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법구] 갠지스 강의 모래만큼의 갠지스 강의 모래

내 마음의 법구

2011-02-28     김영승

세존이시여, 우주란 무엇입니까. 여자란 무엇이며 가난이란 무엇이며 무명(無明)이란 무엇이며 노자가 말하는 소위 병병불병(病病不病), 즉 “병을 병이라 하면 병이 아니다.” 할 때의 그 병(病)은 무엇입니까.

“모든 소리, 즉 만뢰(萬籟)는 무상하다. 마치 병(甁)과 같이. 왜냐하면 만들어진 고(故)로.” 이때 소리란 무엇이며 소주병 같은 그 병(甁)은 무엇인가. 나아가 화중지병(畵中之餠)은 무엇이며, 나아가지 않아도 ‘무엇’은 또한 무엇인가. 역시 노자가 말하는 바 명가명(名可名) 비상명(非常名) 할 때 그 명(名)은 무엇인가. 그 모든 칭(稱)은 무엇이며 그러한 것들의 소위 인식 주체라고 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할 때의 그 마음이란 또한 무엇인가.

“마음먹기 달렸다.” 할 때의 그 마음은. 심신일원론, 심신이원론, 심신평행론, 범심론(汎心論) 할 때의 그 마음은.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어쩌구 할 때의 그 마음은. “때로는 당신 생각에 잠 못 이룰 때도 있었지.” 할 때의 그 생각은. “이름을 불러 주세요, 당신의 사랑은 나요.” 할 때의 그 당신은, 사랑은, ‘나’는 무엇입니까…. 수부우티(수보리)는 끊임없이 물었으리라.

그때마다 여시여시(如是如是), 즉 “이와 같고 이와 같도다, 보라!” 세존은 대답하면서 마치 윤동주의 「별 헤는 밤」과 같은 시적 발상과 비유의 질적 변화, 그 우주적 확산에 수부우티와 함께 순간 도달했으리라. 즉, “그것은 수부우티여, 갠지스 강의 모래만큼의 갠지스 강의 모래니라….”

날씨가 연일 춥다. 혹한이다. 재작년 겨울 12월, 1월, 2월도 어마어마하게 추웠는데, 올겨울도 12월, 1월 현재 어마어마하게 춥다. 스페인어로 ‘계집아이’라는 뜻의 라니냐 현상인지 뭔지 때문이라는데, 내가 이미 성냥팔이 라니냐다. 성냥팔이 소녀처럼 작년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성전(聖殿) 앞에서 성냥을 팔며 오들오들 떨고 있다. 아직 얼어 죽지는 않았다. 아내가 몹시 아프다.

『금강경』에 나오는 위 구절은 고2 때쯤 읽었을 텐데,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때의 갠지스 강은 참 맑았을 것이다. 문득 그 강이 김종삼의 시 「성하(聖河)」 같다. 아내가 수술을 앞둔 어제 새벽, 병원 밖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잔잔한 성하의 흐름은
비나 눈 내리는 밤이면
더 환하다
―김종삼, 「성하」 전문

내 마음엔 비도 내리고 있었다. 흑인영가 「깊은 강(Deep River)」 같은 그 깊은 강에서 나는 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를 불렀다. 곧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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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1986년 계간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반성·序」 외 3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반성』, 『아름다운 폐인』, 『무소유보다도 찬란한 극빈』, 『화창』 외 다수의 시집이 있으며, 에세이집으로 『오늘 하루의 죽음』이 있다. 제3회 현대시작품상, 제5회 불교문예작품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