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법구] 극락도 지옥도 다 좋은 수련장

내 마음의 법구

2010-12-27     황대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해석되는 이 법구는 아마도 불교에서 가장 유명한 법구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로부터 또 수많은 법구가 만들어졌으니 “극락도 지옥도 다 좋은 수련장”이란 법구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 법구는 내가 불교에 심취했던 대학 시절에 읽은 어느 스님의 법문집에서 보았는데,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도무지 출처를 확인할 수가 없다.

어찌 되었건 책을 읽다가 우연히 건져 올린 문장 하나가 구렁텅이에 빠진 한 인생을 살려냈으니, 나는 늘 이를 가르쳐주신 이름 모를 스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나는 나이 서른에 군사정권이 조작한 간첩사건에 휘말려 무기징역을 받고, 13년여를 복역하고 마흔넷의 나이에 다시 세상에 나왔다. 잘 나가던 대한민국의 엘리트 유학생이 하루아침에 저지르지도 않은 죄목을 뒤집어쓰고 무기수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그 절망감과 억울함이란….

처음 몇 년간은 그야말로 혼돈과 무기력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몸과 마음이 병들어갔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일체유심조를 떠올리고 현재의 상황이 지옥이 아닌 극락이라고 생각해보려 했으나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괴롭고 고통스런 극락’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마주치니 더 헷갈리기만 했다.

당시에 나는 안기부(현 국정원)에서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신경발작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하루는 격렬한 통증을 이겨내려고 몸부림치면서 “이까짓 통증에 져서는 안 돼!” 하며 소리치다가 크게 깨우치는 바가 있었다. “그래, 여기가 틀림없이 지옥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나를 단련시키는 데엔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지!” 문득 스님의 말씀을 떠올린 것이다.

이후로 감옥 안에서의 나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통과 절망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단련하기 위한 시험대로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고통스런 상황이 와도 주눅 들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또한 기분 좋은 일이 생겨도 그것에 들떠 자신을 망각하기보다 “아, 좋구나!” 하며 관찰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고통과 쾌락, 기쁨과 슬픔 등을 온전히 느끼되 그것에 빠져 헤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물론 이 과정이 결코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한때는 절망의 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맞이한 더 지옥 같은 상황을 이겨낸 것도 “극락도 지옥도 다 좋은 수련장”이라는 법구 덕이었다.

출소 직후 많은 이들이 청춘을 모조리 앗아간 옥중 세월이 억울하지 않느냐고 물을 때마다 참으로 난감했다. 억울하기는커녕 은혜의 시간이었다고 대답하면 무슨 큰 도인이 나타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억울해 죽겠다고 대답하면 내 인생이 불쌍해지니 말이다. 나는 큰스님들이 하시는 말씀대로 늘 깨어 공부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정신만 차리면 공부는 가능하지 않은가? 그곳이 지옥이든 극락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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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소재 사회과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유학생활 중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국가기관의 조작사건이었음이 밝혀져 13년 2개월 복역 후 출소했다. 생태공동체운동센터 대표를 거쳐 현재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야생초 편지』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