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과 문양] 설법의 상징, 법륜(法輪)

상징과 문양

2011-02-28     유근자
그림1. 첫 설법을 하는 부처님과 법륜, 1세기경, 산치대탑, 인도

그림2. 태양신 수리아(Surya)와 법륜, 7~8세기, 높이 72센티미터, 방콕국립박물관


태양신 수리아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에도 법륜은 태양의 상징물이었다. 인도 고대 서사시 「푸라나」에 의하면 힌두 신화의 태양신 수리아(Surya)는, 자신의 광채를 모두 발산하면 너무 밝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광채의 일부를 떼어내 신들의 무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태국의 드바라바티(Dvaravati) 왕조의 한 불교사원지에 서 출토된 유물에서 태양신 수리아가 태양처럼 빛나는 법륜을 등 뒤에 표현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그림 2).

큰 법륜 앞에는 두 손에 연꽃을 든 수리아가 있고, 좌우에는 등으로 법륜을 지탱하고 있는 두 명의 약샤(Yaksha)가 있다. 태양신 수리아는 인도 고대미술 에서 네 마리 또는 일곱 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있는데, 불교 미술에서는 불법의 수호신 또는 전륜성왕의 상징이 되었다.

그림3. 전륜성왕과 법륜,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첸나이주립박물관, 인도

전륜성왕의 칠보(七寶)

석가모니 부처님은 태어날 때 32상 80종호를 갖추었다고 하는데, 이런 상호를 갖춘 사람이 세속에 있으면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고 출가하면 부처님이 된다고 한다. 전륜성왕은 차크라 바르티라자(Cakra-varti-raja)라고 하며, 고대 인도 신화에서 세계를 통치하는 이상화된 왕으로 알려져 있다. 『중아함경』에 의하면 전륜성왕은 왕위에 오를 때 하늘로부터 광명이 빛나는 윤보(輪寶)를 얻어 이것을 회전시킴으로써 무력에 의지하지 않고 정의로 세계를 지배한다고 한다.

불교에서 생각한 전륜성왕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유물이 남인도 첸나이주립박물관에 남아 있다(그림 3). 왕 주위에는 전륜성왕의 소유물인 일곱 가지 보물이 표현되어 있는데, 왼쪽 아래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마보(馬寶), 옥녀보(玉女寶), 윤보(輪寶), 마니보, 거사보(居士寶), 장군보(將軍寶), 상보(象寶)가 그것이다.
마보·상보·윤보는 나라를 통치하는 데 필요한 군사력을 의미하고, 옥녀보는 지혜로운 배우자를 상징한다. 마니보는 국가의 튼튼한 재정을 뜻하고, 거사보와 장군보는 전륜성왕을 도와 태평성세를 이룰 인재를 의미한다. 이런 일곱 가지 보물을 갖춘 전륜성왕이 다스리는 세계는, 다름 아닌 미륵부처님이 하생(下生)할 시기라고 『미륵하생경』에서는 이야기하고 있다.

아소카왕과 녹야원의 사자 주두(柱頭)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왕을 들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아마 아소카왕일 것이다. 아소카왕은 전륜성왕의 대명사로 여겨지는데, 인도를 통일한 후 통일제국 마우리아 왕조를 무력이 아닌 법력으로 다스리고자 했다. 그는 불교 성지마다 아소카 석주를 건립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초전법륜지인 녹야원에 세운 아소카 석주의 사자 주두(柱頭)이다. 인도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을 네 마리 사자가 등을 맞대고 있는 기념품이 바로 이 사자 주두이며, 인도를 상징하는 국장(國章)으로 사용되고 있다.

녹야원의 사르나트고고박물관에 들어서면 아소카왕의 사자 주두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그림 4). 2미터가 넘는 거대한 주두는 추나르 지역에서 나는 빛을 발하는 돌로 만든 것으로, 기원전 3세기경 마우리아 왕조의 대다수 미술품 들은 이 사자 주두처럼 표면이 반짝이는 광택을 지니고 있다.

백수의 왕인 사자 네 마리가 등을 맞대고 있는 아래로 법륜 사이사이에 사자, 황소, 말, 코끼리 가 배치되어 있다. 여기에서 법륜은 아소카왕의 이념인 법에 의한 통치와 부처님의 첫 설법을 함께 상징한다.

그림5. 법륜을 굴리는 부처님, 2~3세기, 탁실라박물관, 파키스탄


첫 설법의 상징, 법륜

여러 불교 경전에는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실 때”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범천이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는 「범천권청 이야기」는 간다라 불전도의 주요 소재 가운데 하나였다. 『대지도론』 제8권 14-2에 의하면 “부처님께 서 법의 바퀴를 굴리는 것을 법륜 또는 범륜(梵輪)이라고 한다.”는 내용이 있다. 부처님의 모습을 처음 인간 형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간다라 인들은, 초기에 부처님이 법륜을 직접 손으로 굴리는 모습을 형상화해 첫 설법 장면을 표현했다(그림 5).

인도의 가장 번성한 왕조 가운데 하나인 굽타 제국(4세기~6세기경)의 불교도들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부처님 모습은, 바로 설법하는 부처님이었다. 초전법륜지 녹야원에 모셔졌던 첫 설법하는 부처님은 설법을 의미하는 수인인 전법륜인(轉法輪印)을 하고 있으며, 부처님의 설법을 상징하는 법륜은 대좌 아래에 작게 표현되었다. 인간 모습으로 설법하는 부처님을 간절히 원했던 굽타인들은, 인도조각의 대표작인 사르나트의 초전법륜상을 창안해낸 것이다(그림 6). 지난 1월 초에 방문한 인도의 많은 굽타시대 석굴사원에서, 녹야원에서 설법하는 초전법륜(初轉法輪)의 부처님 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6. 첫 설법을 하는 부처님과 법륜, 5세기 후반, 사르나트고고박물관, 인도

굽타시대 이후 법륜은 여의륜관음보살상을 비롯한 보살상이나 힌두교 비슈누신의 지물이 된다. 인도 석굴 순례길에서 만났던 설법하는 부처님 상을 떠올리며, 이 세상을 환하게 밝혀줄 법의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굴러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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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덕성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박사과정을 이수했다. 「통일신라 약사불상의 연구」로 석사학위를, 「간다라 불전도상(佛傳圖像)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사)한국미술사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