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인터뷰] 제따와나 선원 선원장 일묵 스님

제따와나에서 불어오는 청정한 수행의 바람

2011-02-28     불광출판사

서울대생의 집단 출가가 세간의 화제를 모은 바 있다. 1996년부터 몇 년 사이 서울대 불교학생동아리 회원 30여 명 중 12명이 출가해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 중심에는 동아리를 이끌던 일묵 스님(47)이 있다. 그는 2003년 KBS 부처님오신날 특집극 ‘선객’에 소개되어 일반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일묵 스님은 1996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의 제자인 원택 스님을 은사로 출가, 범어사 강원을 졸업하고 봉암사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했다. 이후 2005년 미얀마의 파욱 국제명상센터에서 3년간 수행했으며, 유럽과 미국의 수행단체를 순례하였다. 2년 전 서울 방배동에 수행전문센터인 ‘제따와나 선원’을 열고 도심포교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며 심상치 않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불교 최초로 시도하는 자율보시 체제

제따와나(Jetavana)는 팔리어로서 부처님이 가장 오랜 기간 머물며 가장 많은 설법을 하신 ‘기원정사’를 의미한다. 제따와나 선원은 그 이름에 걸맞게,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장 근접한 수행 공간을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 선원 운영에 있어서도 재나 기도를 일체 배제하고 올해부터는 전적으로 자율보시 체제로 전환했다. 이러한 시도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포교당 재정의 70~80%는 재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 수입을 포기하고 법회와 수행만 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걱정하며 극구 만류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사가 이토록 복잡한 줄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시작할 엄두도 못 냈겠지요. 다행히 초기불교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며 ‘제따와나 수행법회’에 기본적으로 100여 명 이상이 동참해 주셔서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습니다.”

제따와나 선원 벽에 설치된 보시게시판. 보시 항목으로 선원의 관리비와 선원에 필요한 물품(세제, 식용유, 참기름 등), 대중공양 등이 눈에 띈다.

제따와나 선원은 기복적인 요소를 배제하는 대신, 법회와 수행을 중심으로 불교의 바른 가르침을 통해 제대로 된 불자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개원한 지 만 2년째 되는 현재 3~4개월 코스의 수행법회(매주 화요일 오전·저녁반)가 7회째 열리고 있으며, 수요일 심화법회(아비담마 강의), 목요일 경전독송, 토요일 집중수행, 일요법회(경전 강의·특강) 등의 정기적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경기도 가평의 행복선원에서 열흘 코스의 ‘10일 수행’, 여름 휴가 기간에는 결제 개념의 완전 수행 모드인 집중수련회를 개최한다. 지난 해 집중수련회에는 미얀마 파욱국제명상센터의 파욱 스님을 모시고 일주일간 법문과 인터뷰를 진행해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마지막까지 수행 정진을 열심히 해온 20여 명이 선정 체험을 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지만 수행도 기초가 매우 중요해요. 팔정도와 사성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수행을 하게 되면, 정석을 모르고 바둑 두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견에 빠질 위험 요소가 많은 거죠. 우리 불교의 현실을 보면 절을 몇십 년 다녀도 불교를 모르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그저 절만 하고 기도만 하면 되는 줄 알아요. 심지어 속가 친구가 제 출가소식을 듣고 저에게 전화로 하는 말이 사주를 봐달라고 합니다. 이러한 기복적이고 미신적인 인식이 사회적으로 팽배해져 있기 때문에, 엘리트들에게 우습게 보여지고 정부나 타종교로부터 폄하를 당하는 것입니다. 불교가 실력을 쌓으면 그들이 절대 무시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바른 이해와 수행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죽음 경험을 통해 찾은 수행자의 길

