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찾아온 기적

수행과 만나다 / 경기도 양주 오봉산 석굴암 수구성취대다라니 주력수행

2010-12-24     불광출판사


오봉산 석굴암에 오를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지루하던 장마에 물러 떨어질 것 같았던 잎사귀들이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치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름답고 신비하기 그지없다. 계절은 이렇듯 바뀌고 변덕이 심하건만 오직 부처님 말씀과 진리는 변함이 없으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부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잊지 않으면 지옥불도 면하고 복이 되어 은혜를 입는다고 하였다. 그렇다. 내가 불교를 모르던 철없는 유소년 시절, 아주 가끔 어머님이 절을 다니시던 것이 오늘 내가 부처님 말씀에 매료되고 불자가 되는 계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차 한 잔이 불러온 인연
내 고향은 첩첩산중 지리산 기슭의 오지 마을이다. 연이은 흉년에 설상가상으로 한국전쟁을 겪은 고향은 폐허나 다름이 없었다. 어려운 시절이다 보니 교육이나 종교,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새마을 사업이 시작되고 마을길이 넓어질 무렵, 나는 견문을 넓히고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서울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아무런 기반도 없는 타향에서 터를 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깨가 넓어지고 나이가 들어 작은 가정을 꾸렸지만 삶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들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지만 좀처럼 생활이 안정되지 않았다. 힘든 삶 속에서도 마음으로는 항상 부처님 말씀을 갈구했다. 하지만 선뜻 불교에 입문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사실 여유를 가지기엔 아직 모자란 삶이라는 생각이 컸다. 그러던 중 우연히 스님 한 분을 알게 되었는데, 여법한 가르침에 존경심이 절로 일었다. 잠시 메마른 삶에 쉼터가 마련되나 싶었지만, 아쉽게도 스님은 곧 속초로 떠나셨다.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어느 날, 꿈속에서 만난 친구 녀석이 큰 돌로 지은 절에서 불공을 드려보라고 권해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꿈을 꾸고 나서 며칠이 지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 사정을 잘 아는지라 평소 말동무 겸 상담사 노릇을 해주던 친구였는데, 전화로 절을 한 곳 소개해주었다. 바로 오봉산 석굴암이었다. 늘 마음에 두고도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는데, 이참에 절에 한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짐을 꾸렸다. 매월 셋째 주, 철야기도를 한다는 친구의 말에 느지막하여 산을 올랐다. 해가 지고 어스름해질 무렵 도착한 대웅전 앞마당에서, 문득 지난 밤 꿈에서 보았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음을 한눈에 직감할 수 있었다. 마치 고향의 어머니 품속 같은 도량이었다.
그날 철야기도를 마치고 스님들과 차담(茶啖)을 나누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들이켜자 이런저런 푸념 섞인 넋두리가 나도 모르게 쏟아져 나왔다. 스님들은 잠자코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셨다.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응어리들을 쉴 새 없이 떠들어대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듯했다. 어쩌면 그동안 하고 싶은 이야기, 속에 담긴 고민들을 마음껏 털어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또 그런 사람, 한없이 내 말에 귀 기울여줄 어버이와 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이 인연을 이어 불교에 입문하리란 결심을 세우게 되었다.


