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밝히는 등불들] 송병욱 법사

청호불교포교원장 송병욱 법사, "함께 울고 함께 웃겠습니다"

2007-06-11     사기순

   "훼불한 이교도들의 잘못은 더이상 말할 것도 없지만 훼불 당한 우리에게 문제는 없었는가 생각해볼 때입니다.   이교도들이 군대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구석구석에서 전도에 열을 올릴 때 우리는 무엇을 했습니까.   이사회 현실과 사람들의 외롭고 고통스런 삶을 외면하고 자기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찾아오는 신도나 받아들이고, 아니 제발로 걸어오는 신도들조차 제대로 이끌지 못해 타종교로 내몰지는 않았는지 깊이 자성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오늘의 훼불사태는 우리 스스로가 불러 일으킨 인과응보입니다."

   강남구 논현동, 빌딩숲 사이에 호젓하게 자리한 총호불교문화원에서 만난 송병욱 법사는 최근의 훼불사태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부터 열어 놓았다.   1971년 해군 군법사 2기로 임관해서 지난 91년 대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근 20여 년 동안 군불교 포교에 힘써온 그였기에 군대 안(호국 신흥사)에서 일어난 훼불사태는 남다른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해방이후 미국식 군대로 편제되는 가운데 군목제도가 아무런 절차없이 받아들여질 때 호국불교의 전통을 갖고 있는 불교계의 군승제도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군목제도에 비해 훨씬 늦은 '68년에야 비로소 5명의 군승이 제1기로 임관, 군승제도가 구체화되었지요.   군승들은 조용한 개울에 미꾸라지가 들어와서 흙탕물을 일으킨다는 등 군선교에 장애가 된다는 둥 이교도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억압을 받았습니다."

   초창기 열악한 환경이기에 더욱 열정적으로 임한 그는 법사로서는 최초로 해군 군종감을 지내기도 했고 육. 해. 공군 군승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열두 곳의 군법당을 건립했고 군법사 13명을 임관케 하는 한편 불교장교회, 하사관회, 사병회 등 각종 신행단체를 결성하여 활발한 불교 활동을 전개했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겪었다.

   "백령도에 흑룡사를 건립할 당시, 이교도들이 청와대에 진정을 하는가 하면 해군본부에 찾아와서 항의도 하고 시위까지 하는데 참으로 난감하더군요.   그런 거센 반발을 물리치고 법당을 완공시켰던 것이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은 민간인들도 흑룡사에서 법회를 본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큰 보람을 느끼기도 한답니다."

   그는 군생활을 통해서 포교없는 교단은 미래가 없음을 절감하고 포교참선, 포교수행, 포교염불, 포교삼매 등의 당시로선 생소한 단어를 사용하면서 포교에 주력했다.   군법당 안에 유치원을 설립(해군본부 연화유치원, 계룡대 계룡유치원)했던 것도, 가족법회를 고무시킨 것도, 군법사들의 교단적 위상제고에 힘썼던 것도 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기 위한 원력의 일환이었다.

   한국불교는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구미 각국과 일본, 대만 등을 돌아보고 세계 종교문화의 흐름을 바라보면서 한국불교는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신념이 굳어졌습니다."

   그는 이광수의 [원효대사]를 밤새워 읽고 홀연히 16세에 동산 스님을 은사로 득도, 범어사에서 내전을 배웠다.   승려가 된 뒤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 한용운 스님의 [불교유신론]과 루터의 [종교개혁]인 것만 보다라도 그의 새불교에 대한 염원은 아주 오랜 것이었다.

   불교의 산에서 나와 세상의 들판에 서서 불교의 능선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었기에 불교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한국 불교는 타종교에 비해 정보화 산업시대에 적응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많이 안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시대변천에 따른 교단의 경영관리가 재정착되지 않으면 이 시대에 설 자리마저 없을 거라는 위기감까지 느꼈지요."

   그는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보살이 되어 이웃과 더불어 함께 울고 웃는 동사섭을 실천하는 불교, 화합중으로서의 민주적 교단형태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대라고 보았다.

