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수행은 깨달은 뒤부터 시작된다

선가귀감 강설 10

2007-01-22     관리자

제23장
學語之輩, 說時似悟, 對境還迷.
所謂言行, 相違者也.
말만 배우는 무리들은 설법할 때에는
깨달은 것처럼 보이나, 실제 경계에서
부딪치면 오히려 미혹해져버리나니
소위 언행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니라.

이것은 앞서 말한, 자신을 속인다는 뜻의 결론이니라.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르기에 허허실실(虛虛實實)이 판가름 나지 않겠는가.

강설
서울을 보려는 사람이 서울 이야기로 만족하겠는가. 안내자가 읊어대는 서울 정도 5백년의 역사와 내산 외산의 지리적 배경의 재미난 이야기 역시 한번 직접 부딪쳐 서울을 가본 것만 못한 것이다. 이와 같이 참선은 스스로 부처가 되어 바로 부처를 느끼는 것이다. 어떤 본에는 각어지배(覺語之輩)로 되어 있으나 뜻은 비슷하다.

제24장
若欲敵生死. 須得這一念子,
爆地一破, 方了得生死.
생사를 막아내고자 하는가. 모름지기 이 일념(一念)이 폭지일파 되어야만 비로소 생사에서 벗어날 것이니라.

‘탁!’ 하는 것은 칠통(漆桶, 검은 옻이 담긴 통, 곧 무명의 어두움)이 터지는 소리니라. 칠통을 깨뜨린 뒤에야 생사를 막아낼 수가 있느니라. 모든 부처님이 인지(因地, 因行地, 修行時)에서 닦아 가신 것은 오직 이 길뿐이니라.

강설
생사윤회를 막아낸다는 말과 생사윤회에서 자유로워진다는 말은 근본불교입장과 대승불교 입장의 차이다. 발달된 대승불교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만약 생사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하는가.”
번뇌가 곧 보리이고 생사가 곧 열반이라, 대승불교에서는 끊어버려야 할 생사가 따로 없는 것이다.
깨달음은 마음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몸까지도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마치 왕새우가 껍질을 벗고 새 생명으로 크게 변신하는 것과 같다. 부처가 되어 마음속에 무명이 걷히는 순간에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빛을 내기에, 대웅전에 모신 불상에서 그런 광배(光背)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있다.

폭지일파(爆地一破)
화롯불 속에 묻어둔 알밤이 익을 때 ‘툭!’ 하고 폭발하는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송담 스님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말한다.
“물이 가득 채워진 독을 큰 돌로 들어서 단번에 내리치면, 독이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면서 물이 ‘왁!’ 하고 쏟아지는 것과 같다.”
깨달음의 순간이 오면 번뇌 망상이 일시에 봄눈 녹듯 사라진다. 한 예로, 북극의 빙산에 의해 1,500여 명을 실은 배가 침몰된 영화가 타이타닉호이다. 이렇게 한 순간의 위력은 대단하다.
백은(白隱) 스님은 크게는 13번 깨닫고 작은 깨달음은 셀 수 없이 많았음을 스스로 밝힐 정도의 당당한 인물이나, 이처럼 속지 말아야 한다. 대오했다는 수행자가 남에게 속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속는 일이 허다한 것이다.

제25장
然 一念子, 爆地一破然後,
須訪明師, 決擇正眼.
그러나 일념자(一念子)가 폭지일파된 뒤에는 반드시 눈 밝은 스승을 찾아가 정안의 가부 결택을 받아야 하느니라.

이 일은 극히 쉽지 않아서, 꼭 참회하는 생각을 내야 비로소 바르게 되니라. 도(道)란 큰 바다와 같아서 점점 들어갈수록 더욱 깊어가는 것이라, 작은 것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지니라. 깨친 뒤에 만약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면 제호와 같이 아주 맛있는 것도 도리어 독약이 되느니라.

강설
선지식인 스승의 소중함을 일깨운 글이다. 매사에는 달인이 있는데, 달인이 달인의 가부를 판별하기 때문이다.

결택정안(決擇正眼)
뛰어난 선지식은 대웅전을 짓는 도목수와 같다. 이것은 서까래감, 저것은 기둥감 하고 나무 하나하나를 일별하고 곧바로 재목감을 알듯이, 수행자의 눈빛 하나와 언행 하나에 깨달음의 가부를 바로 판별해낸다. 깨달은 후에는 반드시 눈 밝은 선지식의 결택이 따라야 법통을 이은 바른 수행자라는 뜻.

