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고 싶은 이 세상

빛의 샘/우리가 꿈꾸는 세상

2007-06-12     관리자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라는 것을 형성하고 그 속에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외톨이로 떨어져서 혼자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회라는 공동체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질서라는 것이 필요하고 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약속을 서로가 지켜야 합니다. 이 약속은 사람의 행위와 판단과 평가의 기준이 되는 도덕이나 윤리로 이루어지면서 자율적인 이 것으로 감당할 수 없을 때는 법률이 그것을 대신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40억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는 그 100분의 1인 4천만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풍토에서 같은 말을 쓰면서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 4천만의 사람도 각각 개성이 다르고, 도덕관념이나 윤리관이 다릅니다.

 하물며 다른 풍토에서 다른 말을 쓰면 다른 생활을 하는 40억이 넘는 사람이 각각 다른 개성을 가지고 한 덩어리의 지구에 함께 살고 있고 보면, 이것은 장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느 테두리까지는 비슷할 수 있겠지만, 사람이 어찌 모두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 정해진 약속을 서로가 엄격히 지키기만 한다면, 개성의 이런 다양성이 세상 사는 재미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오묘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선천적으로 지극히 이기적입니다. 공동체 의식을 일깨워 주는 교육이나 행위의 규준이 되는 도덕률이, 그리고 법률이라는 것이 이 이기심을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만, 교육이 이기심을 더욱 조장시키고 도덕률이 무너진 듯한 오늘날의 세상에서 법률마저 권위를 상실했다면 주어진 약속을 충실히 지키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선량한 사람들도 현실의 모순에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현실에 대한 불만은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하는 이상주의를 낳게 합니다. 이런 이상주의가 다수의 공감을 얻게 되면 때로는 기존 질서와 가치관을 완전히 파괴하는 혁명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만, 그것이 소극적일 때는 개인의 카다르시스로 끝나게 됩니다.

 어떻든 끊임없는 이런 이상주의가 인간의 사회를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오늘날 만큼 발달시킨 것은 사실입니다. 현실에 대한 개개인의 불만이 없었다면, 이 세상이 이렇게 발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과도한 발달이 과연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행복하게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이만큼 발달하지 않아도 좋았다는 생각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보다 넓게 펴기 위하여, 또는 도리에 맞지 않는 현실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하여 한 번쯤은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어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갖가지 모순에 많은 갈들을 느끼면서도 60이 가까운 지금까지 저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세상은 어차피 모순이 많은 것이고, 그것이 도를 넘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우리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때문입니다. 피곤하기는 하겠지만 주어진 세상의 많은 모순들을 애써 이겨내며 어렵게, 알차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보람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피곤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의 무게가 아니겠습니까?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 해도 어려움 속에서 살기 위하여 저는 모순투성이의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습니다. 佛光

송영택. 서울대 문리대 독문과를 졸업하였으며 '56년 [현대문학]에 시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번역집에 [헷세 전집] [말테의 수기] [릴케 시집] [하이네 시집] [괴테 시집]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