   "새불교는 전통불교에서 볼 때는 세속불교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전통불교가 증류수라면 새불교는 밥짓고 빨래하는 용수(用水)에 비유할 수 있을 겁니다.   증류수는 죽는 사람에게 주사를 놓아 살릴 수는 있지만 밥짓거나 빨래하는 데에는 적합치 않지요."

   청호 이종대 거사와의 만남

   중생의 고뇌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역사창출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선 세속불교 즉, 생활불교의 기치를 높이들고 포교정진을 해야 한다는 송병욱 법사, 그는 청호 이종대 거사를 만남으로써 그의 신념은 좀더 빠르게 현실화 되기 시작했다.

   "예편하고 나서 1년 동안은 논문 쓰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동국대서학위([숫타니 파타]를 중심으로 한 해탈의 현증적 연구])를 끝내고 전국 각사암과 불교단체의 초청법사로, 대학의 강사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면서 줄곧 어떻게 불교활동을 전개할 것인가 생각해오던 중에 청호 거사님과 인연이 맺어졌습니다."

   청호 이종대 거사와 송병욱 법사의 만남은 원력과 원력의 만남으로, 부처님의 가피로 이루어진 숙세의 인연이 아니겠는가.

   청호 거사, 자가용도 안 타고 코트도 안 입으며 피같이 모은 돈 64억을 선뜻 불전에 희사하여 '91년 재단법인 청호불교문화원을 설립한 독실한 불자.  춥고 배고플 때 절에서 베풀어 준 떡 한쪽, 밥 한끼의 은혜를 지금껏 감동적으로 얘기하는 청호 거사는 불은(佛恩)에 회향코자 불사를 했단다.   청호불교문화원이 부처님의 법을 널리 펴고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도량으로 가꿔지길 기원하는 가운데 송병욱 법사를 만났고 단번에 의기투합했다.

   "청호불교문화원은 설립자이신 청호 거사님의 뜻을 따라, 재단법인 김용우 이사장님을 중심으로 요익중생 할 수 있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불교병원, 양로원, 유치원, 대가람, 각종 불교문화사업 등을 계획 중에 있지요.   이 산하에 있는 청호불교포교원은 미래지향적인 불교, 새불교의 산실로서 그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청호불교포교원, 새불교의 산실

   청호불교포교원은 포교, 수행, 복지를 실천하여 예토에서 정토를 구현 한다는 지향점 아래 현재 가족법회(매주 일요일), 어린이 법회(매주 일요일), 직장인 법회(매주 월, 금), 관음재일 법회, 약사재일법회, 지장재일 법회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예불을 드리고 108배를 드리며 하루를 여는 송병욱 볍사의 일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포교의 연계선상에 있다.   매시간마다 기도 드리고 염불하고 참선하고 책을 읽으면서 갖고 있는 화두 한 가지는 불성(佛性) 꽃피우는 불자, 보살행 실천하는 불자 기르기이다.

   "우리 포교원이 직장인들의 일터에 싸여 있는 만큼 직장인들을 위한 백일 수양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낮 12시 ~ 1시 사이에 직장인들에게 점심식사를 무료로 제공, 30분 동안 참선수행을 하고 교리강좌를 백일간에 걸쳐 실시하는 이 '직장인 백일 수양회'는 실시 첫날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조직사회의 거대한 틀 속에서 자칫 메말라지기 쉬운 현대인들의 마음에 활력을 부어 넣어주는 프로그램으로 다른 도심포교당에도 권할 만한 것이라 하겠다.

   "불교 어머니 합창단 창립, 불교극단 창단, 새불교(월간) 창간, 초. 중등교사 수련회 실시 및 청년회(중고등 학생회)창립, 신불교 연구원 설치 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말하는 송병욱 법사에게서 이 모든 계획이 반드시 성취되리라는 확신이 엿보였다.   그의 뜨거운 신심과 원력이 청호불교포교원을 찾는 불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불자들의 가슴에 스며들을 때 우리 불교계는 희망적이지 않을까.   오늘의 훼불시대를 만들어낸 장본인들이 내일의 찬불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용맹정진하길 빌면서...   간절한 발원 하나, 모두의 가슴가슴에 불성 꽃피우길 기원하며 돌아왔다.

총호불교포교원장 송병욱 법사 (오늘을 밝히는 등불들)