제호(醍琰)
우유를 잘 정제해서 만든 으뜸가는 음식이다. 불성(佛性)에 비유하며, 혹은 불법의 최상승에도 비유한다. 오미(五味)의 하나로, 오미는 유미(乳味, 우유), 낙미(酪味, 요구르트), 생소미(生隣味, 요플레), 숙소미(熟隣味, 煉乳, 버터), 제호미(醍琰味, 치즈)이다.

제26장
古德云:
“只貴子眼正, 不貴汝行履處.”
옛 어른은 말씀하였느니라.
“오직 자네의 정안만을 귀하게 여길 따름이지, 자네의 행실은 그다지 귀하게 보지 않겠노라.”

옛 일화이다. 앙산(仰山) 스님이 스승 위산(館山) 스님의 질문에 대답하였느니라.
“열반경(涅槃經) 40권이 모두 마군의 말입디다.”
이것이 앙산 스님의 바른 눈 정안(正眼)이니라.
이번에는 위산 스님이 행실(行實)에 대하여 묻는 앙산 스님에게 대답하였느니라.
“자네의 정안만 귀하게 여길 따름이지, 자네의 행실은 그다지 귀하게 보지 않겠노라.”
이것이 바른 눈을 뜬 뒤에 행실을 말하는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였느니라.
“수행을 하려면 우선 반드시 돈오(頓悟)해야 하느니라.”

강설
진정한 의미의 수행은 깨달은 뒤부터 수행이 시작된다. 그 이전은 말이 수행이지 진정한 수행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뜻.

위산(館山, 771~853)
중국 호남성 장사부 영현에 있는 대위산에 오래 머문 인연으로 스님의 법호가 되었다. 중국 위앙종의 초조. 법명은 영우(靈祐), 속성은 조(趙) 씨. 복건성(福建省) 복주부(福州府) 장계(長鷄)에서 태어났다. 15세 때에 법상(法常)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고, 23세 때에 백장(百丈) 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어느 겨울날에 백장 스님이 물었다.
“화로에 불이 있느냐?”
대강 뒤져보다가 불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백장 스님은 친히 화로 속을 깊게 뒤져서 작은 불덩이 하나를 집어 들고 할(喝)하였다.
“이보게, 이게 불이 아니고 무엇인가?”
잠시 귀가 멍멍해진 순간이다. 위산 스님이 불시에 깨달았다. 그 뒤에 위산에 생긴 새 절에서 종풍(宗風)을 크게 떨쳤다. 다음은 위산에 머물게 된 내력이다.
백장 선사의 명을 받고, 강서성(江西省) 대위산(大館山)을 지나가는 도중이었다. 여기 대위산에서 잠시 머물고 있을 때인데, 명성을 듣고 찾아온 군민이 대단히 많았다. 위산 스님은 인연의 때가 온 줄을 알고 새 선원을 지어 참선을 지도하기를 40년 동안 하였다. 회중에는 항상 1,500명이 넘었고, 입실(入室) 제자가 41명이 되었다.
후세에 스승과 제자 두 스님이 머문 곳의 글자를 따서 위앙종(館仰宗)이라 불렀다. 곧 뛰어난 제자 앙산 혜적(仰山慧寂)이 종풍을 크게 떨쳐서, 선종사에서는 5종 7가풍 가운데 혜적파와 영우파를 모아 위앙종이라고 부른 것이다.
제자 가운데에는 향엄(香嚴), 영운(靈雲) 등도 뛰어났다. 저술로는 치문(緇門) 처음에 실린 위산경책(館山警策)과 그 밖에 어록(語錄) 등이 남아있다. 시호는 대원 선사이다.

앙산(仰山, 815~891)
위앙종의 개조. 법명은 혜적(慧寂), 속성은 섭(葉) 씨. 광동성(廣東省) 광주부(廣州付) 회화현(懷化縣)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출가를 하려고 하였으나 부모가 좀체 허락을 하지 않았다. 17세 때에는 일생일대의 일을 벌였다. 왼손 약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 두 개를 절단하여 출가의 굳은 결심을 보였다. 그 후 어렵사리 출가를 하였다.
탐원(耽源) 스님을 통해서는 선의 깊은 도리를 깨달았고 다시 위산 스님에게 나아가서 선의 분명한 경지에 올랐다. 15년 동안 위산에서 머물다가 앙산으로 옮겨가 위앙종의 선풍을 크게 떨쳤다. 시호는 지통 대사(智通大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