오봉산 자락을 흐르는 구름처럼
수려한 풍광에 다정다감한 스님들을 모시며 내 불심 또한 날로 깊어갔다. 석굴암에서 만나는 도반들, 함께 수행하는 스님 모두가 좋은 스승이 되어 주었다. 특히 나를 친형제처럼 대해주시는 주지스님(도일 스님)과의 만남은 내게 있어 둘도 없는 선연(善緣)이었다. 불심도 얕고 모르는 것이 더 많은 미약한 나를 이끌어 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더구나 석굴암에 입문한 지 6년째 되던 해, 부덕한 나를 신도회장이라는 중책에까지 추천해 주셨다.
사실 예전의 나라면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어 누군가를 위해 앞장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심에 귀의해 조금씩 여유를 찾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에도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신도들을 위하는 것은 곧 석굴암을 위하는 것이요, 이곳 석굴암을 위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또한 그것이 결국은 나를 위하는 최선의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신도회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안고서 한편으로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반문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에 더욱 절과 관련된 일에 열의를 다하고 수행 역시 게을리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신도회장이는 직함 탓에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의식적으로 수행에 임했지만, 주지스님께서 수행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느새 의식하는 바 없이 수행 자체에 매진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문불출하며 수구성취대다라니 천일기도를 수행하는 주지스님을 곁에서 지켜보며, 수행은 안에서 일어나는 신심으로 하는 것이라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오봉산 자락에 흘러가는 구름처럼 어떠한 의도함 없이 그저 가는 것…. 수구성취대다라니 주력수행의 참뜻 역시, 단지 나와 내 가족의 행복이나 물질적 풍요를 바라는 게 아니라 일체중생의 궁극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내 사소한 부담감은 절실한 신심으로 바뀌었다.


‘함께’라는 소중함과 가치
매달 진행되는 수구성취대다라니 독경을 비롯해 틈이 날 때마다 다라니 주력삼매에 빠져들면서 내·외적으로 적잖은 변화가 생겼다. 사업의 특성상 라이벌 업체도 만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을 접하게 되는데, 생각 같아서는 다이해하고 포용하고 싶지만 인간이기에 서운함도 생기고 스트레스도 쌓이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주지스님의 권유와 지도로 수구성취대다라니경 3,000일 기도와 공부를 시작하면서 생활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간혹 수구성취대다라니 주력수행을 통해 자녀가 대학입시에 합격했다는 사람, 아픈 몸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러한 기도와 수행의 기적이 내게도 어김없이 다가온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던 마음들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가슴에 앙금처럼 남아있던 불운의 기억들도 차츰 사라졌다. 덩달아 사업의 매출이 늘고 대인관계도 원만해졌다. 수행 전에는 멀게만 느껴지던 사람들이 이제는 먼저 내게 다가오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마도 수구성취대다라니 주력수행을 통해 사물을 보는 분별력과 사람들을 포용하는 법을 체득한 덕분이라 생각한다. 사람에서 한낱 미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불성이 있다는 진리의 말씀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수구성취다라니 주력수행을 하기 전에는 혼자서 열심히 불경만 읽고 기도하면 되지 하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먼저 깨달은 스승의 지도를 받고 사랑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면 깨달음의 깊이도 깊고 쉽게 각인이 되리라 생각한다. 수구성취대다라니 주력수행을 통해 배운 가장 큰 깨달음은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것의 소중함과 가치가 아닌가 한다.
입동이 지난 오봉산에 마지막 단풍이 지고나면, 나무들은 더 단단히 무장을 하고 겨울나기를 준비할 것이다. 부처님의 한마디 말씀이 중생을 감싸 안듯, 석굴암의 철야기도 소리가 떨어지는 잎사귀들을 대신하여 나무들을 보듬어 줄 것이다. 그 밝은 소리가 더 멀리,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전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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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길수 ː 오봉산 석굴암 신도회장 및 대한불교조계종 25교구 신도회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다. 40여 년간 제약업계에 종사했으며, 현재 응급조치에 필요한 구급함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일진약품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양주 오봉산 석굴암 수구성취대다라니 주력수행 안내
수구성취대다라니 주력수행은 경구를 통해 눈을 밝히고, 그 소리로 귀를 밝혀 여래장을 향한 마음의 빛을 발현시키는 수행이다. 지난 4월 세 번째 1,000일 기도를성만한 도일 스님은 매월 철야기도 등을 통해 수구성취대다라니 주력수행을 알리는 한편, 불자들의 정진을 독려하고 있다.

일정 : 수구성취대다라니 철야기도
매월 셋째 주 토요일 밤 9시~새벽 5시수 구성취대다라니
독경법회 : 매월 둘째 주 일요일 오전 10시
보름법회 : 매월 음력 15일 오전 10시
프로그램 : 철야정진, 법문, 차담
수행문의 : 오봉산 석굴암 031) 826-3573 www.sukgul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