청정한 결과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집을 지을 때 튼튼한 기초가 필요하듯이 안정된 종교관이 성립될 때 평안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중생의 불행과 행복도 업이라는 인연에 의해 발생된 것입니다. 업은 마음의 힘이 만들어낸 것으로써, 불성의 성품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점진적인선정을 통해 마음의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불법은 이치를 바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지혜의 눈은 경전 바탕이 아닌 이치로서 키워야 합니다. 붓다께서도 비구들에게 금을 다루듯 이치를 밝히라고 설하셨습니다. 용수보살과 모든 선지식께서도 모두 이치를 바탕으로 상대적인 논서를 저술했습니다. 현대과학과 불교의 교차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불법은 연기와 계율로써 설명돼야 합니다. 연기에도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사성제는 진정한 행복의 원인을 만드는 방법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어서 열두 가지 연기법은 무명을 극복하는 차제를 규명하고 있습니다.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출리심(出離心, 세속의 욕망과 번뇌로부터 떠나는 마음)을 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부유할수록 시기심과 경쟁심이 더욱 강해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더욱이 물질적 부유와 소비지향주의는 마음의 결핍을 초래해 우리 마음에 항시 공허함을 안겨줍니다. 바로 이러한 때 종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불법을 대할 때는 반드시 사유를 해서 이치에 맞는지 분석해야 합니다. 그것에 익숙해짐으로써 터득한 법의 체험을 타인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아비달마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사람에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해야 할 것이며, 가르침에 의지하지 말고 의미에 의지하며, 상대적인 의미에 의지하지 말고 지혜에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입보리행론』은 보리심을 발하는 이를 위한 안내서로서, 출리심과 계율 그리고 삼귀의를 기본 골자로 합니다. 보살이 어떻게 수행을 하며 어떻게 성불하는가를 다룹니다. 허공의 자성에는 구름이 없듯이, 우리가 지닌 일체 마음의 번뇌는 손님과 같습니다. 보리심은 모든 악업을 극복하는 명약입니다. 죽음에 도달하는 그 순간까지 『입보리행론』을 통해 보리심에 익숙해지십시오.
우리가 인간의 몸을 받은 것은 거대한 윤회의 바다를 건널 수 있는 최상의 배를 얻은 것과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악을 행하기 쉬운 환경에서 살기에 바른 행을 하기가 어려운데, 윤회를 초월할 수 있는 마음을 일으켜 일체의 죄를 소멸하는 열쇠가 바로 보리심입니다. 대승의 입문은 보리심을 발하였는가 아닌가 여부에 달려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보리심을 발한 선한뿌리의 공덕은 일체 중생이 붓다에 오를 때까지 끊임없이 증장할 것입니다.
붓다가 되는 인연은 대비심에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자타상환법(自他相換法,나와 남을 바꿔보는 수행)으로 이기심이 이타심으로 대치될 때 대비심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일체 중생이 탐·진·치에 시달리고 있음을 완벽히 이해할 때 대자비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일체 중생을 위한 수승한 발심이 일어나야 비로소 무상정등각으로 향하는 길 위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대승의 삼보에 귀의했다면 완벽한 출리심을 지니십시오. 이 모두는 일체 번뇌를 소멸하고 진정한 열반을 성취하기 위함입니다. 자기 스스로 무상한 존재임을 알아 찰나 변화하는 그 본성을 바로 볼 때,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는 법이 드러납니다.



불편한 마음에 찰나라도 머물지 말라
우리 인간의 몸은 여인숙이요, 생각은 나그네입니다. 몸과 생각 모두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몸과 생각의 쾌락은 절대적인 행복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들 스스로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고, 남는 것은 덧없는 허망뿐입니다. 집착에 의해 착각과 망상을 일으키고, 그러한 무명의 업력으로 지은 죄업이 실로 헤아릴 수없을 만큼 많기에 우리는 참회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입보리행론』에서는 정념(正念)과 정지(正知)로써 항상 자신을 살피라는 말로 계율을 대신합니다. 항상 근신하여 대승의 보살행을 하십시오. 근신이란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분노하는 대상과 분노의 실체 자성이 공함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번뇌는 지혜로써 완벽히 소멸이 가능합니다.
삼매 수행을 할 때는 마음속에서 혼침이 일어나는지 잘 감시해야 합니다. 마음이 산란하거나 혹은 멍한 상태로부터 깨어 있는 것, 신구의(身口意)삼업을 정확하게 알아차림 하는 것이 ‘정지’입니다. 감시가 허술해지면 마음은 순식간에 흐트러지고 맙니다. 그런 상태에서의 수행은 마치 깨진 그릇에 물을 담는 것과 같습니다.
삼매, 즉 오직 붓다를 이루기 위한 정진을 위한 기초 공사가 바로 인욕입니다. 이를테면, 보리심의 근거가 되는 것은 대비심이며, 대비심의 반대가 분노심입니다. 중생에 대한 분노심은 한량없는 자비로 대처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항상 기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올바른 견해가 있다면 가능합니다. 불편한 마음에 찰나라도 머물지 마십시오. 반드시 분명한 견해로써 기쁨을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번뇌와 고통의 원인을 무수히 지어 온 반면, 선의 원인은 매우 미약합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기쁨보다 고통이 훨씬 많습니다. 고통의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부터 출리심을 발현할 인연을 만난 것과 같습니다. 인욕은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고통을 수행자는 의연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분노를 죽인 자를 영웅에 비유합니다.
우리는 삼매를 성취하는 방법과 정의 그리고 공덕을 바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왜 삼매를 닦아야 하는가? 실제 수행에서 공성(空性)의 견해는 무상을, 깨달음은 삼매를 바탕으로 합니다. 비유하면, 지혜는 말 위에 탄 사람과 같고 삼매는 말을 끌고 가는 힘입니다. 삼매란 무한한 정진력입니다. 수행에 임할 때에는 시간에 의연하게 강렬하고 선명히 집중하십시오. 붓다를 관하는 시간의 공덕은 한량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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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정리 : 가연숙 2009년 인도 다람살라에 삶의 둥지를 튼 이후 현재까지 14대 달라이라마(텐진갸초)의 법문을 따라 세계 각지를 동행하고 있다. 티베트와 한국불교의 교감을 위한 인터넷커뮤니티 ‘가교(www.gagyo.org)’를 오픈해 다람살라 티베트 망명정부의 소식을 한국에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