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생활

빛의 샘/우리가 꿈꾸는 세상

2007-06-12     관리자

 꿈을 갖는다는 것은 행복한 생활이다. 비록 오늘 가난하고 괴로운 삶일지라도 내일을 기다리는 꿈이 있다면 불행하게 느껴지는 아픔조차도 아픔이 아니고 희망과 기대의 나날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꿈을 갖고 있다. 더러는 부자가 되는 꿈으로 부터 높은 직책에 이르기를 소망하는 꿈도 있다. 큰 꿈일수록 좋은 것이지만, 꿈의 크기에 비례해서 고통을 수반하고 있는 법이다. 꿈 많은 젊은 날은 돌아보아도 즐거운 일이다. 누구나 그렇듯, 꿈을 가진 젊은 시절은 하나의 꿈만이 아니었다. 운동시합장에선 유명한 선수가 되고 싶었고, 선거철에 마이크를 잡고 유세하는 광경을 보면 틀립없이 정치가가 되고 싶었다. 또한 돈 많은 회사를 지나칠 때면 회사 사장의 꿈을 꾸었다.

 그러나 망오십(望五拾)의 나이엔 모든 것들이 내 곁을 한꺼번에 지나버린 그림자로 추억의 아슬한 모습이 되었다. 결국 원고지 칸이나 메꾸고 글을 읽고, 제자를 가르치는 세월 속에 내 꿈은 어느새 붙잡혀있었던 셈이다. 이제 문인(文人)이라는 현실에서 무슨 꿈을 꾸어야 할까?

 1950년대, 피난길에 우리짐은 서점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었다. 좁은 서점 안에서 때로는 책을 파는 점원이면서, 주인으로 무차별로 읽어치우는 독서관이 되었다. 중학 2학년 무렵 노벨상 작품이었던 [닥터지바고]로부터 심지어 [벌레먹은장미]나 방인근의 [간호부의 고백]에 이르기까지 모든 책을 읽어치우는 시절이었다. 많이 읽다 보면 독서수준도 높아가고 체계가 잡히는 법이다. 내 나름의 독서 안목과 지혜가 성장했던 세 평도 못되는 서점 안이,내 문학의 중량을 저장하는 교실이요 스승이었던 셈이다. 이 때만 해도 문인에의 꿈은 없었지만 저자와의 숱한 조우에서 이미 문학에의 꿈으로 젖어있던 숙명이었을줄, 그 무렵엔 몰랐었다.

 글쓰는 문인이라는 것. 어찌 보면 화려하고 근사한 꿈인지 모른다. 가령 시인으로 등단하여 몇 편의 작품을 발표하고 나면 그 사람의 이름 앞엔 평생 시인 000라는 명칭이 따라붙는, 어찌 보면 부러운 꿈일시 분명하다. 그러나 문인의 길이 가난과 고난의 명패를 짊어진 서글픈 꿈이란 걸 미처 몰랐던 젊은 날, 국문학을 전공했고, 선생노릇에 어찌하다 문학의 길에 들어섰다. 이런 혼란의 가치 속에서 내 문학에의 굼은 다른 사람에 비해 10년 가량 뒤늦은 것이었다.

 그러나 어린시절에 간직한 꿈은 평생 가슴 깊은 곳에 간직되어 언젠가 현길의 표면으로 솟구쳐 나오기 마련이다. 결혼과 더불어 내 방황은 종지부를 찍었고, 이내 문학에의 부푼 꿈을 붙잡으려는 열망의 세월이었다. 드디어 시인이 되었고, 문학평론가가 되었다. 이제 되돌아보는 나이는 아니지만, 지나온 시절의 꿈과 오늘의 나를 대입해 보노라면 그런대로 후회없는 삶이었음을 긍정하고  있다. 그것은 열심히 사노라닌 무언가 이룩된 결말에 이르렀음을 깨닫는 경우와 같다는 말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은 아름답다. 그가 하고 있는 일이 비록 천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맡은 일을 열심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은 아름답게 보인다. 높고 위대한 꿈을 가질수록 좋다. 그러나 꿈은 커야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가족들을 위해 땀 흘리는 농부의 모습에서나, 흙먼지를 뒤집어쓴 청소원의 모습에서도 꿈은 깃들기 마련이다.

 사는 자, 열심히 사는 자만이 꿈이 있기 마련이다. 꿈이 미래의 개념이라면 미래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허품이다. 꿈이란 결코 아름다움만은 아니다. 현실의 고통을 아는 사람만이 미래의 꿈을 소유할 수 있기때문에 확실히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단어가 꿈의 주소이다.  佛光

채수영 시인.문학평론가.동국대를 졸업하고 경기대에서 문학박사를 받았다. [그림자로 가는 여행]외 5권의 시집과 [시 정신의 변형연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현재는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에 근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