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편지

시절인연

2010-12-24     불광출판사


… 수천 개 연등 / 들고 계신 어머니 / 나보다도 더 날 사랑해 / 탈 대로 탄 붉은 가슴 열린 / 저 무한천공 …

- 천양희, ‘감나무’ 중에서


초겨울 벽공(碧空)
에 걸린 감을 볼 때마다 저는 고향이 떠오릅니다.
정겨운 외할머니 댁이 감나무집이었지요.
저의 원시, 태초의 둥지는 감나무 울타리였고,
남빛 하늘의 그리움이었습니다. 그 하늘의 등불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라서는 연말이면 수도 없이
감을 그린 연하장을 띄우곤 했지요.
들려오기로 어떤 이는 그 작은 졸작을 표구해
걸어두었다고도 했습니다.



“하늘의 한 모서리가 잔잔하게 불타오르고 있소…. 코발트빛 하늘을 배경으로 일제히 불을 켠 유황빛, 또는 홍색의 무수한 등불, 한 해에 한 번씩 노을빛 무게에서 수많은 해돋이. 낙조 또 달빛의 흔적을 찾으며 뜨락을 거니오. 흔들리는 불빛에 부서지는 노을빛 바람 한 자락과 바람도 없이 떨어지던 가을 물든 감나무잎 한 장을 동봉하오….”

- 허만하, ‘감나무 편지’ 중에서


이렇듯 해마다 감나무를 바라보는 상념은 특별한지,
지난 일기도 붉게 물들어 있네요.
“바람에 날려 떨어진 감나무잎 한 장 주워와 바라보니
신비와 화엄의 세계가 펼쳐진다.
잎맥이 거미줄처럼 영롱한 인드라망의 우주!
햇살과 물과 공기가 만든 저 다양한 색채를 보며
내 안의 삶은 어떠했는지? 한해의 삶을 돌이켜 본다.
내 속 뜰과 영혼의 무늬에 대해….
이제 잎은 마지막 빛이 바래고 형체는 삭아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어느 생명의 거름이 될 것이다. 남은 감은 까치밥이 되고….
나의 삶도 저와 같을 수 있기를. 오늘의 부끄럼도,
거친 미움도 부디 삭고 삭아서 새날의 생명에게 거름되기를….”
한 해가 저무는 시간, 허공의 감을 보며 열매 맺어야 할 것과
비워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은혜의 시간 속에 붓을 들어 그림편지 띄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