일묵 스님의 출가 계기는 다소 독특하며 극적이다. 서울대 수학과 재학 중 수학이 진리라고 믿었는데, 막상 공부를 하면 할수록 논리적으로 허점이 보이고 완벽한 체계가 아님을 알게 되면서 공부가 시들해졌다. 수학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허물어지면서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세상 사는 것도 재미가 없어졌다. 대학원에 진학하고서도 수학에 미래를 걸어야 하는 삶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던 중 도서관 계단을 오르다 갑작스런 심장발작으로 죽음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그 시기에 제 인생이 급변하게 됩니다. 죽음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을 때, 그동안 20년 넘게 공부한 지식이 아무런 쓸모가 없더라구요. 이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길을 찾기 시작하면서 불교와의 만남이 이뤄졌고, 불교동아리를 결성하게 됩니다. 아침에 한 시간 좌선, 1주에 한 번 법회, 한 달에 한 번 철야정진, 여름수련회 등 당시에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근본적인 생사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무르익어 출가를 결행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저를 비롯해 3명이 출가하였고, 1년 반 사이에 7명, 그 이후 후배들까지 모두 12명이 출가를 하였지요. 아직 한 명도 속퇴하지 않고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수행 정진하고 있습니다. 참 지중한 인연이지요. 지금도 1년에 한두 번 해제 때 모여 공양도 하고 하룻밤 잠도 같이 잡니다.”

한국불교 최고의 선승인 성철 스님의 손상좌로서 수좌로 살아오던 그가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수행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일반인의 시각으론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미얀마 파욱국제명상센터에서 초기불교를 공부하며 참선 수행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더불어 한국불교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제가 수학을 전공해서인지, 처음엔 솔직히 간화선이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것 같고 잘 이해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초기불교를 공부하고 나서 보니 선사들의 말씀이 상당히 깊이 있는 이야기로서 쏙쏙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화두선 중심이 되면서부터 기초가 약해져 올바른 불교의 가르침이 쉽고 명쾌하게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지금 한국불교에 시급한 것은 초기불교가 가지고 있는 기초토대를 잘 갖추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갖고 있는 대승불교의 자산들이 더욱 부각되고 화두선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수행자로서의 황금기를 오롯이 바친 불사 원력

물질만능의 무한경쟁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행복의 조건은 돈, 명예, 권력에 집중된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불행은 자초되는 것이다. 일묵 스님은 끊임없이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행복론을 펼쳤다.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으로, 행복을 고통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전도몽상’입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길 원한다면 인생의 고수인 성인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배워야 합니다. 거기에 인생의 가치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수행의 길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잘 알면서, 정작 평생을 자기와 함께 하는 마음의 속성과 작용엔 관심도 없습니다. 이는 운전법을 모르고 운전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운전하는지 아는 게 바로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비결입니다.”

그의 최대 관심사는 사람들을 수행의 길로 이끌어 행복한 삶을 사는 인간형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있다. 그 첫 번째 원력으로 사부대중 수행공동체인 ‘제따와나 국제명상마을’ 건립을 추진 중이다. 그가 꿈꾸는 수행공동체는 1년 내내 수행하는 상설 수행전문 공간으로서, 누구라도 와서 본인이 원하는 기간 동안 수행하는 곳이다. 두 번째로는 명상 리더 그룹 양성이다. 국제명상마을에서 1년에 3명씩만 명상 지도자가 길러져도 보다 많은 사람들을 수행자로 이끄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다. 세 번째로는 ‘불교와 수행 연구소’ 설립을 통해 다양한 수행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효과적인 교육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올해 목표는 명상마을이 들어설 적합한 부지를 확보해 명상마을 건립의 토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저와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땅 기부의사를 내는 분도 있어 아직까지는 희망적입니다. 파욱센터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공부나 수행을 떠나 청정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스님이 돈을 갖고 들어오면 청정하지 못하다고 나가라고 합니다. 그러한 청정한 기운이 저절로 신심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이러한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재현되어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제따와나에서는 선원 살림과 명상마을 불사에 관한 재정을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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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묵 스님
서울대 수학과 박사과정 중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하였다. 범어사 강원을 졸업한 후 봉암사 등 제방선원에서 수행 정진하였고, 이후 미얀마의 파욱 국제명상센터와 프랑스의 플럼빌리지, 영국의 아마라와띠 등 유럽과 미국에 있는 세계 불교단체에서 수행하였다. 현재 제따와나 선원의 선원장으로 있으면서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다양한 수행 및 교육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역서로 『열반에 이르는 길-사마타 위빠사나』, 저서로 『윤회와 행복한 죽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